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숭례문 복구 기념식이 열렸다. 2008년 불탔던 숭례문은 5년의 복구 기간을 거쳐 이제서야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복구 기간 중 용 그림 단청이 공개되면서 제대로 복원되고 있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숭례문 복원에 대한 문화재 복원 전문가의 입장은 어떠한지 김주삼 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5년 전쯤, 모 통신사의 광고에서 미남 배우의 대명사인 장동건이 나와 부른 일명 ‘되고송’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곤란한 일이 생길 때마다 지혜롭게 모면하는 방법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살면 인생살이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다양한 패러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되고송’이 시사하는 것은 실상 세상살이가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 CM송이 한참 불리기 몇 달 전 우리 국민은 참 황망한 일을 당했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이 한 노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화풀이로 말미암아 전소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필자도 화재가 거의 진화되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에 화염에 싸여 주저앉는 숭례문을 보면서 너무 참담해서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모든 대한민국 국민도 필자처럼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멘붕 상태를 경험했을 것이다. 수많은 소방관들과 소방장비가 동원되고도 목조건물 한 채를 화마로부터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화가 났던 것은 정작 화재를 낸 노인의 행태나 어설픈 진화작업이 아니라 귀중한 문화재가 손실되고 난 후 사후 조치에 대한 자세였다.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문화재청 담당자가 잿더미가 되어 연기가 나고 있는 숭례문을 등진 채 대책이랍시고 복구비용이 백 몇십 억이 소요되고 공사기간은 5년이 걸린다는 견적을 발표하던 모습과 대목장이란 분의 인터뷰였다. 인터뷰 중에 60년대에 다행히 숭례문 실측해 놓은 게 있어서 다시 지으면 되니 염려 마시라는 말을 들으면서 분노를 했었다. 문화재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의식이 얼마나 형편없었으면 이분들이 이러한 말들을 위안이랍시고 했는지 답답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되고송’과 이러한 상황들이 연관되어 입속에서 맴돌았었다. 숭례문이 타면 도면대로 지으면 되고, 지을 돈이 없으면 국민 성금 받으면 되고, 시간 없어도 대통령 임기 내에 하면 되고…….
 
▲ 숭례문 복원 작업 중 모습. 철엽문을 해체하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해묵은 질문이긴 하지만 숭례문과 같은 국보나 보물과 같은 문화재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지정될까? 그리고 만약 이들이 훼손된다면 어떻게 복원을 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전에 문화재의 정의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문화재는 앞선 세대가 행했던 문화활동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는 사실 막연하거니와 너무 광범위해서 시골 초막의 주춧돌 하나 손때 묻은 지겟다리 하나도 그 범주에 들어가게 되어 과연 문화재가 아닌 것이 무엇인가 힘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기준이 역시 모호하기는 하지만 문화재의 범위는 최소한 어느 시대를 혹은 그 문화를 입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증거물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 또한 개인이나 상황에 따라 가치 기준이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의 주도하에 특별관리와 보존이 필요한 문화재를 지정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국보나 보물과 같은 문화재 지정제도이다. 국보나 보물이란 말에 붙어 있는 숫자는 실은 귀중도에 있어서 큰 의미가 없다손 치더라도 여기에 해당하는 것들은 한 나라의 대표적이 문화재인 셈이다. 국보 1호인 숭례문도 당연히 국가가 인정한 최고의 문화재 중의 하나인데 그렇다면 숭례문은 어떤 가치로 이러한 지위를 얻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조선 시대의 관문으로서 조선 오백 년의 역사와 흥망성쇠 그리고 격동의 근대를 고스란히 겪어온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목조 건축물의 특성상 기둥이나 기와, 상당수의 주춧돌마저도 최초 건설 당시의 것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데 이러한 지위를 누리는 이유는 건축물의 구성재료 그 자체보다 그 문화재가 가지는 형이상학적인 가치가 분명 더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숭례문과 같은 건축물 문화재와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나 청자 매병과 같은 문화재들과 재료나 제작기법의 진정성(authenticity)에 대한 중요도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건축 문화재의 구성재료나 역사의 흔적에 대한 중요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것들이 존중되어야 문화재를 진정으로 아끼고 보호하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런 의식이 결여된다면 앞서 언급했듯이 문화재가 홀라당 타버려도 돈 몇 푼이면 간단히 해결되고 또 서두르면 일반 건물처럼 쉽게 건축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이번 숭례문의 경우에는 건물 전체가 전소되어 재건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애당초 재료나 기법의 진정성과 역사성을 되살리는 복원 개념을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만약 재건축 과정에서 최소 숭례문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흔적이 있었다면 보존해야 타당하다. 그러나 최근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던 단청 처리에 대한 결과물은 문화재의 역사성 존중이란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네티즌들이 문제로 삼은 것은 주로 새로 그려진 단청의 모습이 과거 것에 비해 용의 모양이 우스꽝스럽다거나 생경하다는 외향적인 것이었는데, 단청을 주도한 문화재청이나 단청 전문가들은 기존의 단청은 후기 양식이라 조선 초기 양식을 복원하여 단청을 했노라고 항변을 했다. 문화재 복원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단청 속의 용이 만화캐릭터와 같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화마를 피해 어렵사리 살아남은 단청을 지우고 왜 그 위에 다른 양식의 단청을 해야 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고 적절한 명분도 없어 보였다. 설사 과거 단청이 최근에 그려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숭례문 역사의 일부였는데 최초 숭례문의 단청 방식이라는 확실한 근거도 없이 이를 조선 초기양식의 단청으로 새로 그려 넣는다는 게 합당한 일일까? 굳이 의미를 찾자면 기왕 깨끗하게 재건축을 하는 데 단청도 새롭게 단장하자 정도일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최소한 기존의 단청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어야 했다. 근대적인 복원이론이 정착되기 전인 19세기 중엽에 고딕양식 건축물의 최고 권위자인 비올레 르 듀크(Violet le Duc)는 노트르담 성당의 복원작업 시 건물의 일부를 고딕양식으로 임의로 증축하였다. 지금에 와서 이때 추가되었던 멀쩡한 건물을 최초의 모습을 살리고자 부수고 다시 짓는 일을 상상할 수 없다. 증축된 건물 일부도 이제는 이미 노트르담 성당의 역사의 일부가 되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숭례문의 재건축 과정에서 관계자들은 사용될 나무는 강원도의 홍송을 고집하고 나무 가공도 기계 대신에 옛날 방식대로 수공구를 사용한다거나 심지어 목수들은 과거처럼 바지저고리를 입고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자주 홍보했었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숭례문 재건축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들에게 다소간 위안거리를 줄 수 있었을망정 결코 진정한 의미의 문화재 복원 방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일하게 화마에 살아남은 단청을 제대로 살려서 복원했다면 이번 숭례문 재건축 작업의 의미가 돋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보존의 영어 표기인 conser-vation이란 단어가 보수주의라는 conservative가 같은 어원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화재 유형, 무형의 가치를 복원하는 일은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타협해서는 안 되며 확고한 원칙과 철학에 따라 고집스럽게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숭례문 재건축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 과정이 진정한 의미의 문화재 복원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민심 달래기를 위한 대규모 이벤트에 집착했다는 점이다. 이번 숭례문의 재건축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관심으로 인해 마치 이번 사례가 향후 발생하게 될 문화재 복원의 기준이 될까 심히 걱정된다.
 
 
글/ 김주삼 소장 (art C&R 미술품 보존복원연구소)
정리/ 이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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