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가붕가 레코드’.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회사다. ‘장기하와 얼굴들’로  유명세를 끈 후 현재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아침’ 등 색채가 강한 아티스트들이 모여있다. 붕가붕가 레코드의 대표가 현재 우리 학교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최근 새로운 락 페스티벌인 'JET Fest'의 준비로 바쁜 붕가붕가 레코드의 ‘곰사장’, 고건혁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계에 어쩌다 발을 들이게 되었나

대부분의 음악 하는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10대 때 들었던 음악의 영향이 무척 컸다. 1995년 무렵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인디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갓 데뷔했을 때 고향인 제주도에 공연을 왔다. 당시의 음악은 펑크 음악이 많았고, 펑크는 DIY(Do It Yourself)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 그런 음악의 영향을 받고 커서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음악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 음치인데다가 가사를 써낼만한 내면도 없었고 게을러서 악기 연습을 착실하게 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음악을 포기하고 대학에 갔는데 우연인지 주위에 음악을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의 자작곡을 듣다가 ‘이런 친구들이 음악을 계속 하게해서 내가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음악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렇게 2005년에 붕가붕가 레코드를 세우게 되었다.


레이블 이름이 ‘붕가붕가 레코드’다. 그렇게 이름을 짓게 된 계기가 있나

‘붕가붕가’는 일반적으로 ‘성행위’라는 의미로 통용되지만, 나는 ‘개나 고양이가 사람 다리에 매달려서 자위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 의미가 저희가 지향하는 음악과 같았다. 대중음악이 대중의 요구에 맞춰서 음악을 하는, 일반적인 성행위에 가깝다면 저희가 하는 인디밴드의 음악은 자위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붕가붕가’는 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런 면이 소통의 여지를 담고 있는 형태라 내가 생각하는 인디음악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나중에 가져다 붙였다.(웃음) 그때만 해도 ‘붕가붕가’라는 말이 귀엽고 섹시한 뉘앙스도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해 이렇게 지었다.


모토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의 의미는

음악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올인 하거나 아예 취미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음악으로 먹고 사는 게 쉽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어중간한 지점에서 음악을 하게 되었다. 어중간한 지점에서 좋은 음악을 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길고 얇게 가자는 생각을 하다 보니 생존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둬서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라고 하게 되었다. 

또, 음악을 한다고 하면 대중을 위한 음악이나 자신만을 위한 음악 양 극단으로 나뉘는데, 저희는 중간에서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최대한 많이 팔자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의 경제적 필요는 충당하면서 음악을 하자. 나중을 위해 최소한은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생태계를 지키면서 경제발전을 하자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비슷해서 패러디하게 되었다. 


JET Fest는 어쩌다 기획하게 되었나

음악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페스티벌이라는 플랫폼을 가지고 싶어 한다. 페스티벌로 자신의 인디밴드들을 홍보하는 다른 회사들처럼 우리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시장에 뛰어들어서는 경쟁우위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 번째로는 대안적인 페스티벌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두 번째로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의 확장이다. 최근의 인디음악은 홍대에 모여 있다. 사람들이 같은 곳에 모여살면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 되고 비슷한 음악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음악을 위해서는 공간적 확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주라는 공간으로 확장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였다. 페스티벌은 음악을 듣고 뮤지션을 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페스티벌이라는 분위기를 즐기고 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분위기가 이국적인 제주도가 큰 장점을 가졌다. 또, 사람들에게 인디음악을 그냥 들으라고 하는 것 보다 제주도가 가진 매력에 인디음악을 붙이면 공간의 힘에 끌려서 사람들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전의 문화생활이 쉽지가 않다. 

학부를 서울에서 하고 대학원에 왔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재미없는 학교가 있을 수 있나.(웃음) 학교가 밋밋하고 화장실 같은 건물도 많고, 낮술이라도 한 잔 하려면 못 마시게 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없더라. 그래서 첫 해 축제에 레이브 파티를 만들었다. 상당히 센세이셔널 했다. 그 후 부터 축제에 파티라는 포맷이 생겼다. 자신이 재미있으려고 하면 그것에 부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는 것과 쉬는 것을 흔히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노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가 들어가는 것이다. 삶을 심심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노는 것을 우습게보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싶다.


요 몇 년 새 락 페스티벌이 많아졌다

1999년에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이 있었다. 전무후무한 무대를 꾸밀 수 있었는데 태풍 때문에 쫄딱 망했다. 그 후에 페스티벌이 존재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런데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생겨났고 후에 그것을 위시해 수많은 페스티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양적으로 페스티벌이 이렇게 늘어나다보니 질이 좋지 않은 페스티벌도 많아졌다. 그저 가수의 공연을 나열하는 페스티벌은 좋은 페스티벌이 아니다. 다른 페스티벌과는 다른 분위기, 더 나아가 그 페스티벌만의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제는 단순한 공연의 나열을 넘어서 경험의 단계로 나아가야한다. 페스티벌 속에서 사람들이 마음껏 놀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삶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한다. 이런 페스티벌이 좀 더 많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


카이스트에는 어떤 계기로 오게 되었나

대학 때부터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으니 CT(문화기술)라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인디음악을 보통 노동집약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기술집약적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뭘 하고있나

소셜 컴퓨팅 연구실에서 연구 중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음악정보가 전파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느냐’다. 같은 비용에서 더 효과적으로 음악을 전파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야하는지를 인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사업도 하고, 프로젝트도 하고 연구도  하는데 힘들지 않나

하는 일의 대부분이 리더이거나 무언가를 기획한다. 기획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궁리해야 한다. 그런데 사업과 연구를 멀티태스킹 하려니 발전이 더디다. 계속 오류가 생기고, 메모리 덤프가 심하다. 물론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주말마다 서울을 다녀온다.  그러다보니 연구는 연구대로, 사업은 사업대로 소홀해져서 어중간한 상태가 되었다. 내가 게으른 편이어서 더 힘든 것 같다.


추천하고 싶은 붕가붕가레코드 소속 가수의 노래가 있다면

‘술탄 오브 더 디스코’라는 밴드의 노래가 좋다. 우선 노래가 신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대중성에 충실하다. 그러면서도 나름의 스타일을 잃지 않았다. 보컬이 대부분의 대중가수에 비해 떨어진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그 점만 극복하면 잘 들을 수 있다. 또,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의 음악을 추천한다. 삶에서 묻어난 음악이랄까, 삶의 깊이와 함께 적절한 위트를 곁들였다. 기존 대중음악에서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20대 초반에는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만, 나이를 먹어가면 그 깊이가 잘 느껴질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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