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저녁, 함박눈이 내립니다.

눈은 참 공평합니다. 서울에도, 대전에도, 춘천과 철원에도, 함박눈을 원하는 이들에게 동일하게 내립니다. 눈은 사람을 이어줍니다. 함박눈이 온다며 속속 들어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며, 지금 이 시각 서울에서도 이 눈을 함께 맞고 있음을 느낍니다. 눈은 세상을 덮습니다. 유년기의 마지막 기억이 어렴풋한 자리를 살포시 덮는가하면, 철거용역이 음식들을 다 엎어버린 자리, 해직작가가 주저앉아 흐느끼던 자리 또한 덮습니다.

<카이스트신문> 또한 함박눈과 같고 싶었습니다. 참 공평하고 싶었습니다. 소수에 의해서만 소식이 공유되는 장막을 타파하고, 정보를 가린 먹구름을 걷어내려 했습니다. 끈질기게, 때론 저돌적으로 뉴스를 탐사하고 추적했습니다. 직급의 높고 낮음을 넘어 핵심정보의 제공이 공정한 학교를 바랐습니다.

공평해야 할 것은 또 있습니다. 공론장에 참여할 기회입니다. <24시> <사람> 등을 통해 잊혀진 주변에서 펜을 꺼냈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결국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기자로서 부족했던 탓입니다. 마음을 여시기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함박눈에 담아 보냅니다.

사람을 잇고 싶었습니다. 오직 진실만을 믿고, 진리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매 보도를 기획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타 언론사에 비해 학내외에서 협박과 회유를 많이 받았습니다. 금전적 소송이나 물리적, 심리적 압박 운운은 지겹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당대를 함께하며 쓴 보도는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덮고 싶었습니다. 아픔과 체념을, 통감과 대변으로 덮으려 노력했습니다. 구시대의 악습은 얼리고, 새시대의 물줄기는 녹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학교 곳곳을 덮어나갈 때, 일부 언론은 치부를 무작정 덮었습니다. 의혹은 제기되고 지적이 나오는데 도대체 누가 하는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현장에 함께하고 속보기사를 쓰면서 학보사의 한계와 가치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은 “나는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감히 덧붙이자면, 저는 독자 없는 신문보다 차라리 신문 없는 독자를 택하겠습니다. 보는 이 없는 함박눈이 무슨 의미일까요. 독자 없는 신문은 공평할 수 없고, 사람을 이을 수 없으며, 세상을 덮을 수도 없습니다. 장막 속의, 단절된, 아픔이 있는 학교를 바꾸는 힘은, 고위관계자도 핵심관계자도 아닌, 학보를 읽는 독자에게서 나옵니다. 계속해서 학보사의 소중한 열독자가 되어 주십시오.

그럼, 희망의 길에서 다시 만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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