<편집자 주>
우리나라 과학 저널리즘의 역사는 1883년 최초의 대중매체 한성 순보 창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햇수로 따지면 130여 년에 이르는 기간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대중과 함께 했지만 과학 저널리즘은 사랑받지 못한다. 신문에서 과학 지면이 사라지고 있고, 과학 전담기자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 ‘낙종도 특종도 없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 저널리즘 3부작>  첫번째 기획에서는 과학자와 과학 저널리즘 그리고 대중의 시각차를 탐구했다. 이번에는 그 구도 밖의 요인을 살펴보기로 하자 

 

하루가 다르게 첨단 기술이 개발 되고, 자연의 신비가 풀리고 있다. 과학은 사회 곳곳에 스며들게 되었다. 그만큼 과학의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 크다. 과학 저널리즘은 더 이상 과학을 학문으로만 다룰 수 없게 되었다. 정치, 사회 그리고 과학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치 프레임에 덮인 과학

지난 6월, 세계과학저널리스트회의(WCSJ)에서 정치적 자유가 과학 언론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헝가리 ‘크로아티아 라디오’의 과학담당 기자가 독립 전 언론이 정부 소유였을 때는 과학 보도가 정보 전달과 교육 기능에 충실했지만, 독립 후 오히려 대기업 의 이윤 추구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현대 정치는 과학 저널리즘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사결정은 국민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과학에 관련된 정책을 결정하려면 우선 정책결정권자인 국민이 과학을 알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이득을 위해 과학을 왜곡하려는 시도도 일어난다.

2001년, 미국 대통령 부시는 “현재,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60개 이상의 배아줄기세포가 있다”라고 발표했다. 배아도 생명이므로 연구에 사용해선 안 된다는 측과 배아줄 기세포를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측이 대립하던 시점이었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더 이상 새로운 줄기 세포를 만들지 않겠지만, 이미 연구에 활용되던 것들에 한해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절충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 남아 있는 배아줄기세포의 개수는 20여 개 뿐이었다. 60개나 되는 것은 아직 배아줄기세포로 분화하지 않은 유도배아줄기세포였다. 정치적 입장 때문에 입맛에 맞는 정보를 취사선택 하다보니 잘못된 정책까지 이어진 것이다.

순수한 과학으로 출발했지만, 정치적 프레임에 덮여 과학 저널리즘의 부재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에 일어난 일이다. 2010년 부터 2011년까지 관련 보도 프레임을 분석한 결과 중앙정부와 정치인의 정책을 다룬 보도가 각각 26.05%로 가장 많았고 지방정부의 정책이 15.97%를 기록했다. 반면 과학기술을 다룬 보도는 11.76%에 불과했다. 과학벨트 입지 선정을 놓고 이슈가 정치 공방으로 뒤덮인 것이다. 사실, 과학벨트의 본래 모습은 과학자와 인문학자들이 모여 기초과학 발전을 의논하는 ‘은하도시’였다.

과학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정치화가 되어가고 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김창경 차관은“기초과학은 쉽게 성과를 창출할 수 없고,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연구분야다”라며 “기초과학은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표현했다.

 

문화적 편견에 좌우되는 과학 해석 

한편, 대중의 정서를 대변하는 문화도 과학 저널리즘에 영향을 끼친다. 1660년대에 세워진 영국왕립 학회는 과학은 ‘추정하는 것을 삼가고 자연을 낱낱이 관찰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문화적 편견이나 감성적 해석을 유발하는 언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 영향을 받은 과학 저널리즘은 과학을 주관적으로 해석해 전달하기도 한다. AIDS(후천석 면역결핍증후군)가 그런 경우다. 이 병이 미국에서 처음 발견되었을 때, 의사들이 맞닥뜨린 발병자들은 대부분 동성애자, 주사 마약 사용자였다. 당시 풍토는 동성애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언론은 AIDS를‘게이 종양’,‘게이 관련 면역결핍증’이라고 전파했다.

사회 풍토가 과학 저널리즘이 생산되는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 위기를 겪으며 가치관이 변했다. 그때까지는 언론사에서 과학부, 과학기술부, 생활과학부, 문화과학부 등 과학을 다루는 부서가 독립적으로 존재했지만,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며 사라졌다. 그 이후에 살아남은 부서는 산업부, 경제부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경제를 중시하는 풍토가 과학 저널리즘의 축소를 가져온 것이다

 

오히려 다양성 해치는 과학 저널

비단 정치나 문화만이 아니다. 과학 저널리즘 그 자체도 영향을 끼친다. 과학 기사나 대중 과학잡지, 방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학술 저널도 과학 저널리즘의 영역에 포함된다. 저널에는 주로 새로운 연구 성과에 대한 설명을 담은 아티클(Article), 학계에 빠르게 알려져야 할 내용을 담은 레터(Letter) 등이 게재된다. 학계 이슈를 담은 기사를 쓰는 저널도 있다. 이렇듯 저널은 연구를 검증하고 그에 관한 정보를 퍼뜨린다. 과학이 유통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 셈이다. 좋은 저널에 게재된 연구는 많은 주목을 받는다.

그렇다면 ‘좋은 저널’은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할까? 이를 위해 해마다 저널에 실린 논문의 피인용지수를 평균 낸 Impact Factor(영향력지수, 이하 IF)가 발표된다. IF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게재할수록 연구성과가 높게 평가받는다. 하지만 생물학 연구정보센터(BRIC)가 발행한 보고서는 이러한 관행을 비판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생명과학 분야에서 다른 논문에 인용된 사례가 많은 ‘상위피인용논문’ 323편을 분석했더니 이 중 25%는 IF가 5 이하인 저널에 실려 있었다. IF가 10 이하인 논문은 전체의 65%에 달한다.

과학 저널리즘 역시 IF가 높은 저널에 의존해 아이템을 구한다. 더 다양하고 참신한 연구가 소개될 가능성이 줄어든다.

 

마냥 정확하지만은 않은 전문용어

사람들은 과학이 정확하고 논리적 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과학은 일상적인 언어와는 거리가 먼 전문용어를 사용한다. 그렇기에 좋은 과학 저널리즘은 전문용어를 정확히 해석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과학적 논쟁이 붙은 용어의 뜻이 모호해지기도 한다. 프리온 (prion)은 원래 ‘단백질 성질의 감염성 입자’로 정의되었다. 그런데 한 과학자가 입자에 핵산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가설을 제시하며 용어의 뜻이 혼동되기 시작했다. 한때 프리온은 ‘핵산이 없는’ 혹은 ‘핵산이 있을지도 모르는’ 단백질 성질의 감염성 인자라는 뜻이 혼용되었고, 독자는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해석해 읽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비판적 목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시각부터 ‘과학 탐사보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나온다. 2015년 서울에서 열릴 WCSJ에서는 더욱 다양한 제안 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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