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플라이트(Flight)>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과 달리 액션 영화도, 반전이 있는 영화도 아니다. 그저 한 알코올 중독자 내면의 깊은 갈등을 그린 영화일 뿐이다. 주인공의 심리를 나타내는 듯한 배경음악은 인상적이었고, 실력파 배우 덴젤 워싱턴의 연기도 뛰어났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 채우지 못하는 2%의 아쉬움이 남았다.
애틀랜타 국내선 항공기 기장 윕 휘터커(덴젤 워싱턴 분)는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마약을 즐긴다. 술 냄새를 풍기며 조종석에 앉는 일도 일상다반사다. 심하게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그가 조종하던 항공기에 결함이 발생한다. 난기류 때문에 항공기는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102명의 항공기 탑승 인원이 전원 추락사할 위기에 빠진다. 휘터커는 항공기 기체를 뒤집어 기적 같은 착륙을 해낸다. 탑승 인원의 생존율은 95%에 달했다. 언론에서도 칭찬이 자자하고, 그는 영웅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교통안전국에서 사고 당시 휘터커가 만취상태였던 것을 알아낸다. 기체에 결함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이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품 제작사 쪽에서 보면 휘터커는 책임을 떠넘기기에 딱 좋은 상대다. 90명이 넘는 승객을 살려낸 것과는 별개로, 사고 당일 만취 상태였던 것을 인정하면 휘터커는 직무유기죄, 과실치사죄로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의 조종 실력을 아까워하는 친구들은 휘터커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청문회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휘터커 본인도 술을 끊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음만큼 쉽지가 않다.
극 초반의 비행기 추락 장면은 관객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마치 실제 상황처럼 카메라가 흔들리고, 급박한 상황에 관객은 숨을 죽이고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이 장면은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의 조종사 경험을 살려 찍은 것이다. <백 투 더 퓨처>, <포레스트 검프> 등의 전작과 달리 <플라이트>는 스토리나 등장인물이 굉장히 현실적이다. 항공기 추락 장면은 초반에 이러한 현실감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추락 장면을 통해 시작된 긴장감은 영화 내내 지속된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장면에서는 배경음악을 사용해 관객의 몰입을 유지했다.
로버트 저메키스는 방한 기자회견에서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 내면의 갈등이나 극적인 드라마”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강조한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덴젤 워싱턴의 연기로 빛을 발한다. 술 때문에 끊임없이 거짓의 인생을 살게 되는 휘터커의 연기는 과연 왜 덴젤 워싱턴이 아카데미상을 2회나 수상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번 영화로 그는 2013 아카데미,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아쉬웠던 점은 영화의 결말이다. 다분히 감동적이고 교훈적이지만, 영화 초반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기 때문에 답답함이 느껴진다. 관객 대부분은 후반부로 갈수록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플라이트>는 후반부가 뻔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는커녕 놀라움도 없다. 신선했던 초반과 달리 식상한 결말이어서 영화의 균형이 무너졌다. 차라리 휘터커가 청문회를 받으러 가면서 끝났더라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지금의 결말도 매력 있으나, 이런 식의 감동은 이미 많은 관객이 흥미를 잃을 정도로 익숙하지 않을까 한다.
감독은 ‘알코올 중독’ 자체 보다는 자신의 공로, 합리화와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개인을 다루려 한 듯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는 단순하게 ‘음주 운전 금지’라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흥미로운 소재이며, 연출이나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으나 안타까움이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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