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 김권호

 

아버지는 서해 사람이라 낙조가 드리우지 않는 바다가 종종 낯설다 했다. 오후의 햇살로 칠해지는 항구가 좋단다. 조심스럽지만 으슥하고 우울하지만 따뜻하다. 소란스러운 아침과 달리 저녁은 조금 지쳐있고 그래서 편타 말하는 놀 진 얼굴을 보며, 살아가는 건 기합이 들어 힘찬 아침보다 터벅터벅 걸어오며 나지막이 흥얼거리는 저녁과 더 닮았다는 말이 내 생각 같았다.

 

가족은 오후를 닮았다. 언젠가부터 나도 오랫동안 동경하던 밝아오는 새벽보다 비틀거리며 웅성거리는 밤을 준비하는 저녁이 더 좋았다. 밝진 않지만 길게 드리워진 빛을 나는 항상 사랑했다. 가라앉는 태양 빛 넘실대던 갈대밭 앞에 앉아 동생의 편지와 어머니의 웃음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는 헤어지는 것에 익숙하려 애쓰고 있지 않나 했다.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일.

 

또 어느 날, 낮잠이라고 하기에도 난감한 어스름 꿈에서, 내 아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며 이렇게나 마음이 불안한 건 소중한 것이 많기 때문일까, 생각했다. 그 이상한 세상에서 지키고 싶은 게 많았다.

 

알고 있어. 사랑한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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