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평론 가작> 최함이 학우(문화기술대학원 석사과정) [꽁트] 가련한 심혼을 위한 닭고기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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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평론 가작> 최함이 학우(문화기술대학원 석사과정) [꽁트] 가련한 심혼을 위한 닭고기수프
  • 선주호 기자
  • 승인 2013.02.17 0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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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련한 심혼을 위한 닭고기수프

최함이

2012년 11월 11일 4am.
ID: 계룡의 병든 닭
바로 어제, 10일에 우리 학교 똑똑과 4학년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두가 혼곤히 잠든 이 시각, 나는 고장 난 비데에 앉아서 한글 자음모음이 안 보이는 비루한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3인 1실의 비좁은 기숙사인데, 룸메이트의 깊은 수면을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에서 수잔 손택은 말했다.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또 자살이냐? 공부만 잘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아냐?” 보도기사를 보고 요렇게 댓글을 다는 바보들에게 묻고 싶다. 타인의 말 못할 고통을 어찌 그리 잘 아시는지.

앗, 화장실에 새 휴지가 없다. 가득 차 있는 휴지통 맨 위에 놓인 괴이한 물건에 눈길이 갔다. 제품 포장지에는 “콤팩트한 디자인, 가볍고 편안한 그립감, 정밀하고 안전한 스테인리스 날, 손쉬운 세척”이라고 온갖 웃기는 소리가 적혀 있다. 아하! 물청소가 가능한 코털정리기로구나. 멀쩡한 걸 왜 버렸을까? 아마 AA사이즈 배터리를 갈아 끼우기 귀찮아서였나 보다.

이렇듯 나는 “코털이 숭숭 난” 알량한 양심으로 산다. 먼 학우의 부고보다 훨씬 비참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비데가 고장 났고 밑 닦을 휴지가 없다는 현실이다. 그러다 버려진 코털제거기를 들여다보면서 키득키득 웃음을 흘리는 게 인간의 요사스러운 심보이다. 전해들은 말에 따르면, 이번에 죽은 학생도 평소 쾌활한 성격이어서 “설마 그럴 줄 몰랐다”고 한다.

나 이러다 호기롭게 죽기라도 하면, 주위 사람들의 반응도 마찬가지겠지. 멀리서는 뭐가 모자라 자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욕할 것이다. 그러나 학내 커뮤니티에서 “꿈과 희망, 미래도 없이” “잉여롭게” 산다고 끼적이는 학우의 글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알아~ 까리한 님들하! 용쓰는 거 다 아라~” 이번 카이스콜라 장학수기 공모전의 테제가 <꿈과 희망, 그리고 미래>라는 걸 보자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 찻잔 속의 태풍
실없이 우우우울고 나니까 대체 왜 울었는지 황당하다. 구질구질한 눈물을 쥐어짜내는 통속드라마나 신파적인 발라드 노래마냥 짜증나. 거울 속의 누르퉁퉁한 못난이에게 물음을 던진다. 그지 같이 불쌍해 보이는 수기 써서 동정표나 구걸할까? 나는 거지가 아니므니다. 뻔뻔하게도 양심에 털 난 거짓 수기로 사기 칠 수 있을까? 나는 사기꾼이 아니므니다. 적어도 뻔한 공모전에 목숨 거는 계룡의 촌닭 아니므니다!

그나저나 장학수기 상금이 얼마였더라? 여느 수상작품들을 쭉 훑어보니, 멘붕이 온다. 얘들은 평상시에도 그리 심각할까? 명언에 밥 말아먹고 사나? 1980~90년대 이후 태어난 영상세대가 쓴 글이 1980년대 소년소녀가장들의 흑백사진 같은 생활수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니 놀랍다. 그 옛날 『까치소리 미워요』의 소녀가장도 아닌데, 설마 식량이 모자라서 비통하게 굶주려가며 수기를 썼을까? 아무리 “바르고 착실하게 살아서 앞으로 성공”하겠다는 고리타분한 다짐을 거듭해봤자, 안 될 사람은 안 된다.

