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대덕을 만나다 (6)
상태바
KAIST, 대덕을 만나다 (6)
  • 황선명 기자
  • 승인 2009.07.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초과학연구소 분석연구부장 원미숙 멘토

비가 온다던 일기예보가 무색할 만큼 화창한 7월 8일 오후. 김율(화학과 박사과정), 박지훈(화학과 석사과정), 안소영(무학과 09학번) 세 학우가 의 여섯 번째 멘토인 원미숙 박사를 만나기 위해 기초과학연구소를 찾았다. 큰 키와, 미인 소리 많이 들었을 법한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세련된 옷차림으로 멘티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원미숙 멘토는 억 대 연봉을 받는 여성과학기술인으로 잘 알려진 화학분석 전문가다

 진취적인 연구와 과제 수행을 통해 두각을 드러낸 멘토는 본업인 기초과학연구소 부산센터 분석연구부장뿐 아니라 대한여성과학기술인협회 회장직을 비롯해 각종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인 원더우먼이다. 멘토는 일주일 중 부산에서 기초과학연구소 분석센터 업무에 3일, 대전에서 대한여성과학기술인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3일, 서울에서 대외활동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작년 한 해에만 10만 km를 움직여 조금 있으면 다이아몬드 철도 회원이 된다며 너스레를 떠는 멘토는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멘토는“삶은, 도전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힘주어 조언했다. 멘토는 기회가 주어지고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을 때는 주어진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생각을 도전적으로 바꾸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대 화학과 학부를 졸업했을 때, 좀 더 공부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멘토에게 주위에서 KAIST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부산을 떠나는 것이 싫었던 멘토는 부산대 석사과정에 입학해 그곳에서 박사 학위까지 마치게 된다. 그 선택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부산을 떠났더라도 멘토는 지금과는 다른 멋진 삶을 살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사 졸업 디펜스 직전에 결혼했다는 멘토의 말을 듣고 김율 멘티가 자신도 40일 전에 결혼식을 올린 새댁임을 밝혔다. 원 멘토는,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하게 되는 고민인‘어머니로서의 헌신의 부족’에 대해 죄책감이 적다고 했다. 최선을 다한 멘토의 삶을 아이들이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엄마가 일 그만두고 집에 있을까?" 라고 물었더니“아니, 엄마 그건 참아"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맞아요. 그때 일을 그만두었다면 죽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멘토의 눈에서 일에 대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멘토의 가정 이야기를 듣던 김율 멘티가 아이 갖는 것은 취업할 때까지 미뤄두려 한다며 조언을 구하자 멘토는 뜻밖에 단호하게 대답한다. 우선 1년 정도 시간을 갖고 아이를 가지며 박사 후 연구원이나 파트타임 업무를 하는 게 좋다는 조언이다. 멘토가 겪은 가슴 아픈 경험이 그런 조언의 이유였다. 취업까지 아이 갖는 것을 미루다가 막상 아이를 가지려고 마음을 먹으니 불임이 되었던 것. 결국, 결혼한 지 4년 8개월
만에 첫 아이를 낳았지만, 취업도 아이 갖는 것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던 그 시절이 무척 힘들었다고 멘토는 회상했다.

 결혼을 했다면, 무엇보다 출산에 대한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는 것이 멘토의 조언이었다. 멘토의 성공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멘토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원 멘토가 예전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열려있는 기회가 상당히 많아졌다고 이야기하자 김율 멘티는 아직도 사회에 남아 있는 차별섞인 시선에 대해 이야기했다. 면접을 보러 가면“2년 동안 지방에 가 있게 될텐데 어찌할 것이냐, 애는 언제 낳을 것이냐”라는 질문을 듣게 된다는 것.

 멘토의 대답은 유쾌했다. “애 낳는 거 남자는 못해요. 그럴 때는, 언제 아이 낳겠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것은 여성에게 한계이자 장점이에요. 본인이 그것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때 나오는 대답이 달라지겠죠. 그리고 또 하나, 지방에 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 가야 합니다. 여자라서 못하는 일은 세상에 거의 없어요"

 여자라서 못한다는 이야기가 듣기 싫어서 온갖 잡무를 도맡아 했다는 한 신문 기사가 화제가 되자 멘토는 타고난 부지런함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워낙 부지런해요. 주말에도 잘 안 눕죠. 오죽하면 우리 딸이‘엄마, 좀 누워' 한다니까요. 그리고 나는 남자한테‘가스통 옮겨줘' 이런 얘기는 안 해요. 못질도 남편보다 내가 더 잘 해요"라며 웃음을 머금고 말한다.

 여성 과학자로서 성공하기까지 어려운 시간을 오롯이 거쳐 온 멘토는“예전엔 여자가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남자보다 5배 노력해야 된다고 이야기해줬어요”라고 말하며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상황을 예로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애 챙겨서 학교 보내고 화장하다 보면 남자보다 에너지가 몇 곱절은 더 들어요. 에너지 분배에 대한 노력도 계획을 잘 세워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기 관리도 마찬가지로
중요해요. 똑같은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청바지 입고 대충 온 듯한 여성 과학자와 말끔하게 잘 차려 입은 여성 과학자, 둘 중에 누구를 기용하겠어요?"

 또한, 멘토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리더의 소양에 따라 팀의 분위기와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리더로서 갖춰야 할 소양을 묻는 안소영 멘티에게 멘토는 세 가지를 꼽는다. 분별력과 열린 마음, 베푸는 마음이 그것이다. 지난 6월 30일 함께 일하던 직원 4명을 비정규직법에 따라 내보내야 했던 것은 멘토에겐 리더로서의 분별력 문제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내보낸 것이 아직도 마음이 아프지만, 리더로서 멘토는 단호한 결정을 했다. 미리 앞길을 따라 준비하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내보낸 것이다. 미적거리면서 계속 보듬는다면 당장은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그것은 결국 좋지 못한 리더라는 것이 멘토의 판단이었다.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생각하는 김율 멘티에게 조언이 이어진다. 지금 연구한 논문을 정리해서 결과를 제출하고 박사 후 과정을 밟으며 3년 동안 논문을 10편 이상 써서 경쟁력을 갖추라는 것이다. 3년에 열 편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멘티들에게, 멘토는 “이렇게 바쁜 저도 1년에 논문 3, 4편 씁니다"라며 부지런함을 강조한다. 결국, 멘토의 본업은 연구이며,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논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토요일은 꼬박 연구에 할애한다. 초인적인 멘토의 스케줄에 멘티들이 혀를 내두르자 멘토는 욕심 많고 에너지 많은 탓이라며 웃는다.

 “거듭 말하지만, 도전성을 가지고 인생을 계획하세요. 10년 후, 20년 후의 자기 모습을 생각하면서요. 어떤 것을 철저하게 준비할 것인가를 정하세요. 철저한 준비를 하면 선택의 기회도 넓어집니다. 선택했다면, 이것저것 다 생각하지 말길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 전투적으로 사세요. 무엇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즐겁게 사는 것도 중요하죠. 그렇게 성공을 하면, 그 성공을 나누고 베푸세요. 그것이 성공한 삶입니다"

 멘토의 다음 목표는‘나눔'이다. 16년 동안 기초과학이 애인이고 삶이었지만, 이젠 그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멘토의 고민이다. 모쪼록 이제 막 날개를 편 멘티들의 꿈도, 가장 높은 하늘을 비상하고 있는 멘토의 또 다른 꿈도 이루어지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