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의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이 출간되었다. 그 특유의 간결한 문장 덕분에 단숨에 읽히지만, 책이 담고 있는 생각의 깊이는 상당하다. 요새 한창 인기몰이 중인 작가 ‘김영하’의 베스트셀러 ‘살인자의 기억법’을 만나보자.


 김병수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70세의 고독한 노인으로 하루하루 지날수록 기억을 잃는다. 그는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기억을 기록한다. 젊은 시절의 김병수는 베테랑 연쇄살인범으로 30년간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자신이 죽인 부부의 어린 딸 김은희를 만나 25년 전부터 함께 살고 있다. 김병수의 평화로운 나날 도중 새로운 연쇄살인마 김병수가 나타난다. 그가 자신의 딸을 다음 희생양으로 노린다고 생각한 김병수는 김은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김영하의 문장은 호흡이 좋다. 들숨과 날숨이 조화롭다. 숨이 가쁘면 느려지고, 숨을 너무 돌리면 빨라진다. 그래서 독자는 부담 없이 단숨에 읽어 나간다. 이 깔끔한 문체가 결말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킨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가 갑자기 장벽을 마주하면 정체할 틈이 없다. 마찬가지로 빠르게 앞서 나가는 독자의 생각은 당혹스러운 결말을 만나 멈춰 선다. 그리고 정체된 당혹감이 소설에 긴 여운을 남긴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결말이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는 간단하다. ‘내가 사실이라 믿었던 것이 진실이 아니다.’ 어찌 보면 통속적인 교훈이 이상하게도 감성의 틈새를 깊숙이 찌른다. 위에서 언급했던 문체 때문이고, 현대인의 질병 알츠하이머로 주제를 풀어낸 덕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현재 상황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계도 김병수의 머릿속과 다르지 않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이 힘겹다. 세상 모든 것의 가치판단이 흔들리는 시대다. 

어쩌면 우리는 잠재적 알츠하이머 환자일지 모른다. 진실을 잊고 가치를 혼동하는 김병수의 모습은 남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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