근검절약만으로 도저히 가난을 구제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이게 웬, 산신령 면도하는 소리냐고? 대한민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비싼 대학등록금 순위를 자랑하고 있다. OECD 기준에 손색없는 사교육비 인상률 또한 인상적이다. ‘반값 등록금’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등록금이 너무 싸면 대학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며 특유의 오리발로 생 까셨다. 한편, 소비자물가는 연일 지수함수(exponential function)의 곡선을 그리며 로켓처럼 치솟았다. 지하철요금 기습 인상 기사에 달린 이 서정적인 댓글을 보라. “이 땅에는 가을비만 주룩주룩 내릴 뿐, 모든 것들이 오른다.”

지난 10여 년간, 대학 등록금 폭등 문제는 말할 나위도 없다. 과거에는 소년소녀가장처럼 특수한 경우에만 이런 장학수기를 썼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등록금 때문에 빚을 지게 되는 것이 지극히 예사로운 일이다. 그러니까 상대적 빈곤감에 쫄은 친구들에게 “네 탓이 아니야!”라고 위로해주고 싶다. 내 그릇이 찻잔만한 줄 알지만, 절대 위대한 사람이 될 리 없겠지만, 폭풍 같은 가슴 속 떨림으로 고한다. 지금 나라 빚을 지더라도 언젠가 나라를 빛나게 하자.

¶ 2천원의 굴욕
단돈 2천원 때문에 친구를 잃어본 적이 있는가?

카이스콜라는 2월초 새 학기가 시작된다. 올해 2월에 나는 2천원조차 궁했다. 2상한 2상황이 도무지 2해가 안 되는 분들에게 2실직고하겠다. 솔직히 이 학교의 학사정보시스템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들어왔다. 우희희 합격자 발표 날에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드디어 원하는 공부를 원 없이 할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 겨울에는 그 동안 모아둔 용돈으로 대만 여행도 다녀왔다. 열린 IT세상을 보며 그야말로 청운의 부푼 꿈을 품게 되었다.

마냥 씐나게 12월을 마음 놓고 보냈는데, 1월 초에 날아든 등록금 고지서에 화들짝 놀랐다. 13일의 금요일까지 432만 2천원 상당의 금액을 대학의 가상계좌로 입금해야 했다. 당시의 내 통장 잔고는 80만원에도 못 미쳤다. 미처 돈을 준비하지 못했던 나는 어쩔 줄을 모르게 당황했다. 뒤늦게 행정처에 전화를 해서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니, 신학기가 시작되고 1달 후부터 일부를 반환해주고 나머지는 또 6개월에 나누어 돌려준다는 기상천외한 답변이 돌아왔다.

대학입학금 33만9천원을 포함한 본인부담금은 79만5천원이니, 사립대의 어마어마한 등록금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돈을 빌릴 곳이 정녕 없었으므로 난 어리석게도 사채까지 생각했다. 일단 들어가고 나서 한 달쯤 지나면 상당 금액을 돌려받게 된다니까, 그때까지 목돈을 무이자로 빌릴 수 있겠다는 제안에 솔깃했다. 나는 초인이 아니다.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빚의 무시무시함을 모르는 철부지였다.

신학기의 악몽은 시작되었다. 학기 내내, 얼마나 서럽게 연명했는지 쓰겠다. 기초적인 교통비와 식비 외에는 돈을 되도록 쓰지 않고, 식은땀 나는 긴축재정으로 살았다. 당장 학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서 시간제 노동을 시작했지만, 월급 20만원으로는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을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개강파티를 비롯한 동기간 모임에 참석하여 회비를 내는 것조차 아까워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흙흙흙.

