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작가, DJ.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직업들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영화평론가 이동진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많은 방송에 출연하며 ‘대중이 선택한 영화평론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지난 16일 우리 학교에서 이동진 작가의 ‘책 읽는 밤’을 주제로 강연이 열렸다. (관련기사 본호 4면) 강연을 마친 이동진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했나
고등학생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하지만 문학에 관심이 더 많았다. 당시는 영화가 문학보다 열등한 매체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교 초에 몇몇 예술영화를 봤는데 깜짝 놀랐다. 영화 자체가 워낙 훌륭하기도 했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 당시에 내가 고민하던 인생의 부분과 상당히 겹쳤다. 그때부터 영화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럼 대학 때 이미 영화 관련 직종에 종사할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다. 처음에는 종교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려고 했다. 군대를 다녀오면서 인생에 전환기가 있었고, 마음을 바꿔 공부를 포기했다.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던 중 기자가 떠올랐다. 기자를 하면 덜 싫겠다 싶었다. 그래서 대학교 4학년 때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시는 언론고시가 있어서 다른 사람은 2학년 때부터 스터디를 짜서 공부했다. 하지만 나는 공부를 늦게 시작해서 진도가 안 맞아 스터디 하는 사람들이 안 끼워줬다. 그래서 혼자 언론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다른 시험은 많이 떨어졌는데, 유독 입사시험은 한번에 붙었다. 조선일보 입사 일정이 가장 빨라 지원했는데 철썩 붙었다.
입사할 때 영화 담당 기자가 되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문화부 중에서 영화, 문학, 출판 중 한 가지 분야의 기자를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대학교 때 썼던 책이 출판되었다. 원래는 대학생 시절에 나와야 했던 책이었는데, 무명 대학생이니까 출판사가 늦게 책을 출간했다. 책이 나오자 영화 담당이라는 인식이 찍혀 영화 담당 기자가 되었다. 만약 그때 책을 내지 않았다면, 나는 문학 담당 기자나 문학평론가가 되었을 수도 있다.

갑자기 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일이 어렵지는 않았나
기자 일이 성격상 어려웠다. 지금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영화를 보고 평론만 쓰면 된다. 근데 기자는 다르다. 평론도 써야 하지만 인터뷰를 하려면 사람을 많이 만난다. 그뿐만 아니라 취재원 관리도 해야 되고 밥이나 술을 먹으며 이야기도 나눠야 한다. 기자는 그래서 사교적이면 좋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특히 내성적이었다. 그래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스트레스였다.

1990년대부터 계속 영화평론을 써왔다. 그만큼 많은 영화코너를 진행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시리즈가 있다면
‘부메랑 인터뷰’ 시리즈가 기억에 남는다. 네이버와 계약을 하고 생긴 나만의 사이트에 처음 진행한 시리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시리즈고, 반응도 상당히 좋았다. ‘부메랑 시리즈’는 신개념 인터뷰다. 신작 영화가 나오면 감독이나 주연 배우는 인터뷰를 70번 정도 한다. 대부분이 얕은 인터뷰다. 3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비슷비슷한 질문이 오간다. 인터뷰 당하는 사람도 지루하고, 기자도 남들과 똑같은 기사를 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 시간을 대폭 늘리고 신선한 질문을 고안했다. 한 사람당 인터뷰를 적어도 10시간 이상 했고, 영화에 나오는 대사를 가지고 질문을 던졌다. 글을 읽는 재미가 있도록 시리즈를 진행했다. 그 내용을 모두 엮어 4년 전에 책을 냈다. 지금은 ‘부메랑 인터뷰’ 2권을 준비하고 있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 의미가 큰 시리즈다.

평론은 주관적이기 쉽다. 하지만 신문이나 주간지에 실리는 평론은 객관성도 갖춰야 하지 않나
따지고 보면 모든 평론은 주관적이다. 객관적 평론은 없다. 다만 객관에 수렴하는 주관은 있다. 예를 들어 평론을 시작할 때 스토리를 요약한다고 해보자. 우리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등장인물 중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요약할지 선택한다. 이 행위 자체가 주관적인 선택의 재구성이다. 스토리조차 주관적인데 하물며 연기평이나 편집방직에 대해 논하는 행위는 얼마나 주관적인가. 이런 이유에서 평론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평론을 쓸 수는 없다. 남을 설득하지 못하면 평론이 아니다. 독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객관에 수렴하는 주관적인 평론이다.

관객의 입장과 평론가의 입장에서 영화를 분석하며 보는 것은 분명 다르다. 가끔은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즐기고 싶지 않나
영화를 오랫동안 보다 보면 분석하려 굳이 노력하지 않는다. 분석이 몸에 베서 자연스럽다. 사실 일반인도 낮은 수준에서라도 분석을 한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자주 봐서 그것의 메커니즘을 알기 때문이다. 문명과 거리가 먼 오지의 원주민이 영화를 보면 이해조차 못한다. 영화를 보는 교양이 알게 모르게 현대인에게 쌓여 있다. 나는 보통 사람보다 영화를 훨씬 많이 봤으니 아무리 편하게 보려고 해도 머릿속에는 이미 분석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저주받은 능력이기도 하다.(웃음) 그렇다고 분석 행위가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훨씬 더 재미있다.

일주일에 많으면 10편의 영화가 쏟아져 나온다. 아무리 영화를 보는 일이 직업이라도 다 보기 힘들텐데, 영화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
많은 사람들이 보려는 영화는 본다. 가령 아이언맨3 같은 영화는 꼭 본다. 그렇게 대중의 시선을 끄는 영화는 일주일에 한 편에 불과하다. 그럼 볼만한 가치가 있겠다 싶은 영화를 본다. 나는 영화를 8,000편 정도 봤다. 즉, 그 동안 영화를 보며 8,000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제 내공이 쌓여 그 영화가 좋지 나쁠지 대강 판단이 할 수 있다. 판단의 기준 중 하나가 감독이다. 전작들이 훌륭한 감독의 다음 영화는 꼭 챙겨본다.

혹시 영화가 너무 부실해서 평론에 쓸거리가 없어 고민한 적도 있는가
그런 경우는 없다. 영화평론가는 나쁜 영화라도 왜 못 만든 영화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조악한 영화가 왜 조악한지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부실한 영화라도 평론에 쓸 내용이 많다. ‘디워’를 예로 들 수 있다. ‘디워’를 보고 국위를 선양한 훌륭한 영화라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에게 그 영화가 왜 좋지 않은 영화인지 설득하는 내용을 평론에 쓰면 된다.

우리 학교는 과학기술중점학교다. 이공계 분야 학생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아이언맨3는 어떨까. 세계 최고의 공학자이며 돈까지 많다. 모든 것을 갖춘 남자다. 토니 스타크는 이공계 학생의 꿈 아닌가.(웃음)

조금 범위를 넓혀서, 모든 대학생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폭넓게 다루는 영화를 추천한다. ‘원더풀 라이프’나 ‘인디에어’를 추천한다. 이 영화들은 내가 삶을 살아왔던 방식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다. 지금 생각나는 영화는 이 두 편이다.

마지막으로, 대중에게 어떤 평론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직업윤리를 지키는 영화평론가로 남고 싶다. 각 직업마다 요구하는 덕목이 있다. 거짓말하지 않고, 가진 재능으로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사주받지 않고, 영화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이다. 다른 이의 빡빡한 삶을 영화로 윤택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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