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의 소통으로 다음 세대를 열어갑니다"

▲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10일 오후 창의학습관 터만홀에서 열린 'ICISTS 대중강연'에서 강연한 뒤 학교를 떠나다가, 한 학우의 "화이팅하세요"라는 말에 주먹을 쥐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하늘 기자
너무 좋아서, 말을 할 수가 없네요. 정말 그리운 카이스트 학생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1년 반 만에 다시 돌아와서 교정 둘러보고, 오전에는 천안에 다녀왔습니다. 충청도 천안과 대전이 저와 인연 깊은 것이, 제 대학 첫 직장이 천안 단국대학교였고 회사 사장으로서 바깥 생활을 한 다음 첫 직장이 또 카이스트입니다. 대전, 충청도가 저에게 의미 깊은 장소죠. KAIST에 와서는 대전으로 주민등록을 옮겨 대전 시민으로 3년 정도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언제는 저보고 성화봉송 주자로 뛰라고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뛰다가 넘어져서 불 꺼뜨리면...(웃음) 그래서 도망쳤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대전에 살면서 참 좋았던 것이 이렇게 우리나라가 넓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전에는 서울에 있었는데 외부 강연 요청을 받으면 시간상 서울 근교까지만 가게 되요. 그래서 저는 서울 반경으로 얼마 안 되는 그런 생활을 살았습니다. 대전에 와서는 공주까지도 30분, 전주까지도 1시간 반, 대구도 1시간 이내로 어디든 다닐 수 있는 거에요.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넓구나. 눈을 띄게 해준 고마운 곳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제 말씀드릴 내용을 찾다 ‘이코노미스트’에 재밌는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산업혁명 있잖아요. 18세기 말 영국에서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1차 산업혁명이 있었고, 20세기에는 미국에서 포드 자동차가 대량 생산하면 매스 프로덕션. 이제는 3차 산업혁명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분이 제레미 리프킨으로, 책을 냈었죠.

3차 산업 혁명이 어떤 분야에서 시작될 거라고는 사람마다 상상하는 바가 다릅니다. 여기 보면 제조업과 IT가 결합하면서 3차 산업혁명이 온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무엇이 생기냐. 2차는 대량 생산인데 3차는 IT가 제조업과 결합하면서 그전에는 많이 생산해서 단가를 낮췄다면 요즘은 소규모 생산하더라도 낮은 단가로 많은 사람에게 팔 수 있으니까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이라 해요.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필요한 물건을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를 기반으로 해서 3D 프린터로 뽑아요. 인터넷에서 설계도면을 다운받아서요. 예를 들면, 아프리카 어디서 정밀 생산하는데 부품을 안 들고 왔어요. 다시 공장에서 갖고 오려면 한참 걸리고요. 그런데 만약 3D 프린터가 상용화되어서 쓰게 되면 그 즉시 인터넷으로 설계도를 받아 바로 생산할 수 있어요. 그러면 언제 어디서나 소규모 기계, 부품, 툴 등을 생산하게 되고 산업에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다.

예전엔 단가를 낮추다 낮추다 보니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하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인건비가 굉장히 많은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인데, 이제는 인건비 비중이 줄어들어요. 예전에 비해서. 그러면 구태여 중국으로 갈 필요가 없게 되고, 소량으로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게 되면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 자체가 달라질 수 있어요.

이런 3D 프린터가 카본 파이버(Carbon Fiber)라든지 재질을 사용하면 단단하게 할 수 있는데. 음식도 이게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내가 먹고 싶은 초콜릿이 있으면 초콜릿 회사에서 초콜릿 레시피를 받아 집에서 누르면 초콜릿이 만들어지고. 어쩌면 이런 쪽으로 가는 게 아닐까 상상해보면서 굉장히 재밌겠다. 그런 생각들을 해봤어요. 이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혁신경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
 
제가 대통령 출마 선언하고 나서 많은 분들이 경제민주화 얘기하고 있고 복지 얘기하고 있는데, 그 둘은 외바퀴 자전거와 같이 혼자서는 같이 가기 힘들다. 사람들에게 안전망을 제공해주고 청년들이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청년들이 더 창의적인 도전을 하게 되어 혁신경제로 이어지고 거기서 나온 재원들이 다시 경제민주화, 복지 등으로 들어가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제가 얘기한 두 바퀴 경제론입니다.