학기 절반이 지나서야 등록금을 반환해준 해도 있었다는 정보를 무심한 선배에게서 전해 듣고 크게 낙담했다. 아, 단기 사채금융 이자를 어떡하지? 근심이 깊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술자리에 한 번 나가면, 다음날 식사는 굶어야겠다는 각오를 했다. 실제로 그러지는 못하고 신용카드를 써서 밥을 먹었다. 밥 먹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한심해하며 스트레스를 왕창 받았다. 더러운 문자메시지를 하루에 열 통 넘게 받았다. 맙소사~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무서운 꿈도 자주 꾸었다. 경제적인 쪼들림이 결과적으로 내 자아를 움푹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어느 날 동기 녀석과 식당에 갔는데, 2천원 남짓한 밥값을 대신 내주게 되었다. 하필 신용카드의 마그네틱 선이 망가졌다기에, 학생증 체크카드로 계산했다. 밥을 먹자마자 가슴 철렁한 문자 통보가 날아왔다. 마침 이자 빚을 갚기로 한 기일이었다. ATM기 앞에 서서 한숨을 푹 쉬었다. 고학생임을 통사정해서 분할 납부로 돌리기는 했는데, 그러고 보니 2월 하순에 빠져나가야 할 금액에서 딱 2천원이 모자랐던 거였다.

한밤에 그 자식을 찾아 한참을 돌아다녔다. 여기 ㅇㅇ있어? 아니, 아마 ㅋㅋ갔을 걸. 그러면 ㅋㅋ에 가서 또 ㅇㅇ있냐고 물어보는 식이었다. 새벽에 퍼 자고 있는 애를 깨워서, 2천원 좀 돌려달라고 말했다. 치사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결과는 빤했다. 친구도 잃고, 이자는 불고... 속사정을 불자니 너무나 민망했다. 돌고 도는 돈, 돈은 사람마저 돌게 만든다. 이 말을 -빼고 나면 +더할 얘기가 없다.

¶ 빵과 장미
버지니아 울프는 일찍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우리가 마음 놓고 열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등록금 마련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립이 요구된다. 여윳돈과 자유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문화적 충족을 누릴 수 있다. 국가로부터 장학금 혜택을 받는 카이스콜라 학생들이 생활고 문제로 투정부리면 안 된다고? 더 열악한 교육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생각하라는 충고를 들었을 때, 나는 《빵과 장미》라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떠올렸다.

우리 삶에 아름다운 장미가 없다면~ 행복하지도 않은데, 하루하루 맛없는 빵으로 연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불안 강박에 시달리는 정상의 질주는 괴로울 따름이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비정상이 되어가는… 이상한 일상을 이제는 우리 터놓고 이야기하자. 크고 작은 마음고생을 겪으며 아무리 경쟁력 있는 체구로 성장하였더라도, 언젠가 찬 이슬 맞으며 귀가하는 새벽길에 쓸쓸함을 느껴봤을 거다. 일직선 도로에서 탈주하고픈 충동이 이따금 이는 것도 당연하다.

삭막한 사막에 홀로 서 있었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빚 때문에 하루도 편치 않았다. 빛 좋은 개살구 그림자가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카이스콜라 다니는 헛똑똑이가 너라며? 환청마저 들렸다. 오비작오비작, 귓속을 후비는 사채 청구 문자의 비명ㅡ 고객님 어디 계세요 고객님. 금융사기의 메카는 아라비아 사막 한가운데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알처럼, 이미 걷잡을 수 없게 유출된 개인정보를 어찌하랴. 김성실 팀장님의 대출 권유는 날로달로 집요해져갔다. 황당무계한 보이스피싱에 나도 모르게 낚이는 끔찍한 망상에 잠기며 벌벌 떨었다.

친구보다 친근해진 그 이름, 김성실 팀장님은 성실했다. 그분들이 쉬지 않고 일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하는 ‘대부업계의 대부님’은 과연 어디에 계실까? 나는 위대한 자본의 마법사, 오즈를 만나러 에메랄드 시티를 향해갔다. 그 당시 나에게는 두뇌가 없고, 심장도 없고, 겁만 많았다. ‘무지개 너머’ 몽환적인 신세계를 찾아가 “아픈 만큼 성숙해지리라”는 생의 소중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사채의 덫에 빠졌던 모험담을 판타지로 포장하니까 사뭇 그럴싸하지 않은가.

하여간 “돈이 사람을 잡아먹는” 그 세계에는 애초에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했다. 학생 신분인 내 힘으로는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 못할 게 뻔했다. 부모님께서는 당장 돈을 갚고 나서, 수렁에서 빠져나오라고 하셨다. 뒤늦게 카이스콜라 학생복지팀에 찾아가 장학 상담도 받았다. 비굴해보이거나 자존심 상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섣부른 판단으로 책임지지 못할 문제를 몇 달간 질질 끌어온 고지식함이 문제였다. 세상에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대출은행은 부모님밖에 없다.

