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는 연일 AIDS, ADHD, SARS 등 각종 질병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지구 온난화, 유전자 조작 농작물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다. 실제로 뉴스 속에서 과학 기술 관련 보도의 비율은 20~30%에 달한다. 늘어난 과학 보도 속에서 언론과 과학자, 대중의 관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 집단인 우리 학교도 과학 저널리즘에 무관심할 수 없다.

2015년, 한국에서 세계 과학저널리스트 회의(WCSJ)가 열린다. 그에 앞서 과학 저널리즘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짚어봤다.
 
▲ 세계 과학언론인회의는 오는 2015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된다 /한겨레 사이언스온 제공
 
과학자와 대중의 생각 차이
대중들에게 과학은 언제까지나 어려운 존재다. 이러한 이해의 어려움은 과학자와 대중의 생각의 틀 차이에 기인한다. 단순한 사건에서 만물에 적용될 수 있는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 과학이다. 보편적인 법칙을 찾아내고자 수십 년 동안 공부해온 과학자들의 사고방식은 대중과 다를 수밖에 없다. 과학자들은 원리에 집중하는 반면, 대중은 사건에 집중한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과학자가 만유인력에 집중할 때 대중은 사과가 떨어졌다는 사실에 의미를 둔다. 이 두 집단 사이의 소통은 힘들 수밖에 없다. 
 
불가결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그러나 소통은 꼭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학 연구가 막대한 예산을 얻으며 진행될 수 있는 것은 과학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시민들에게 연구 성과를 홍보하고 그 중요성을 이해시키는 것은 과학 연구를 가능케 한 시민에 게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의무다. 특히, 많은 예산을 쓰는 거대과학 프로젝트의 경우 그 당위성이 국민들의 폭넓은 이해와 지지를 받아야 의회의 승인을 얻을 수 있다. 미국 정부 1년 예산의 0.5%에 달하는 금액을 매년 지원받는 NASA가 이벤트마다 언론 홍보에 온 힘을 다 쏟는 이유다.
또한, 사회가 고도화되고 복잡한 기술이 사용되기 시작하며 각종 사건 사고를 과학의 도움 없이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나 광우병 파동 등 과학적인 이슈가 생겼을 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관계 속에서 탄생한 존재가 과학 저널리즘이다.
 
지면에 갇힌 과학 기사
그러나 과학 저널리즘이 가야 할 길이 순탄하지마는 않다. 과학이라는 독특한 분야는 저널리즘에 여러 가지 딜레마를 안겨준다. 첫 번째는 독자의 딜레마다. 대중은 과학과 친숙하지 않다. 이들에게 첨단 과학 기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과학 개념부터 차근차근히 풀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신문 지면은 한정되어 있다. 그 안에서 연구의 핵심까지 전달해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기에 독자의 흥미를 끌 정도의 재미를 추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생활에 직접 반영되는 경제면 기사, 정치면 기사와 달리 과학기사는 현실 세계와의 연관 고리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멀어진 과학기사는 오로지 독자의 호기심에만 의존하게 된다. 과학 기사가 ‘국내 최초’, ‘세계 최초’라는 제목과 함께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하는 이유다.
 
정확성과 시의성 사이 신문의 선택은
두 번째는 취재의 딜레마다. 취재하는 과학기술이 첨단에 가까워질수록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과학 기자들이 모든 연구 결과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과학 뉴스의 가치평가는 외부 전문가 집단에게 위탁할 수밖에 없다. 같은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논문의 가치를 물어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과학 뉴스에 대해 신뢰성 있는 평가를 확보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담이 많다. 최초 보도에서 시의성을 놓치면 그 기사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진다. 그러나 기사의 정확성을 보증하는 동료 과학자의 평가는 많은 시간을 요한다. 여기서 기자는 시의성에 집중할 것인가 정확성에 집중할 것인가 선택의 순간을 만난다. 신문사들의 과학 기사가 모두 비슷한 것은 시의성을 위해 내용을 평가하고 분석해보는 과정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다.
 
비판과 응원의 중간에 선 저널리즘
세 번째는 비판의 딜레마다. 과학 저널리즘의 또 다른 역할은 감시다. 신문이 전달한 과학 정보, 특히 과학자의 이미지는 독자들의 맹목적인 신뢰를 받는다. 그만큼 의심과 비판을 통한 정확한 정보전달이 필요한 곳이 바로 과학 저널리즘이다. 그러나 사회나 정치 기사와 달리 과학 기사는 그 분석을 과학자 집단에 많이 의존한다. 연구의 가치 판별부터 비판까지 과학자의 도움 없이 전문적인 자료를 준비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과학과 언론의 공생관계는 과학 저널리즘의 칼날을 무디게 만든다. 과학자들은 과학 저널리즘을 일종의 응원단으로 생각한다. 과학 저널리스트의 역할을 자신들이 만들어낸 성과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과학의 중요성을 선전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언론의 의심쩍은 시각에 반발한다. 열심히 연구한 학자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의심한다는 말이다. 기자가 회의적인 입장에서 기사를 쓰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장려해야 할 일이다.
 
과학 저널리즘은 관심을 원한다
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사회 전반에 퍼져있지만, 그 일을 실행하고 있는 과학 저널리즘에 대한 인식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대중과 과학 사이의 간격이 큰 만큼 과학을 독자들에게 가깝게 전달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과학자와 대중 중 과학 저널리스트들의 이러한 노력을 이해하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매우 적다.
 
과학 저널리즘이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학자와 대중이 함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 저널리즘에 대한 인식 재고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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