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사보다는 '어머니'로 기억되고픈 북측 식당 조리사 김순덕 씨

우리 학교 북측에 위치한 카페테리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오전 7시 출근해서 오후 7시 30분까지 학우들의 식단을 위해 힘쓴다. 지난 12월 우리 학교로 와서 현재 북측 식당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는 김순덕 씨를 만나 간직하고 있는 꿈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갑작스러운 회사 부도에 식당 일로
부족한 것 없이 생활하던 김 씨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남편의 점포 부도였다. 살고 있던 집을 경매에 부치겠다는 통지서가 날아들어 왔다. 슬픔에 겨워 울고 있던 김 씨에게 ‘엄마는 자식을 잃은 것도 아니고 남편을 잃은 것도 아니고 사소한 돈을 잃은 것뿐이다’라는 작은 딸의 말은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계속된 불황에 일을 찾아 나섰지만, 지천명(50세)의 나이를 지나서 할 수 있는 일은 적었다. 일거리를 찾다가 식당 쪽 일을 하게 되었다. 식당도 개인 식당보다 카페테리아가 김 씨에게 오히려 맞을 것 같아 대전 국군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리 학교를 알게 되었고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김 씨는 “우수한 두뇌들이 모인 곳이고 젊고 패기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식당일은 쉽지 않았다. 일하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코피가 나기도 하고 일이 끝난 뒤 다리가 퉁퉁 붓는 등 고생을 자주 경험했다.

이런 힘든 일을 겪으며 김 씨는 자녀들에게 항상 “가세가 기울었다고 하고자한 바, 꿈을 포기한다면 너희들의 삶뿐만 아니라 엄마와 아빠의 삶도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김 씨의 2명의 딸과 1명의 아들은 시련을 딛고 훌륭하게 성장했다. 큰딸은 토익스피킹 만점 강사가 됐고, 작은딸은 대전시 영어과 중등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대학 졸업과 동시에 고등학교 영어 교사가 되었다. 아들 역시 혼자만의 힘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해 명문대의 새내기 대학생이 되었다.

 

식당일을 하면서 만난 자식 같은 학우들
김 씨는 밥을 퍼주고 권하면서 만난 학우들이 자식들처럼 사랑스러워 보인다. 최근 새내기가 된 아들의 또래 학우들을 보면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게 된다. 특히 부모가 농부라는 한 학우가 김 씨는 기억에 남는다. 밥그릇을 가져가면서도 귀한게 다루는 이 학우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부모가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 학우는 밥 한 알, 한 알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땀처럼 소중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미리 퍼 놓은 것 중에 밥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 주걱만 주세요’, ‘깎아서 담아주세요’라든지 주문하기에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부모가 농사를 짓기 때문에 밥 한 알도 허투루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자기가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주문해서 먹는다고 말했다”라고 떠올렸다.

김 씨는 학우들이 음식을 조금만 더 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까 버려지는 음식들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김 씨는 “옛날 어머니들이 머리에 함지박을 이고 장사를 해 돈을 벌어 자식 교육을 하고, 굶기지 않고 산 것을 요즘 세대들은 전설처럼 듣기만 했다”라며 “풍요로움 속에서 궁핍을 모르고 자라 음식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오랫동안 간직해온 책을 내고 싶은 소망
국문학과를 졸업한 김 씨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다. 현재 쓰고 있는 책을 3년 내에 출간하는 것이다. 이미 꽤 많은 글을 썼고 상을 받은 적도 여럿 있다. 특히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의 격려를 받아 출판에 자신감을 얻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저자인 장 교수를 알게 된 것은 장 교수의 카페를 통해서다. 카페에서 글을 많이 접하다가 서로 알게 되었다. 김 씨는 용기를 내서 장 교수에 글을 보여줬는데 글이 온기가 있고 잘 다듬으면 좋은 글이 되겠다는 칭찬을 받았다. 칭찬에 힘입어 글을 다듬던 김 씨에게 장 교수의 작고 소식은 충격이었다. 암이 재발해 장 교수가 작고한 뒤 글의 진행 상황은 매우 더뎌졌다. 김 씨는 현재 출간에 힘쓸 계획이다.

 

우리말 겨루기에서 달인이 되어보는 것이 목표
김 씨에게는 소망이 하나 더 있다. 우리말 겨루기 패자부활전에 나가 최후의 1인 달인에 등극하는 것이다. 패자부활전은 1년에 한 번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했던 사람들을 모아서 진행하는 것이다. 패자부활전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40~50:1보다 훨씬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그래서 현재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사전이 수록된 전자사전을 항상 휴대하며 틈틈이 준비하고 있다. 김 씨는 “패자부활전을 준비하면서 글 쓰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박완서 씨의 책을 읽으면서 생소한 고유어가 많았는데 공부를 하면서 보니깐 사전에 다 있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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