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훔치는, 사진 작가 구본창

구본창은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사진 작가이다. 그는 사진을 통해 내면적인 의식 세계를 표현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기록 중심의 전통적인 사진에 익숙해 있던 한국 사진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그의 작업실은 분당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고즈넉했다. 그 역시 그의 작업실과 닮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말을 시작하자 부드러운 웃음 속의 강인함이 묻어나왔다

사람을 관통하는 눈빛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진가이다 보니 사람을 관찰하는 데 관심이 있죠. 눈이 저에게는 스캐너와 같아요. 세상을 스캔하는 것이죠. 눈으로 보다가 제가 관심 가는 대상이 생기면 이를 클로즈업 합니다. 그러다 보면 더 많은 관심이 생기고 이를 계속 관찰하고 찍다 보면 작품을 시작하게 되기도 합니다.

회화와 견주어 보았을 때 사진이 가지는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각기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일단 사진은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을 담을 수 있죠. 본 것을 기계를 통해 그대로 재현합니다. 반면 회화는 머릿속에서 상상한 것을 손을 통해서 재현하죠. 물론 요즘은 사진도 디지털이나 그 외의 작업을 통해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는 타임지에 실리는 사진처럼 사건이나 현상의 기록에 중점을 두었지만, 현대에 올수록 기록성 외 작가의 상상력, 즉 회화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고 있어요. 요즘은 현대 미술과 현대 사진의 차이가 많이 사라지고 있어요. 기록과 작가의 판타지가 합쳐져 현실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이죠.
 하지만, 사진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찍는 반면 회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진은 우리 눈앞에 있는 사실을 재현한다는 면에서 힘이 있어요. 또한, 복제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여러 곳에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어떤 것인가요
 사진을 통해서 내가 세상을 보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에요. 문학가가 글을 쓰면서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을 글로써 표현하는 것과 같이 사진가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세상을 생각하는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이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고민되죠. 사람은 살면서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시간에 한계가 있으니 그 시간 동안에 어떤 것을 가장 잘 이야기해 줄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죠. 제 작품이 만약 지금까지 90이라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고 느꼈을 때, 그 90이라는 벽을 깨고 싶은 것이죠. 운동선수가 스스로 기록을 깨고 싶어하는 것처럼 말이죠. 수학이나 스포츠처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로 할 수 없는 느낌이 있죠.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지가 수치로 나타나진 않지만, 저와 작품은 느낄 수 있습니다. 감상자도 그렇고요. 느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때 말하는 감동이란 작가에 대한 이해, 작가가 이룩한 세계라고 말하고 싶어요. 작가는 이를 유지하고 넓히려고 노력하고 동시에 감상자는 작가에 대한 기대치가 있죠. 팬을 위해서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감상자와 교감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평론가와 같은 비평을 얻기는 어렵겠지만, 사람과 약속이니 그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기대치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작품에 대한 해석과 이해를 하고자 하는 노력이 오히려 감정적인 감상을 방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작품이 있어요. 어떤 작품은 의미나 컨셉이 중요하기도 하고, 본능적인 감상을 유도하는 작품도 있죠. 현대 작품으로 올수록 의미가 점점 중요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모네와 같은 인상파 화가의 작품 같은 경우 누구나 다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작품은 난해한 경우가 많죠. 작가의 설명 평론가의 이론을 통해 일반인들은 좀 더 쉬운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본능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지금은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 외에도 또 다른 이야기를 추구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저는 작품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눈으로 봤을 때 감동을 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죠. 장황한 설명으로 납득시키기 보다는 감성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선생님의 사진은 정지되어 있으면서도 움직이는듯한, 정중동이 느껴집니다
 그것이 제 사진의 특징입니다. 저는 정적이지만 완전히 굳어 있지 않은 모습을 추구합니다. 사실 사진은 정적이죠. 모든 사진은 한순간을 포착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단지 움직이는 것을 멈추게 해놓은 것 이상을 추구합니다. 정물이든 사람 표정이든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지만 알게 모르게 흔들림, 떨림을 느낄 수 있도록 작업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정지되어 있지만 죽어 있지 않은,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 더 매력 있더라고요. 움직임을 강하게 표현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움직이지 않아서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살려내는 것이 재미있어요. 들릴듯 말 듯한 이야기를 렌즈를 통해서 고정을 시키고 인화가 되었을 때 교감의 일정량이 에너지로 스며든다고 믿습니다. 백자를 찍는 작업을 할 때는 백자를 단지 죽어서 박물관에 들어 있는 물체가 아닌 숨을 쉬는 것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탈을 찍은 사진들은 많지만 대부분의 사진은 춤추는 동작을 담고 있죠. 반면 저는 움직이지는 않지만 가면 뒤에서 숨 쉬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탈 하나하나가 단지 춤출 때 쓰는 장식이 아닌 살아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진 대표작가10 : 2009 오디세이’라는 전시가 열렸다고 들었습니다
 이달 14일부터 8월 18일까지 열리는 2009오디세이는 저를 포함한 10명의 사진 작가의 전시회입니다. 오랜 세월 사진계에서 작업한 사람들로 나름대로 다른 작가와 다른 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해하기 어려워도 관객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아날로그적인 작업을 한 사람들이 많아요.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스타일의 작업이 어떤지 감상할 수 있는 재밌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수작업들이 많아요, 저의 경우 꿰맨 작업도 있고, 어떤 작가는 한지에 인화한 경우도 있고요. 조각품처럼 만든 것도 있고요. 많은 작가가 자기 나름의 인화지를 만들었어요.

작품을 잘 감상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기본적으로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모든 예술 작품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너무 건조하게 이론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작품에서 감동을 받아야 하죠. 하지만, 현대 사진이나 현대 미술에 올수록 우리가 작가가 생각하는 상징성이나, 이제까지 작가가 어떤 식으로 어떠한 것을 어떻게 표현해왔는지 전후좌우를 살펴보고 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처음 보면 낯설기 때문이죠. 알파벳을 모르면 영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요. 현대 미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미술에서 사용하는 새로운 시각언어를 이해하려면 작가나 평론가가 쓴 글도 읽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작업했구나라고 느끼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시를 볼 때 카탈로그나 쓰여 있는 글도 읽어보고 작가의 연혁도 알아보고 가면 훨씬 이해하기 좋을 것입니다. 국악이 인기 있는 음악사조는 아니지만, 우리가 잘 모르더라도 분명 이야기하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모른다고 이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모르는 분야라도 분명 그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노하우를 쌓은 사람들이 있으니, 그러한 새로운 분야도 장인이 되려고 노력한 사람들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이해하고 읽기 위해 관객 역시 노력해야겠죠.

KAIST 학우들에게 하고싶은 말
 좋은 대학에 진학한 우수한 영재라고 인식이 되네요. 이 역시 KAIST의 브랜드인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예술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저 자신도 과학을 매우 좋아해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연구한다는 점이 도달할 수 없더라도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예술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나름대로 그 분야를 연구한 사람들의 업적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예술과 정반대처럼 보이더라도 과학의 그 아름다움에 감동을 하기도 합니다. 학생들도 과학적인 공부 외에 주변에 관심을 두고 예술적인 감상을 키우면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 더 빛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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