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문화유산이라고 하면 ‘전통적인 것’을 떠올린다. 한옥 같은 건물은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은 빨리 헐어버리고 새 건물을 지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근래에 지어진 건물이라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이 많다. 문화재청에서는 가치가 충분한 근대문화유산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한다. 하지만 외관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 수리를 허용하는 법 때문에 소유주들이 여러 번 건물을 보수해 원래의 모습이 훼손되는 경우가 흔하다. 또, 사람들의 자발적 신고로 문화재를 등록하기 때문에 충분한 가치에도 재개발의 열풍에 최소한의 기록화도 없이 철거되기 일쑤다. 이렇듯 근대문화유산은 허술한 법 아래서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잘 깨닫지 못한다. 본원이 위치한 대전에도 조사 7년 만에 약 30채의 근대유산이 헐려 현재는 건축물 130점 등 총 210점만이 남아 있다. 특히 원도심으로 불리는 대전역 인근지역에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있는데, 대부분 훼손되어 시민들에게 문화유산으로써 관심 받지 못하고 있다. 원도심 대전역 인근에서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을 찾아봤다.

▲ 구 충남도청 정면

구 충남도청
중구청역 부근에 있는 구 충남도청은 등록문화재 18호다. 1931년 지어진 뒤 80여 년간 충청남도의 중심역할을 하다 청사가 내포신도시로 이전하며 비게되었다. 정문에서 건물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웅장한 현관과 노란 외벽이 강한 인상을 준다. 바깥 벽면 전체를 덮은 스크래치 타일과 창문 사이에 붙어있는 별 모양의 외부 장식이 충남도청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별 모양의 장식이 조선총독부의 문양과 유사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그런 의미보다는 단순한 장식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현관을 따라 건물로 들어가면 거대한 아치형 천장이 사람들을 반긴다. 화려하게 장식 되어있는 바닥과 계단, 난간이 대리석으로 이뤄져 건물의 위엄을 높여준다.

구 산업은행 대전지점
충남도청에서 대전역 방향으로 가면 커다란 도로가 대전역 앞에 있다. 대전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등록문화재 19호인 구 산업은행 대전지점이 있다. 원도심인 중앙시장과 대전역 사이에 있어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 은행으로 사용되다가 우체국으로 잠시 쓰인 뒤, 현재는 건물 전체가 안경을 파는 매장으로 바뀌었다. 근대유산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건물 전체를 안경점 광고가 뒤덮고 있다. 건물의 윗부분이 화려한 장식으로 둘러 싸여있고, 건물 아랫부분은 화강암으로 단순하게 처리되어 장중한 분위기를 풍긴다.

구 조흥은행 대전지점
중앙시장방면으로 길을 걷다보면 깔끔한 회색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조흥은행의 대전지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르네상스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아 건물을 화려하게 장식하곤 했는데, 이 건물은 외면에 치중하기 보다는 은행으로의 실용적인 면을 강조한 근대적 건물이다. 민족자본을 이용한 최초의 상업은행이라는 특징에 걸맞게 소박하고 군더더기 없는 민중의 모습을 겉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현재는 조흥은행을 합병한 신한은행의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데, 내부가 원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개조되었다. 구 산업은행 건물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간판이 건물을 덮고 있다.

▲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동양척식회사는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수탈기관이다. 총 9개가 세워졌던 동양척식회사의 대전 분점은 당시 번화가였던 대전역 앞 중앙로에 있었다. 빨간 2층 건물로 일제강점 시절 충남도청과 함께 대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신식건물이었다고 한다. 건물을 살펴보면 건물 정면 가운데 위치한 장식물이 눈에 띈다. 빨간 건물 위에 태양을 부조한 조각품이 당시 일제를 연상시킨다. 건물은 좌우 대칭이며, 창틀은 정교한 부조로 이뤄졌다. 현재는 개인 소유의 매장이 1층에 들어서있다.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간판이 붙어있어 건물의 미관을 해친다. 지금은 그저 개인 소유의 건물일 뿐이지만, 한 때는 일제가 온갖 수법으로 우리 농민들을 착취했던 곳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소제동 철도 관사촌의 관사주택 42호

철도 관사촌
대전역 뒤로 발을 옮기면 낯선 건물들이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늘어서있다. 일제강점기에 철도 관사로 쓰인 건물들이다. 70년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오래된 이용원과 색이 바란 간판은 긴 세월을 느끼게 한다. 솔랑시울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길을 따라가면 새로운 모습의 주택을 많이 볼 수 있다. 지붕이 보통 주택보다 훨씬 높고 길이가 길며 건물 바깥벽이 나무판자로 여러 겹 덧대어 처리된 집들이 대부분인데, 바로 철도 관사다. 이런 관사주택들은 솔랑시울길 주변에 40여 채가 남아있어 전국적으로 거의 유일한 철도 관사촌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많은 집들이 사람의 손이 오래 닿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오래된 집을 고치고 고치며 전부터 살던 집을 지키는 사람도 보였지만, 사람이 떠난 뒤부터는 관리되지 않은 집들이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듯 하다.

사람이 더 이상 살지 않는 근대유산은 허물어져가고, 사람이 살고 있는 근대유산은 사람이 남기는 흔적으로 원래의 형태가 훼손된다. 자발적인 문화재 등록과 관리만으로는 우리 주변의 근대유산을 후대에 전하기 힘들 것이다. 모르고 지나칠 때는 오래되기만 한 건물이지만, 알고 나면 건물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 근대유산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옛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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