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하다” “어렵다” “따분하다” 바그너의 오페라를 처음 접한 대다수가 보이는 반응이다. 바그너의 음악은 우리에게 낯설다. 괴상한 화음, 끝이 없는 선율에 오페라 초심자의 귀는 괴롭다. 하지만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해하면 바그너의 작품은 결코 어렵지 않은 오페라가 될 것이다.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아보자.

 

 바그너가 악극을 창조하게 된 배경
바그너가 활동하던 무렵의 오페라는 성악적인 기교와 화려한 무대에 치우쳐져 있었다. 문학적인 요소는 경시되었고, 그리스 비극의 정신을 재현한다는 오페라의 정신은 무색해졌다.
바그너는 허황된 음악을 배제하고 문학의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과 음악의 관계에 혁신이 필요했다. 그는 유도동기, 무한선율, 악기 사용의 혁신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또, 그는 총체예술을 통해 이를 타파하고자 했다. 때문에 각본, 음악, 무대를 포함한 모든 것을 스스로 고안했다. 대본을 스스로 썼기 때문에 독일어를 사용했고, 이는 바그너가 독일만의 오페라를 만들고자 했던 것과 상통한다.
바그너가 20세기에 태어났더라면 영화감독을 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는 연출, 각색 등을 모두 혼자서 했다. 자신이 대본과 음악을 직접 쓰니 음악과 문학의 균형과 일치를 이룰 수 있었다. 또한 대본을 위한 소재를 구할 때도 더 이상 그리스 비극이나 신화에 의존하지 않고, 독일적인 것을 추구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의 신화, 전설, 역사 등에서 소재를 골랐다. 그래서 보다 오페라다운, 보다 독일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사람들은 바그너가 개척한 새로운 분야를 ‘악극’이라 명명했다. 하지만 바그너 자신은 절대 ‘악극’이라 부르지 않고 ‘형상화된 음악의 행위’라고 불렀다. 그는 악극이 음악극과 혼동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음악이 그의 예술 표현의 주요 수단임을 강조하고 싶었다.

문학과 음악의 일심동체, 유도동기
유도동기는 1850년작 <로엔그린>부터 나타나는 서너마디 길이의 음율이다. 주로 특정한 인물, 사물, 사건, 감정 등을 내포한다. 바그너가 음악과 문학을 연결지으려고 했던 노력의 산물이다. 유도동기가 반복적으로 나옴으로써 그의 음악극은 복잡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음악적으로 통일감을 가지게 되었다.
“상상해보세요, 단 하나의 Eb 3화음으로 <라인의 황금>의 전체 서곡이 쓰입니다” 바그너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라인의 황금>은 바그너의 1874년작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중 첫 작품이다. 바그너가 말한 Eb 3화음은 <라인의 황금> 1장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원형’이라 불리는 가락이다. 이를 빠르게 하면서 현악기 소리를 더하면, 만물이 자라고 성장하는 ‘자연’의 유도동기가 된다. 그리고 이 유도동기를 2배의 속도로 빠르게 해서 연주하면 그때는 유유히 흐르는 ‘라인강’의 유도동기가 된다. 바그너가 빠르기로 여러 유도동기를 만들었듯이, 조성의 변화를 통해서 또다른 유도동기를 만들었다. 장조인 ‘원형’을 단조로 바꾸면 모든 것의 쇠퇴, 쇠락을 뜻하는 ‘죽음’의 유도동기가 만들어진다. 이외에도 리듬의 변화, 높낮이의 변화 등으로 수많은 유도동기를 만들었다.

화성을 다양하게 만든 바그너
바그너는 화성에 대한 발상을 과감하게 전환했다. 바그너 이전에는 주로 온음계를 사용했다. 온음계는 흔히 말하는 도레미파솔라시도 8음계를 말한다. 하지만 바그너는 도#, 미b, 파#, 솔#, 시b을 추가했다. 이는 온음과 함께 반음을 추가한 것으로 음계가 12개로 확장되었다. 즉, 8음계로 제한되었던 화성을 획기적으로 확장시켰다. 이로 인해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1865년작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에서 반음계 화성을 처음 선보였다. <트리스탄 화성>이라고 불리는 이 화성의 특징은 허위로 음악을 마치려는 듯한 부분이 많은 부정확한 3도 관계의 진행이다. 이같은 음악적 불연속성은 극중 인물의 고뇌, 혼돈을 훌륭히 표현하게 해줬다. 끊임없는 반음계적 전조, 빈번하게 나타나는 허위로 음악을 끝내려는 부분은 그 이후 시대를 풍미하게될 반음계주의의 초석이 되었다.

