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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대덕을 만나다 (3)
‘닮고 싶은 과학자’ 문대원 멘토
[320호] 2009년 07월 01일 (수) 김은희 기자 hou-hou@kaist.ac.kr

늦봄의 태양으로 뜨거워진 학부식당 앞 벤치.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여학생 한 명과 한 눈에도 앳되어 보이는 남학생 한 명, 듬직한 체구에 하얀색 줄무늬 재킷으로 멋을 낸 남학생 한 명이 모였다. 택시를 탄 그들이 향한 곳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301동, 문대원 박사(한국표준과학연구원 나노바이오전문연구단 단장)의 연구실. 멘토링 프로그램 의 세 번째 멘토인 문대원 박사와의 만남을 목전에 둔 세 멘티의 표정에 사뭇 긴장감이 감돈다

 ‘청소년이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로 선정되기도 했던 문대원 멘토의 연구실은 무척 깔끔하고 조용했다. 의자에 앉은 세 사람에게 문 멘토는 명함을 내밀며 인사를 건넨다. 베이징 올림픽 역도 선수 이배영 선수의 미소를 연상케 한다는 어느 기자의 표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사석필 멘티(화학과 석박사통합과정)는 흔치 않은 이력으로 시선을 끌었다. 시를 써서 KAIST 문학상을 받는가 하면, 현재 KAIST 공식 홍보단체인 카이누리를 창단한 주역이기도 하다. 사 멘티는 이제 막 산에 올라가기 시작한 젊은 과학도로서, 이미 산 정상에 선 멘토의 조언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김상윤 멘티(IT경영학부)는 어디서나 활력소 역할을 하는 성격 때문에 별명이‘에너자이저’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공학적인 수학과 재무 분야를 결합한 금융공학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포부는 스물두 살답지 않게 야무지고 단단해보였다. 오늘 모임의 홍일점, 박지영 멘티(화학과 석박사통합과정)는 화학을 전공했지만 물리도 좋아했다는 문대원 멘토에 대한 기사를 읽고‘내 이야기잖아!’싶었다며 운을 띄웠다. 지금 고등학생 여러 명의 멘토로 활동하는 박지영 멘티는, 이 자리를 통해 진로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다.

 멘티들의 자기소개서를 살펴보던 문대원 멘토가‘무진장 맛있는 표준원 커피’를 권하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매일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닐 정도로 바쁘지만, 후배들의 미래를 위해 조언과 상담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번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문대원 멘토의 말에 멘티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진다.

 김상윤 멘티가“성공한 과학자인 박사님의 조언을 듣고 싶다”라며 말문을 열자 문 멘토는 “내가 성공한 사람인가?”하며 되묻는다. 실패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학생처럼 치열하게 공부하고 배운다는 문대원 멘토의 말이 무척 진지하다. 문 멘토는 자신의 능력에 비해‘운’, 시쳇말로‘재수’가 무척 좋은 편이라며 현재 여건이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을 잇는다.

 문대원 멘토는‘분석장이’다. 처음엔 원자나 분자 차원에서 물질을 보는 일을 하다 보니 표면과학을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연히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 발전과 연구가 맞물리게 되었고, 그 수요에 맞춰 일하다보니 원자 수준의 물질, 초박막을 20년 동안 파고들게 됐다. 그러던 것이 5~6년 전부터 반도체 대신 바이오 표면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단순 산업기술에서 삶의 질로 옮겨졌고, 반도체를 연구하다 연구 분야를 세포로 바꾸게된 것은 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였다고 멘토는 설명한다. 예전에는 좋은 반도체나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 화두였다면 이젠 우리 몸에 무슨 병이 어디에 왜 생기는가를 알아낼 수 있는 나노바이오 원천기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무한한 수요를 가지는 분야라는 것이다. 그래서 문 멘토는 나노 기술을 가지고 바이오 의학 분야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같은 표면이라고는 해도, 반도체를 들여다보던 멘토에게 세포의 표면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멘토는 책장 구석에 꽂혀 있는 책을 가리키며, 학부 수준의 책으로 새벽에 세포를 혼자 공부했던 사연을 털어놨다. 낮에는 짬이나지 않아 새벽에 일어나서 2시간씩 공부를 했는데, 그렇게 반년쯤 계속하니까 청사진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혀를 내두르며 그 열정에 감탄하던 멘티들에게 멘토는 커피잔을 들며 말을 이어갔다. 항상 운이 기가 막히게 좋은 멘토의 삶에서도, 세포로 연구 분야를 전환한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잘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방향을 선회한 것이‘대박’이 났다며 멘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사람들이 공상과학소설이라며 웃었지만, 연구 속도가 엄청나게 붙어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연구에 매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과학도로서 앞으로 분야, 방향, 범위를 선택해야 할 때 수요를 고려해야 한다”라며, 이론을 공부하는 학자라도 그 연구가 실질적인 결과와 이어져‘파워’를 가질 수 있어야한다고 조언했다.


