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연재-3]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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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연재-3]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선주호 기자
  • 승인 2012.11.19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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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

9.6km. 소설가 구보가 어느 하루 경성 시내를 배회한 총 거리다. 구보는 그날 별다른 사건도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일상 속 거리를 거닐었다. 구보는 동경으로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변변한 직업조차 없는 노총각이었다. 그는 고독을 멀리하고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 때문에 경성 시내를 걸은 하루 이야기가 소설의 배경이다.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지금, 구보의 고민을 생각하며 그가 걷던 길을 되짚어 보았다. ‘일찍이 그는 고독을 사랑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고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심경의 바른 표현이 못될 게다. 그는 결코 고독을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고독과 힘을 겨루어, 그것을 이겨 내지 못하였다’ 

사랑

먼저 구보의 집을 찾아본다. 책에 근거해 광교 주변을 샅샅이 찾아보지만, 어디서도 구보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알고 보니 구보의 집은 청계천을 복개하면서 철거되었다고 한다. 현재 구보의 집은 한국관광공사와 청계천 사이에 묻혀있다. 지금으로부터 70여년 전, 구보는 집을 나와 화신회관 앞에서 전차를 탔다. 앞서 마주친 신혼부부를 보며 결혼이 행복의 원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불행을 떠올린다. 그의 기억 속에서 사랑과 불행은 언제나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행복의 정답이 아니다.

‘아아, 그예 생각해 내고 말았다. 영구히 잊고 싶다. 애달프고 또 쓰린 추억이란, 결코 사람 마음을 고요하게도 기쁘게도 하여 주는 것은 아니었다’

구보의 집 터에서 바라본 종로타워와 광교= 구보가 살던 시대에는 종로타워 대신 화신상회가 있었다. 화신상회는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백화점으로 1980년 종로도로확장공사 때 헐렸다 /선주호 기자

구보는 전차에서 내려 경성부청을 지나 경성역으로 갔다. 얼마 되지 않은 원고료로 치마를 사서 형수에게 주었을 때, 행복해하던 형수를 떠올랐다. 어쩌면 돈이 행복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성역 대합실에서 노파를 하찮게 여기는 신사는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역을 나가며 마주친 옛 친구 역시 돈을 많이 벌었어도 교양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돈 역시 행복의 정답이 아니다.

‘구보는 한구석에 가 서서 그의 앞에 앉아 있는 노파를 본다... 구보는 그 시골 신사가 노파와 사이에 되도록 간격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을 발견하곤, 그리고 그를 업신여겼다’

서울역은 교통의 중심지답게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70여년전 경성역도 한반도 구석구석을 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이다. 경성역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구보는 사랑과 돈으로 결코 진정한 행복을 맛보지 못함을 확인했다. 고독은 더욱 커져만 갔고, 이를 해소하려 벗을 찾아 나섰다. 낙랑파라에서 만난 벗은 자신의 문학관 얘기만 해 구보의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 다행히 낙랑회관에서 만난 벗은 구보와 같은 처지에 있어 그를 이해하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 역시 고독을 넘어서 행복을 찾는 방법은 몰랐다. 1930년대에 지식인들은 다방에서 담소를 나눴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다방은 낙랑파라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최초의 다방이었다. 구보도 하루에 낙랑파라를 3번이나 찾을 정도였다. 낙랑파라가 있던 자리에 가보니 프라자호텔이 들어서 있어 더이상 그 흔적을 찾지 못한다.

‘내용증명의 서류우편, 이 시대에는 조그만 한 개의 다료를 경영하기도 수월치 않았다. 석달 밀린 집세. 총총하던 별이 자취를 감추고 하늘이 흐려졌다. 벗은 갑자기 휘파람을 분다. 가난한 소설가와, 가난한 시인과…’ 

이 건물은 원래 한국 최초의 백화점 미츠코시백화점이었다. 근대 건축물을 그대로 쓰는 몇 안되는 경우 중 하나다 /선주호 기자

낙랑회관

새벽 2시경, 구보는 처음 걸음을 시작했던 화신회관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구보가 경성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을까.

‘이제 나는 생활을 가지리라. 생활을 가지리라. 내게는 한 개의 생활을, 어머니에게는 편안한 잠을... 구보는 잠깐 주저하고, 내일, 내일부터, 나는 집에 있겠소, 창작하겠소’

구보에게 있어 ‘생활’은 작품 창작이다. 구보는 이제부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창작 활동을 한단다. 어쩌면 이것이 답일지도 모른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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