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박병호 경영대학 교수

<편집자 주> 뉴로마케팅이라는 명칭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실제로 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아직 많다. 이러한 사실을 악용해, 다른 연구기법을 뉴로마케팅이라고 과대 포장하는 사례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 분야에 대한 소개와 이를 통해 해외 대학의 연구환경을 함께 들여다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기아자동차가 새로운 자동차 시리즈 이름으로 K-시리즈를, 그리고 그중에서도 대표 모델에 K7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새로운 이름을 짓는 데는 여러 후보 중 소비자의 두뇌에서 가장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을 찾는 ‘뉴로마케팅’ 기법이 사용되었다고 해 화제가 되었다.

뉴로마케팅이라는 생소한 명칭이 지난 수년 간 국내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뇌과학을 상징하는 접두어인 ‘뉴로(neuro-)'와 시장경제를 대표하는 학술분야 중 하나인 ‘마케팅'을 합친 단어이니 시장경제 아래에서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카이스트인들에게는 특히 관심이 가는 분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생체반응 측정용 센서를 연구참가자의 얼굴에 붙이는 로버트 포터 교수. 센서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포착해 사람의 감정 변화를 시시각각 기록할 수 있게 한다.

정신생리학과 마케팅이 만나다

마케팅 분야의 권위있는 학술지 <소비자 행동(Journal of Consumer Behavior)>이 2008년 뉴로마케팅 특별호를 출간할 때 ‘뉴로마케팅은 신경과학의 연구방법론을 시장 연구조사에 활용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신경과학의 연구방법론을 사용하면 뇌 속의 혈액 흐름에서부터 뇌파, 심전도, 땀샘의 활동, 근육 활동, 안구 활동 등 다양한 신체적 활동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생리적 활동과 반응은 인간의 두뇌(그리고 두뇌에 직접 연결된 중추신경계) 활동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 따라서 신체적 반응을 통해 소비자의 두뇌 활동을, 나아가서는 심리 상태를 유추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심리학과 의학을 융합한 정신생리학(psychophysiology)을 마케팅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응용하는 것이 바로 뉴로마케팅이다.

통념 뒤엎는 다양한 연구결과로 인간에 대한 이해 넓혀

뇌과학 분야의 저널 <뉴런 (Neuron)>에 게재된 소위 ‘펩시 챌린지' 연구는 실험참가자에게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번갈아 마시게 하면서 매번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촬영한 결과, 실제로 입에 들어간 콜라의 종류와는 관계없이 콜라를 마실 때 보여주었던 브랜드의 종류에 따라 대뇌 측두엽에 있는 해마 부위의 활성화 정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즉, 미묘한 맛의 차이보다는 브랜드가 뇌에 더 큰 영향을 미치며, 식품 기업은 품질만큼이나 브랜드에 투자를 할 필요가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연구였다.

자동차경주 게임 중 광고판이 지나갈 때마다 게이머가 받는 영향을 살핀 연구에서는, 중추신경계가 받는 영향을 가늠하기 위해 심전도와 땀샘 활동을 센서로 관찰했다. 그 결과, 광고판이 지나갈 때마다 나타나는 신체적인 영향이 광고판이 지나간 후에도 무려 6초간 유지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광고판 속의 정보가 게이머들의 기억에 남아있음을 확인한 것은 물론이다.

보통 열혈 게이머들은 스스로 ‘나는 자동차경주 게임 중 도로와 경쟁 차량에만 눈길을 준다. 실물도 아닌, 게임 속의 광고판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는다’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게임 속 광고에 예산을 들일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본 기사의 서두에서 소개했던 기아자동차의 새 모델 이름을 물색한 연구는 우리 학교의 정재승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가 실시했던 것으로, 뇌 내부의 촬영과 시선추적장비를 통해 측정한 반응을 통해 K7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이 외에도 우리 학교 경영대학의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의 화면 디자인 개선, 네이버의 포털 디자인 변경 연구 등이 국내에서 뉴로마케팅을 실무에 사용한 사례들이다.

필자는 과거에 게임이나 라디오 청취 중 생체반응의 변화를 측정하는 연구를 했으나, 우리 학교 경영대학에 부임한 후로는 광고 및 소비자 심리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연구로는 TV광고 속 정보량에 따른 생체반응과 정보 기억량의 변화가 있는데, 이는 TV광고를 과학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의 효율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학문성과 실용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다

심리학의 한 분야인 정신생리학이 심리학에 기초한 실용학문인 마케팅과 융합하여 탄생한 뉴로마케팅은 그 실용성의 측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 마케팅 조사에서 사용되던 설문, 인터뷰, 관찰 등의 연구방법들이 밝혀낼 수 없었던 부분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생각을 알려주겠다’에서 시작해 이제는 ‘고객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고 넌지시 귀띔하는 컨설팅 업체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연구 기법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자신감을 반영하고 있다.

뉴로마케팅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실용성 때문만이 아니다. 학계에서도 뉴로마케팅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경영학(마케팅) 관점에서는 새로운 연구방법론이기 때문에, 또 고가의 장비 및 숙달된 인력이 필요해 진입장벽이 높다 보니 뉴로마케팅 연구와 그 논문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 또한, 마케팅에서 흔히 물어볼 만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두뇌의 동작원리를 탐구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한다면 주류 심리학에서 환영받는 (응용 위주가 아닌) 순수 학술적 논문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이 외에도 뉴로마케팅은 심리학과 경영학은 물론, 산업공학·산업디자인(어느 인터페이스가 가장 긴장수준을 낮추는가), 정치학(어느 후보가 더 긍정적으로 느껴지는가) 등 연구자가 적용하기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학문이며, 현업에서는 컨설팅 등에서 타 학과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제공해 준다.

뉴로마케팅 전공의 미래

흥미로운 것은, 필자이 아는 바로는 세계적인 경영대학 중 뉴로마케팅 연구시설을 두고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뉴로마케팅을 표방하는 연구자들의 대부분은 심리학이나 광고학 전공이고, 필자 역시 미디어 심리학을 전공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경영학 전공으로 뉴로마케팅을 공부하는 학자는 학계를 선도하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희망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지난 90년대부터 IT 분야에서 한국이 경영학계를 이끌어왔던 것처럼 뉴로마케팅 분야에서도 한국이, 나아가서 KAIST가 이 분야를 선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와 KAIST 뉴로경영 연구실의 인재발굴과 국제교류는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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