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대덕을 만나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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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대덕을 만나다 (5)
  • 황선명 기자
  • 승인 2009.07.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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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핵융합연구소 선임연구단장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6월의 한낮,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핵융합연구소 선임연구단장실. 갑자기 몰려든 손님으로 방안이 가득 찼다. 오늘 권면 박사를 찾아 온 손님은 김재준(원자력및양자공학과 석사과정), 전병국(원자력및양자공학과 석사과정), 황기원(항공우주공학전공 07학번) 학우. 의 다섯 번째 멘티들이다. 이들이 더위를 식히려 물을 한 잔씩 들이켜며 호흡을 돌리는 사이 권면 멘토가 자리에 앉았다

 첫 만남이 대개 그러하듯 약간의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다른 멘티들이 강의 시간 마냥 앞에 필기도구를 꺼내놓은 것을 본 김재준 멘티가“어라, 나만 없네”하며 당황해하자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미리 멘티들의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체크한 멘토는 멘티들의 얼굴을 보며 이름을 척척 맞춘다. 모래 속에 얼굴만 살짝 나온 사진을 첨부했던 김재준 멘티에게는“모래 속에 파묻혔던 사람인가요?”라며 농담을 던진다.

 멘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멘토의 아들 이야기가 나왔다. 멘토는 아들을 위해 1년째 베이스기타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아들과 공감대를 만들고 싶어서 아들에게 배웠습니다. 교감도 없이 훈계만 늘어놓다가는 잔소리쟁이가 될 것 같았거든요. 코드만 짚어주는 정도지만, 요즘엔 교회에서 어린이 학교 무대에도 섭니다. 얼마 전에는 아들 따라서 드림씨어터라는 록그룹 콘서트를 갔었는데, 3시간 동안 다들 하는 대로 일어나서 손 들고 방방 뛰는데 죽겠습디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아들이랑 친해졌어요. 어때요. 아버지 되기 어렵죠?”라는 멘토의 말이 웃음을 자아냈다.

 김재준 멘티가 감동에 가득 찬 표정으로 손뼉을 치자 멘토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는다. 황기원 멘티가 바쁜 와중에 가정에도 충실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멘토는“결혼 한 번 해보세요”라며 웃더니 이내 자신의 가치관을 풀어낸다.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유명한 과학자,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면 과학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되기 위해서 포기해야하는 것을 계산해 보아야 해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가정은 절대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은 양쪽에 모두 충실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내 삶의 자리에서 나의 역할을 최대한 충실히 하는 것,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며 사는 것이 내겐 무척 중요했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기대하는 것은 위인전에서처럼 그 분야를 미친 듯 파고든 이야기일지도 모르는데 미안하네요”라며 멘토는 겸연쩍은 듯 웃는다.

 김재준 멘티가“꿈과 목표를 꼭 구체적으로 가지고 그대로 따라가야 하나요?”라고 묻자, 멘토는“꿈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게 너무 명확해서 그 꿈대로 가지 않으면 좌절한다거나 포기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먼 미래의 꿈 자체는 구체적이어야 하지만 가는 길까지 너무 정확하게 계획하지는 말라는 이야기에요. 그런 것 때문에 여러 무리수가 나오기 마련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일부러 이것저것 사는 삶을 살라는 뜻은 아니고, 삶의 방향을 미리 정해 놓지는 말라는 것이라고 멘토는 설명했다.

 삶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묻는 멘티의 질문에, 권 멘토는 고민을 하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학창 시절, 가정 형편이 참 어려워서 많이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왔더니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것을 극복하게 해준 것이 공부였습니다. 실력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대학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게 됩디다. 군대에서 아파서 두달 동안 병원에 후송 가 있을 때는‘아, 이런 게 죽는 거구나’싶더군요.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각했던 것이‘보편적인 선’이었습니다. 긍정적인 삶,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또 정직하게 사는 삶이요. 이런 것들을 계속 간직하고 곱씹었던 것이 그 시간을 극복하게 해주었습니다”

 이어, 멘토는“넓은 시야와 전체적인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전공책만 봐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연구 방법론 말고도 다른 각도에서 연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요즘은 연구 보고서 쓸 때도 인문학적인, 사회적인 효과를 같이 쓰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무기를 만드는 데에 쓰일 수도 있는 연구에서 그런 사회적인 영향의 측면을 간과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라며 전공지식 뿐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 전반에 걸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재준 멘티는 “얼마 전 개발하신 KSTAR가 연구 과정에서 상당히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성공 가능성도 알 수 없었고 불확실성도 굉장히 컸고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셨나요?”라고 물었다. 멘토는“어떤 일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합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전혀 기반이 없는 연구를 시작해야 하고, 거기에 엄청난 돈이 필요한데 경험도, 인력도 없다
고 했을 때 보통 사람은 시작하지 못하죠. KSTAR는 보통이 아닌 사람이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일단 시작이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우려를 하나씩 벗겨나갔죠. 단순히 과학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와의 연관성을 넓게 볼 수 있는, 그 모든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리더만이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리더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논리로 설득하면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추진합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조차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생각하며 끌고 가는, 그런 리더십도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전병국 멘티가 앞으로의 꿈을 묻자, 멘토는“일단 KSTAR를 만들어서 하나는 이루어졌습니다. 아직 남은 꿈은 핵융합 연구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자리 잡아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끔 이바지하는 거죠. 내가 스스로 깊이 있는 연구를 해서 과학적 연구결과를 만들어 내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팀으로서 세계적인 연구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공헌하고 싶습니다. 은퇴하기 전에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했던 것처럼 정직, 성실, 희생과 같은 기본적인 가치들은 정말 중요합니다”라고 멘토는 강조했다. 회의 때마다 멘토는 팀원들에게“스스로를 희생하라”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자기가 맡은 일에만 금을 그어놓고 그 안에서만 열심히 한다면 그 사이의 회색지대는 빈 공간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함께 저녁으로 냉면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 후, 멘티들은 각자의 명함과 연구소 앞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감사의 마음과 함께 멘토에게 건네고 다시 학교로 향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1시간 후, 멘티들은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오늘 오후를 멋지게 지낼 수 있게 해주신 여러분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무언가 인생을 정리하고 멋있는 말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털어버리고 아무
준비 없이 손님을 맞은 저를 오히려 더 편안하게 해주고 큰 즐거움을 주고 가신 여러분의 그 젊음이 부러웠습니다. 냉면 한 그릇이 그 고마움에 비길 수 있으랴마는 앞으로 저의 멘토도 되어 그 젊음을 조금 나누어 주시기를 염치없이 기대해 봅니다. 지금하시는 전공 공부에도 좋은 성과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멘토에게도 멘티에게도, 냉면 육수와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그 시간은 분명 좋은 나눔의 저녁이 되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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