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식 한겨레신문사 충청강원팀 기자

“시인은 오로지 시만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 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 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시인 김광규는 <생각과 사이>라는 시를 이렇게 연다. 사람 사는 세상이 자동차를 굴리는 부품들의 구조와 같을 리 없다. 사람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에 갇혀 살기도 하지만, ‘적선지가 필유여경’(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넘친다)이라는 <주역>의 문구대로 살려고도 한다. 

 카이스트에서는 어떨까? 지난해 전임 총장과의 갈등이 여전할 때, 학생들은 한여름 뙤약볕 아래 학교본부 앞에서 일인시위를 했고 성명서도 냈다. 학생들의 행동에 동의하고 격려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정반대 편에서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학생들이 공부나 하지, 왜….”

 학생들의 본업이 공부인 것은 당연하다. 꿀벌 가운데 일벌들의 본업이 꿀을 따다 나르는 일인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학생과 꿀벌을 같은 논리의 좌표에서 다루는 것은 무언가 부당하다는 느낌을 준다. 왜 그럴까? 그것은 사람이 각자의 처지에서 각자가 맡은 일만을 해야 한다는 논리의 부조리 때문이다. 그것을 밀고 나가면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로 치달을 수도 있다. 독재자(dictator)의 어원은 ‘혼자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독재는 권력자가 언어를 점령하고 시민들에게 직업이라는 말로 포장된 노동만을 강요한다. 1970년대 긴급조치가 이를 증거한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공공의 이익에 관련된 문제에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는 약속이다.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은 권력기관이 제한된 권력을 넘어 시민을 사찰하고 여론을 조작하며 현실정치에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려고 했던 사건이다. 카이스트 학부 총학생회는 6월27일 성명서를 냈다. 그 전에 전국의 여러 대학 총학생회가 비슷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정원을 비판했다. 성명서 발표 시점만 따지면 카이스트 학생들은 좀 늦은 편이었다.

 이윤석 학부 총학생회장이 교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처음 의견을 낸 것이 6월20일이었으니, 성명서 발표 때까지 일주일이 걸린 셈이다. 일주일 사이 총학은 설문조사를 벌여 국정원의 정치 개입과 관련해 학생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중앙운영위원회 회의와 의결을 거쳐 성명서를 내놓았다. 조금 늦더라도, 절차를 충실히 지키면서 자신들의 뜻을 정확히 표현하는 학생들한테서 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되살피게 됐다. 민주주의는 올바른 뜻과 정당한 절차가 악수하듯 결합할 때 꽃을 피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공부나 하지”라는 논리를 깨뜨려야 한다. 그것이 시인이 말하는 ‘사이의 논리’일 것이다. 

 김광규 시인의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 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형무소와/ 폐허와/ 공해와/ 농약과/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카이스트에 물리학과 정치, 화학과 경제, 전자공학과 노동, 전산학과 법, 기계공학과 농사의 사이를 생각하는 ‘민주공화국 시민’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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