사월에 사채 전액을 청산하게 되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얼마간 금전문제로 속을 썩였지만, 현재로서는 공부해서 받는 장학금이 최선의 대응책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후에는 아예 신용카드조차 쓰지 않고, 용돈은 체크카드로만 충당하고 있다. 잔뜩 흐렸던 세상이 맑아지니, 자연스럽게 학업에 몰입도가 높아졌다. 그렇다고 살림살이가 말끔히 개선되고 정서적인 안정을 온전히 찾은 것은 아니다. 핸드폰을 바꾸어도 여전히 대출 스팸문자는 벌처럼 날아든다. 김성실 팀장님의 쫀쫀한 인맥관리에 당해낼 재간은 없다.

명심할지어다. 돈을 빌려줄 때는 나비처럼 사뿐히 앉아서, 회수해갈 때는 벌같이 쏘아대는 게 그네들의 습성이다. 궁지에서 가까스로 나오자, 잊고 지냈던 나의 장미가 그리워졌다. 소혹성 B-612에서 살던 옛 시절, 어린왕자가 길들였던 소중한 장미! 빵이 단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한 음식이라면, 장미는 정서적인 허기를 채우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빵만 먹고는 건강할 수가 없다. 사람답게 살 권리를 상징하는 장미를 달라! 그리고 청춘의 꿈과 긍지를 잃지 말고 살자는 식의 건전한 수기를 쓰려고 했는데... 망.했.다.

¶ 기승전병 병불허전
나는 꽁생원이로소이다? 이런 누추하고 우스꽝스러운 꽁트에서 나름의 진정성을 찾을 수 있을까? 흔한 신세한탄, ‘잉여롭다’는 입말의 정체는 무익하다는 거다. 내 글은 자질구레하다, 사소하다, 시시하다, 하찮다, 보잘 것 없다, 대수롭지 않다, 미미하다, 비천하다, 너절하다, 객쩍다, 실없다, 쓸모없는 헛소리다. 요 요망스러운 잡문을 어따 쓰나. 실은 다 거짓뿌렁인 걸.

“가난은 나약한 심성을 지닌 사람에게 걸리는 비교적 가벼운 질병인데 반해, 무익함은 강인한 사람과 심약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매번 파괴한다.” 난 파괴되었다. 커트 보네거트 할아범의 똥침 같은 요 말마따나. 허삼관처럼 악착같이 매혈을 하면 뭐하나, 결론은 누구나 도살장에서 “그렇게 가는 거지.” 20세기에 인류는 전쟁의 참혹한 ‘시체더미’에 깔려 죽어갔다는데, 21세기의 나는 어이없게도 사채더미나 뒤집어쓰고 콱ㅡ 기승전병! 병맛 같은 자신에게 농을 흘리듯 욕이나 실컷 퍼부어야지. 이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리라.

온통 “쉽고 빠른 대출” 광고 범벅인 미디어 판을 보면, 궁한 자의 빈틈을 교묘하게 공략하는 화법이 코믹해서 슬며시 호기심이 인다. 그럼 사람들이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고 피겠는가? 중요한 바는 사실의 껍데기가 아니라, 매력적인 재미의 속살이다. 이 글이 아무리 경박해도, 남다른 구미 땡기면 어떻게든 읽히겠지. 누군가에게 먹히면 뭐하겠노. 기분 좋다며 상금으로 소고기 사묵겠지. 소고기 사묵으면서 애들이랑 뭐하겠노. 창피한 줄도 모르고 지난 일을 떠벌리겠지. 궁한 실상이 떠벌려지면 뭐하겠노. 찌질하다고 놀림이나 당하겠지. 심심하던 차에 놀리는 재미 터지면 뭐하겠노. 또 공모전에다 팔아서 소고기 사묵겠지. 으헉~ 구제불능의 유치찬란함에 다시금 몸서리치며, 모래 속에다 대가리를 파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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