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인력이 연구•개발 업무에 집중해야 할 것인지, 사회의 다양한 분야로 진로를 확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과학기술 인력이 사회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한다면 그 분야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유능한’ 과학기술 인력이라면 연구•개발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유익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이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한편으로는 과학기술 인력의 공직 진출을 장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기술 인력이 의료, 법률 등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것을‘이공계 인력 유출’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과학기술 인력의 공직 진출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장려할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기술 인력이 연구•개발직 이외의 영역에 진출하면 전공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가령 과학기술 인력이 의학이나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면 전공을 포기하고 안정된 직업을 추구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일쑤이고, 실제로 과학기술에 대해 크게 흥미를 가지지 않은 과학도들이 의학이나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행정고시 기술직 시험을 준비하는 과학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능한 과학기술 인력이 의료계, 법조계, 공직 등에 진출하는 것이 해당 영역을 발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자체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직 이외의 영역으로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과학도 스스로가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 지식과 뚜렷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

 과학기술인의 공직 진출을 장려하기에 앞서, 우리는 지금까지 공직에 진출한 과학기술인이 과연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비전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반성해 보아야 한다. 단지 학부나 대학원에서 이공계 관련 분야를 전공했다고 과학기술 인력인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 인력이라면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비전, 무엇보다도 애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공계 인력의 공직 진출은 확대되어야하지만, 그것이 과학기술에 대한 흥미와 애정을 잃은 과학도들의 탈출구로 이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유능한’이공계 인력이 공직이나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것이 옳은지 옳지않은지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공직이나 다른 분야로 진출하려는 과학도는 적어도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비전, 애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연구•개발직 이외의 분야로 진출하고자 하는 과학도들이 과학기술을 ‘포기’한 것으로 인식되지 않으려면 끝까지 과학도로서 전문성과 자긍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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