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이 지나도록 선명히 남은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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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이 지나도록 선명히 남은 발자국
  • 강재승 기자
  • 승인 2009.07.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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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의발이처음달에닿은날, 그 40주년을 기념하며

인류에게 달은 언제나 신비의 존재였다. 사람들은 달의 신을 숭배했고 달에 대한 온갖 미신을 믿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달에 토끼가 있다고 했고, 서양에서는 달에 사람이 산다고 믿기도 했다. 이런 모든 미신과 추측들은 인간이 달에 도착하며 끝났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사람들의 우주에 대한 인식을 통째로 바꾸는 대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올해로 벌써 40돌을 맞았다. 이를 기리며 달 착륙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오랫동안 준비된 아폴로 계획
 처음으로 달에 사람을 보내는 데 성공한 우주선, 아폴로 11호는 아폴로 계획의 다섯 번째 유인 우주선이다. 아폴로 계획은 사람을 달에 보냈다가 무사히 귀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국 항공우주국(이하 NASA)의 계획이다. 아폴로 4, 5, 6, 8호는 무인 우주선이었으며, 그중 8호는 달 궤도를 도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최초로 다른 천체 궤도에 진입한 기록이다. 아폴로 9호는 사람을 태우고 달 궤도를 돌았다. 아폴로 계획은 사람을 지구궤도에 올리려는 머큐리 계획과 2인승 우주선의 도킹 및 자세 제어를 목적으로 한 제미니 계획의 후속이다.

우주 경쟁은 지구 궤도에서 시작되었다
 머큐리 계획은 NASA의 첫 유인우주선 계획으로, 사람 한 명이 탄 우주선을 지구 궤도에 올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머큐리 6호(프렌드십 7호)가 가장 먼저 사람을 태우고 지구 궤도를 도는데 성공했지만, 이는 1962년의 일로 소비에트 연방(이하 소련)의 보스토크 1호보다 늦은 성과였다. 소련과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질 수 없다고 생각한 미국은 우주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케네디는“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라고 공언했으며, 제미니 계획이 시작되었다.

제미니 계획, 달 착륙을 위한 경험을 쌓다
 사람 두 명을 우주선에 태워 지구 궤도에서 도킹 및 자세 제어를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제미니 계획은 아폴로 계획의 시발점이었다. 또한, 제미니 계획에는 우주 유영을 한다는 목표 역시 설정되어 있었다. 이는 1965년 6월에 달성되었으며, 최초로 우주 유영을 한 미국인은 에드워드 화이트였다. 가장 처음 우주 도킹을 성공한 기체는 제미니 7호이다. 제미니 7호의 원래 목표는 우주에서 사람이 2주 이상 살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킹을 계획했던 제미니 6호가 임무에 실패하면서 제미니 7호가 대신 도킹 임무를 수행했다. 제미니 12호까지 수행된 제미니 계획은 아폴로 계획을 위한 충분한 경험과 지식을 쌓게해 주었다.