 관심분야가 너무 넓어서 어떤 것을 연구해야 할지 고민된다는 박지영 멘티에게, 문 멘토는 어지럽게 낙서 된 칠판을 가리키며‘연구 주제는 계속 바뀌게 된다’라고 답했다. 한 주제를 잡고 평생 물고 늘어질 수도 있지만, 요즘은 한우물만 파야 성공하는 세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의 전문성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관심분야가 넓어도 전문성 없이 왔다갔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분야에서는 1등을 해야 한다고 멘토는 말한다.

 사실 같은 분야에서 누가 조금 더 잘하고 못하고가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엉뚱한 시도를 하면 인생이 재밌어지는데, 멘토는 그런 생각을 가진 15명의 팀원을 연결해 최고의 팀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는 그 팀을‘갤럭시’라고 부른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로 반짝이는 별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뜻이다. 팀원 모집을 할 때 멘토가 강조했던 것은 세 가지다. 첫째, 그 분야에서 자신이 최고라는 것을 증명할 것. 둘째, 나노를 가지고 바이오에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말해볼 것. 셋째, 이 연구를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 설명할 것.

 “모두가 1등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2등 이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멘티의 질문에 대한 멘토의 대답은 명쾌했다. 모두가 자기의 분야에서 1등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분야를 연구한다면 그 분야에서는 각자가 모두 1등이라는 멘토의 말에서 왜 멘토의 신조가‘NO 벤치마킹’인지 알 수 있었다. 멘토에게 1등은‘가장 창조적인, 가장 도전적인 자’와 같은 말이었다.

 그는 연구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 믿음에 따라 그는 나노 바이오 측정 기술을 의료기술에 적용하기 위해 공격적으로‘들이대고’있다.

 준비가 잘 된 상태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은 최정상에 올라가서 자기의 고유한 영역을 만들 수 있는 인생의 전략이며, 어떤 영역에 몰두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생각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 멘토의 결론이었다.

 멘토가 개발한 가속기를 보기 위해 지하에 있는 가속기 가동실로 향했다. 화재로 검게 그을린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높이를 맞추기 위해 책을 괴어놓은 부분을 보며 20년 전 멘토가 흘렸을 구슬땀을 떠올렸다.

 이 가속기를 처음 가동하던 20년 전, 스타워즈에 나오는 레이저 칼처럼 파란색 레이저빔이 확 나왔을 그때의 희열은 평생 잊지 못할 거라며 멘토는 아이처럼 설레어 했다. 가속기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한 멘티가‘오늘의 멘토를 있게 한 비결 한 단어’를 물었다.

 “내 주위에는 나보다 훨씬 공부 잘하고 일 잘하던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나한테는 겁없는 열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럽게’운이 좋았다. 그런데 학부 지도교수님이 그러시더라. ‘운은 만드는 것이다’라고”

 누군가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점점 잦아질 무렵,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가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멘토가 흐뭇한 표정으로 멘티들에게 말을 건넨다. “젊은이들과 함께 수다를 떨다 보니 나도 젊어진 것 같고 좋네요. 우리 밥 먹으러 갑시다. 말을 많이 해서 다들 배고플 거야. 참,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뭘 좋아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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