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스산하니 생각나는 얼굴들이 많네요. 한 주가 시작되기 직전인 월요일 새벽, 신문사 제작편집실에서 카이스트 10학번이 안부를 묻습니다. 지금 캠퍼스는 치열한 한 주를 준비하는 이들이 쪽잠을 취하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제작편집실에는 전쟁같은 마감시각을 앞두고 새로운 소식들이 들어오면서 긴박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답니다. 신문사가 위치한 교양분관도, 한나절 뒤 시험과 퀴즈를 보는 사람들로 분주한 풍경입니다.

쉬이 잠이 오지 않지만, 더욱 효율적으로 잠들어야 하기에 쪽잠마저 치열한 우리의 자화상을 봅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학부과정의 중견학번으로 자리잡기까지 정말 뜨거운 노력이 있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우리 학교 합격을 위해 지금에 견줄 만큼 맹렬히 달리던 3년 전을 기억합니다. 카이스트에 오면, 각자 좋아하는 분야의 전문가인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며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설명에 혹 크게 두근거리시진 않으셨나요. 지금은 어떠한가요.

카이스트 10학번은 대다수가 서남표 총장의 연임 전에 입학해, 퇴임 후에 졸업하는 유일한 학번으로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은 이를 두고 “나의 대학생활은 ‘서남표 총장’과 ‘이명박 대통령’으로 요약된다”며 촌평하더군요.

1학년을 학내 갈등에서 시작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갈등과 함께 3학년을 끝냅니다. 입학하자마자 등록금 폭탄으로 ARA가 시끄럽더니, 총투표가 진행됐고 천막농성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지요. 이제는 우리 학교의 갈등에 수십여 곳의 언론사가 취재를 오고, 전국으로 생방송까지 합니다. 유례가 없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2011년은 결코 잊히지 못할 해로 남았습니다. 친구가, 친구의 친구가 스스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게다가 돌연사까지, 장례 소식이 한 주가 멀다하고 이어졌습니다. 상심한 이들이 더욱 상심한 이들의 손을 붙잡고 그저 위로했습니다. 슬픔이 앞섰지만, 분노할 일도 많았습니다. 명예와 이익을 위해 사실을 무시하거나 호도하고, 유리한 방향으로 원인을 규정하고자 개인정보와 사생활, 진료내용을 발가벗기고 침소봉대했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카이스트 10학번’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카이스트 10학번이 진정 학업에 집중할 수 없는, 격동의 3년을 보내게 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카이스트에 대한 정의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카이스트를 ‘하고 싶은 공부와 연구를 전폭적인 지원 속에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받지 않았나요. 갑자기 ‘우리나라에 하나쯤 있어야하는 고강도의 학업량과 경쟁을 자랑하는 곳’으로 바뀐 근거라든지 과정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원래 그런 대학’이란 없습니다. 학교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와, 그동안의 관습적 정의가 있을 뿐이지요. 40년 간 내려온 정신과 철학을, 독단적으로 재규정하고 구성원들이 거기에 따르기를 강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과학 문제를 잘 푸는 것과 과학을 잘 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장짤 학점 버퍼’를 위해 학점 잘 주는 과목을 좇는 대학에서 과학 잘 하는 인재를 양성하기란 요원합니다.

내년 봄학기면 새로운 총장이 결정됩니다. 지난 3년의 모습을 잘 아는 10학번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총장의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그 정책이 신입생부터 해당한다는 이유로 부작용을 외면한 결과는 지금 우리가 여실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대학원에서는 신입생이고, 학부의 변화는 머지않아 대학원에도 적용됩니다. 카이스트가 올바른 방향으로 순항할 수 있도록, 그 분수령이 될 첫 해를 맏형으로서, 맏언니로서 따스히 지켜봐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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