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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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기록을 남깁니다
  • 정진훈 편집장
  • 승인 2013.07.24 0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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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집 정리를 하다 보면, 초등학교 때 쓰곤 했던 일기장이 툭툭 튀어나오곤 한다. 어릴 적 일기를 만나는 기분은 보통 기쁨에서 당혹으로, 당혹에서 민망함으로 전이되기 마련이다. 운동회에서 호쾌하게 넘어져 망신을 당한 날도 있는가 하면, 짝꿍과 심하게 다투다 선생님께 혼나고 울면서 쓴 반성문 한 장이 끼워진 날도 있다. 어머니는 손주에게 반드시 보여주겠다며 일기장을 버리지 않고 꼭 모아두셨다. 잘났다고 하기는 어려운 인생이라, 분명 필자의 아이는 못난 아빠의 어릴 적을 보며 킬킬댈 것이다.

그래서 차마 지면에 누설하기 부끄러운 필자의 기록들을 보면, 언제나 작은 갈등이 찾아온다. “이 기록들을 파기하면 어두운 과거를 청산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늘 원대한 증거 인멸의 꿈은 마지막 장에서 일기장과 함께 덮곤 한다. 잃어버린 추억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쩌면 방황하던 필자의 아이는 같은 고민을 했던 아빠의 일기장에서 길을 찾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아직 증거를 인멸하기엔 필자의 과거를 들추는 즐거움이 너무 아깝다.

지난 몇 년간, 우리 학생사회도 많이 컸다. 많은 사람이 있었고, 사람만큼이나 많은 의견이 부딪혔다. 때론 넘어지기도, 울기도,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이 순간순간들은 <카이스트신문>의 선배 기자님들이 빠짐없이 기록해주셨다.

누가 기억은 순간이지만 기록은 영원하다고 했던가. 국가기록원도 대화록을 잃어버리는 마당에. 이 때문에 유네스코는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기록들을 보호, 보존하기 위해 세계기록유산을 지정한다. 기록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본지도 몇 년간 옛 신문들을 정리하고 전자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잃어버린 호수가 꽤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잃어버린 호수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우리 학교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싶지만 알 방도는 없다. 다행히, 학부총학생회에서는 역사편찬위원회를 발족해 편찬을 위해 본지 몇 년간의 신문을 통째로 빌려 갔다. 사초를 실록으로 다듬는 것이다.

이번에도 이렇게 한 달이 약간 넘는 우리 학교의 기록을 완성했다. 이 기록이 닳아빠질 때쯤, 누군가는 다시 지면을 펼치며 우리 학교를 되돌아볼지 모른다. 학생사회는 우리 신문에서 길을 찾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누군가는 즐겁게 우리 학교의 기록을 들춰볼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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