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48대 경문왕 시절 이야기다. 경문왕은 남들보다 귀가 길었는데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의관을 만드는 복두장 한 사람 뿐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귀를 콤플렉스로 여겼던 왕이 이를 극구 숨겼기 때문이었다. 복두장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최고급 국가 기밀을 발설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소문으로 퍼지면 소문의 근원은 당연하게도 자신 뿐이니, 왕이 자신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홧병에 시름시름 앓던 복두장은 결국 말년에 도림사 대나무 숲에 들어가 시원하게 외치고 홧병을 떨쳐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작년 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중 하나인 트위터에는 재미있는 계정들이 생겨났다. 일명 대나무숲 계정이다.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공용으로 계정을 만들어 익명으로 트윗을 남기는 것이다. 대나무숲 계정 이용자들은 자신들의 고충이나 직업상의 문제 등을 남기고 서로 공감한다. 혼자 견디고 삭히던 울화를 서로 쏟아내고 털어버리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너무 좁아서 어떤 사람도 익명 뒤에 숨을 수 없었다. 우리 학교엔 대나무숲이 없었다. 어떤 소문도 몇 사람만 거슬러 올라가면 근원을 찾을 수 있고, 아라 게시글도 IP와 ID만 있으면 글쓴이를 찾을 수 있다. 심지어, 동아리나 단체, 출신 과학고등학교로 연결된 촘촘한 인간관계는 대부분의 비판적 의견 표출을 막는 훌륭한 수단이 되었다. 모두가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니, 어느 누가 함부로 날 선 비판을 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최근 생긴 대나무숲은 우리 학교 구성원에게 일종의 해방구다. 실제로 대나무숲은 보는 사람은 물론, 실질적으로 글이나 답글을 쓰는 사람도 예상 외로 많다. 그만큼 우리 학교 사람들에겐 하고싶은 말, 할 수 없었던 말, 털어놓지 못할 말이 많았다는 뜻이리라. 처음 제기되었던 ‘지나친 비방과 폭력’에 대한 우려도 잦아드는 듯 하다. 안좋은 선례를 통해 배운 바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정 작용도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적절한 선을 지키면서 익명성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물론 복두장처럼 인신공격성 발언을 대나무숲에 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촘촘한 인맥이 옭아매 할 수 없는 말들이 쌓여 생긴 홧병이 있다.

그래서 복두장도, 우리도 대나무 숲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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