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확실히 이 세 글자는 당분간 질리지 않는 화젯거리가 되어줄 것 같다.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과 함께 성(sex)은 언제나 다른 모든 건설적인 이슈나 논점을 잡아먹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날 ‘나꼼수 비키니 사건’이 그랬고, ‘박시후 고소 사건’이 그랬다. 하지만 이런 성적인 코드가 담긴 사건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회자되는 방식은 제법 섬뜩하다. ‘박시후 고소 사건’이 고소 취하로 종결되었을 때 즈음 우연히 지나가다가 들은 말이 있다. “그래서 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이번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반응은 어땠는가. 언론은 앞다퉈 윤 전 대변인의 당일 행적을 샅샅이 되짚어가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측하고 재구성했다. 본인은 속옷을 입고 호텔방에서 나왔다고 하는 한편, 청와대에서는 알몸이었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성추행했는지, 호텔방 앞에서 했는지도 논쟁이 붙었다.

어떤 매체에는 ‘윤 전 대변인을 믿는다’, ‘남자가 그 정도 실수는 할 수 있다’라는 사설이 실린 한편, ‘윤 전 대변인을 미국에 보내 사법처리를 하라’, ‘국제적 망신이다’라는 사설도 실렸다. 정치계에서도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인사가 낳은 참극이다’, ‘예정된 대형사고다’ 하지만, 정작 이 글이나 의견 중에서 누구도 인턴 직원이 겪었을 폭력에 공감해주지 않는다. 그저 이 사건이 국위를 손상했는지, 이후 미국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될 지만 걱정할 뿐이다. 이 사건은 그저 ‘권력자의 비행’에 성적 코드가 양념처럼 얹어져 있는 모양새일 뿐인가 보다. 

인터넷에서 이 이슈를 소비하고 재생산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담론과 패러디가 쏟아졌지만, 네티즌의 관심은 말초적인 성적 코드에만 집중되어있었다. 매우 폭력적인 주장도 제기되었다. 일부 SNS 이용자들이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 인턴 직원이 ‘꽃뱀이다’라며 인턴 직원을 도리어 매도한 것이다. 심지어 피해자가 ‘사실은 박지원 의원의 현지처다’, ‘윤 전 대변인이 음모에 빠졌다’라는 음모론마저 유포되었다. 윤 전 대변인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 와중에 인턴 직원의 신상은 낱낱이 밝혀져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2차 가해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상황을 보다 못한 워싱턴 한인 사회는 이 사건을 정치 쟁점화 하지 말아 달라고 성명을 냈다. 몇몇 칼럼에서도 이같은 상황에 우려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 말초적인 황색 언론에서 눈을 떼고 사람을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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