아폴로 11호, 지구를 출발하다
 아폴로 11호는 1969년 7월 16일 새턴 V 로켓에 실려 발사되었으며 닐 알덴 암스트롱(이하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이하 콜린스), 에드윈 올드린(이하 올드린)이 승무원으로 탑승했다. 아폴로 11호 우주선은 비행모듈인 콜롬비아(Columbia)와 달 착륙 모듈인 이글(Eagle)로 이루어졌다. 콜롬비아는 미국의 국가 상징 등에 자주 쓰이는 이름이고, 이글은 미국의 상징인 대머리독수리를 의미한다.
 오후 1시 32분에 발사된 아폴로 11호는 12분 후 지구 궤도에 진입했다. 지구를 한 바퀴 반 돌고 나서 S-IVB 로켓이 달 방향으로 우주선을 추진했다. 그로부터 약 30분 후, 콜롬비아가 새턴 V 로켓에서 떨어져 이글과 도킹, 달 방향으로 나아갔다. 7월 19일에는 달에 도착해 달
궤도에 진입했다. 착륙 날짜인 7월 20일, 이글이 콜롬비아에서 분리, 착륙 지점인 고요의 바다로 하강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이글을 조종했으며, 콜린스는 콜롬비아에 남아 달 궤도를 돌고 있었다. 올드린은 훗날 이글이‘하늘에서 본 물건 중에 가장 괴상하게 생긴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달 표면에 안착한 최초의 착륙선
 착륙 지점을 고요의 바다로 결정한 것은 비교적 평탄하고 넓은 지역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달 표면에 근접했을 때 거대한 크레이터가 보였고, 크레이터 내부에 매우 큰 바위들이 있었다. 자동 착륙이 어렵다고 판단한 암스트롱은 반 수동 조종으로 전환, 올드린이 불러주는 고도 및 속도 정보를 바탕으로 이글을 달에 착륙시켰다. 착륙 시간은 20일 오후 10시 56분이었다.
 흔히 아는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기지. 이글은 착륙했다"는 달 표면에서 최초로 한 말이 아니다. 달에서 최초의 발언을 한 사람은 올드린으로,“접촉등 점등. OK, 엔진 정지. ACA 해방"이 인류가 달 표면에서 가장 처음 한 말이다. 그 후 암스트롱이 이글을‘고요의 기지'라고 바꿔 부르는 바람에 지상 통제센터에서는 혼란이 일었고, 최종적으로 착륙을 확인한 후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개신교 신자였던 올드린은 착륙 후 이글에서 성찬식을 올렸다. 이는 달에서 행한 최초의 종교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전하게 돌아온 조종사들, 임무 완수
 7월 21일 오전 2시 56분, 암스트롱은 이글에서 내리면서“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라고 말했다. 달 표면에 발을 내디딘 후 암스트롱은 카메라를 작동했고, 이 카메라로 찍은 영상은 전 세계 6억 명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중계되었다. 이후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 표면에 미국 국기를 꽂았다. 바로 뒤에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닉슨과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올드린은 달 표면에서 광석 등을 21.5kg 채집했으며, 이를 상자에 담아 이글 안으로 수송했다. 마침내 21일 오후 5시 54분, 이글은 달 표면을 이륙해 콜롬비아와 도킹에 성공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콜롬비아로 옮겨 탄 뒤 이글은 달 궤도상에 버려졌다. 이후 달 어딘가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1969년 7월 24일, 콜롬비아는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 지구를 떠난 지 꼬박 여드레 만에 조종사들은 임무를 마쳤다.

그 후 벌써 40년이 흘렀다
 달에 사람의 발이 닿고 나서 많은 일이 있었다. 아폴로 계획은 1972년 발사된 아폴로 17호까지 계속되며 인간을 달에 보냈다. 달 착륙으로 높아진 우주에 대한 관심은 1975년 바이킹 1호가 화성에 착륙하고 1977년 보이저 1호를 발사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나라에서 달 착륙 기념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첫 달 착륙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던 어린이들은 이제 장년층이 되었고, 그중에는 달에 발을 내딛는 암스트롱을 보며 우주에 대한 꿈을 키운 사람도 있었다.
 우리 학교 항공우주공학전공 방효충 교수는“어렸을 적에 동네에서 달 탐사 로켓이 발사되는 장면을 TV로 본 기억이 난다. 달을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만 보다 인류가 달에 착륙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무엇보다 신기했고 믿기지 않는 느낌이었다. 달 표면을 비행하는 착륙선과 멀리 둥글게 보이는 지구의 사진은 경이로웠다.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는 부족했으나 크게 설레었던 것이 기억난다.
 달 착륙 및 인류의 우주 탐사는 내가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지구 밖으로 나가 달까지 항해한다는 거대한 규모가 놀라웠다. 또한, 항공우주기술이 우주로 나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도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우주탐사는 지금도 우주공학에 대한 큰 동기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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