웅장한 바그너 사운드의 비밀
바그너는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었다. 제1바이올린이 주선율이 아닌 배경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현악기들이 화음을 연주하며 화성을 강화하기도 하고, 호른과 트롬본 등 금관악기가 주도권을 잡고 소리의 뼈대를 형성한다. 모두 이전의 작곡가는 하지 않았던 시도다.
바그너는 플루트와 오보에 같은 목관악기를 서너대씩 편성했다. 많은 독일 작곡가들이 목관악기를 2대씩 편성했던 것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목관악기 편성이 3대 이상이 되면 3화음을 이루는 세 개의 음을 모두 채워 연주할 수 있게 되어 화성적으로 유리하다. 아마도 바그너의 음악이 그토록 꽉 차고 충실하게 들리는 것도 이같은 맥락을 같이 한다.
1845년작 <탄호이저>의 서곡에서는 고독한 순례자 이야기가 나온다. 관악기들이 웅장한 순례자의 테마를 연주하는 동안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기는 계속되는 16분 음표들을 빠른 속도로 연주해야 한다. 웅성거리는 바람소리 같은 현악기 연주가 순례자의 테마를 더욱 멋지고 풍성하게 만든다. 바그너의 음악이 그토록 매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연 내내 끊기지 않는 무한선율
그는 음악과 언어라는 두 요소가 절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음악 없이는 가사가 무의미하고 가사 없이는 음악이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바그너는 주인공이 혼자서 부르는 아리아가 중심이었던 과거 오페라를 뛰어넘어 모든 음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를 바랬다. 바그너는 각 장면마다 시작과 끝이 잘 구분되지 않고 음악으로 인해 단락별로 끊어짐 없이 서로 통일되도록 하는 무한선율 기법을 사용했다. 때문에 이전의 오페라와는 달리 단락감에 의해 극의 진행이 방해받지 않았다. 음악이 끊기면서 감정의 이입도 끊기기 때문에 강력한 결말이 없는 무한 선율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러한 그의 형식은 그 때까지 모든 오페라가 취하고 있던 곡의 형식을 깨는 시발점이 되었다.

오늘날 바그너의 작품은 동시대 작곡가 베르디보다 현저히 적게 공연된다. 탄생 200주년 기념 공연도 베르디는 많지만, 바그너는 한 두편 정도로 손에 꼽을 정도다. 바그너의 작품에는 오케스트라에 밀리지 않는 성량의 ‘바그너 가수’와 특이한 구조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야 하는 ‘바그너 지휘자’가 필요하다. 현실상 이 같이 바그너의 작품에 특화된 인물은 드물다. 또한 과도한 공연의 길이도 상연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다.
베르디의 작품이 오늘날 더 사랑받기 때문에 몇몇은 베르디를 더 뛰어난 작곡가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그너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발상을 가진 작곡가였다. 인기와 작품성, 둘 중 무엇이 더 우위인 가치인지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문화행사 소개

서울시향의 그레이트 시리즈1
기간 | 2013년 5월 7일
장소 |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시간 | 20:00
가격 | R석 12만원 / S석 9만원 / A 석 6만원 / B 석 3만원 / C석 1만원
문의 | 02)1588-1210
소개 |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서울시향이 야심찬 공연을 펼친다. 정명훈 예술감독의 지휘로 <탄호이저> 서곡,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 <니벨룽의 반지> 관현악 하이라이트를 공연한다 

▲ 예술의 전당 제공

바그너 탄생 200주년 <콘체르탄테>
기간 | 2013년 5월 22일
장소 |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시간 | 20:00
가격 | R석 10만원 / S석 7만원 / A 석 5만원 / B 석 3만원
문의 | 02)6099-7400
소개 | 바그너 탄생 200주년과 한국바그너협회 창립 20주년을 맞아 KBS교향악단이 바그너 특별공연을 마련한다. <리엔치> 서곡, <탄호이저> 서곡, <신들의 황혼> 3막 등 주옥같은 명곡을 연주한다

▲ 예술의 전당 제공


2013 국립오페라단 <파르지팔>
기간 | 2013년 10월 1일, 3일, 5일
장소 |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시간 | 16:00
가격 | R석 15만원 / S석12만원 / A석 8만원 / B 석 5만원 / C석 3만원
문의 | 02)586-5282
소개 | 바그너의 예술혼이 담긴 마지막 역작, 오페라 <파르지팔>이 국내 초연으로 무대에 오른다. 바그너 명장으로 손꼽히는 지휘자 로타 차그로섹이 <파르자팔>의 절대적 가치를 무대 위에 선보인다

▲ 예술의 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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