지속적인 경제가 이렇게 완성이 된다.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지속적인 경제 발전은 두 바퀴로 이루어진다. 경제민주화와 혁신경제. 3차 산업혁명이라든지 그런 것들은 그 예로 들 수 있다.
 
오늘의 주제가 과학기술과 소통이죠. 과학기술에 대해서 세부적인 것은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거고 과학기술과 소통이 어찌 보면 이과와 문과처럼 이게 어떻게 연결이 될까 생각해볼게요. 소통도 주체가 많아요. 전문가들끼리의 소통도 있고 다른 분야 전문가와의 소통도 있고 내부 조직과 외부 조직 간의 소통도 있고. 여러 가지 소통이 있어요. 그런 부분은 제가 여러 부분을, 소통을 많이 하다 보니 느낀 게 많습니다.
 
전문가와 대중의 소통은, 제가 의대 다닐 때가 있어요. 그 당시 의학상식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갈구했는데, 지금과는 다르게 환자들이 물어도 의사들이 잘 안가르쳐주던 시절이었어요. TV에서는 아주 쉽게 의학 상식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분이 스타가 된 시절인데, 그분이 하는 얘기가 맞는 것도 있고 학문적으로 조금 애매한 부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분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엄청났어요.

이를 두고 제가 동기, 동창, 의사들과 어떤 이야기를 했느냐면, 내가 전문가로서 맡은 일을 잘하기도 해야 하지만 내가 대중에게 어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할 의무가 있다. 우리가 우리 할 일만 하면 되는 시대는 끝났고 전문가들은 대중에게 상식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동료들끼리 그런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의사직을 그만두고 IT 쪽으로 넘어왔더니 똑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IT분야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면 어떤 문제점에 대해 다 공감하는데 이걸 두고 전문가들이 다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으니 국민이 이 문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해요.

근데 저는 의사하다가 전직한 사람이라 보니까. 우리나라에 한 분야의 전문가는 소수에요. 극히 일부만 의사고, 극히 일부만 IT 전문가고 하니까. 많은 국민들 중 극히 일부만 전문가에요. 그런데 같은 전문가끼리 모여 이야기하고 있으면 이 정도 상식, 이 정도 문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착각해요. 정작 국민들은 모르는데.

그래서 마음을 먹었습니다. 내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IT가 가진 제대로 된 개념이나 문제점을 정확히 전달할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도 하고 문제제기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IT 강국이 아니라 IT 소비 강국이다. 그러니 축제 벌이고 샴페인 터뜨릴 분위기가 아닌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자.

여기 계신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 대중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는 게 전문가의 역할이다. 그게 소통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일반인과 전문가의 소통이 제가 말씀드릴 첫 번째였다면, 그 다음은 다른 영역의 전문가와 전문가 사이의 소통입니다. 이런 게 융합 아니겠습니까. 융합이 최근에 나온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융합 연구 분야가 뭐가 있었죠... DNA 구조 밝힌 것 왓슨과 크릭이 했잖아요. 왓슨은 생물학자고 크릭은 물리학자였어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을 해도 자기가 가진 학문적 도구로는 해결 못 해요. 그런데 물리학자는 엑스레이 크리스탈로그래피(엑스선 결정법, X-ray cristallography)는 항상 쓰고 있는 방법인데 이걸 생물학에 적용할 생각을 못했어요. 이걸 생물학에 접목시켜 DNA 구조를 밝혔다. 융합이란 게 최근에 나온 게 아니라 50년 전에 이렇게 나온 거에요. 융합이란 것은 예전부터 있었던 거죠.

우리가 학문적으로 구분한 것들, 수학, 물리, 화학 등 사람 입장에서는 자연현상이 복잡해서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한 측면에서 본 거잖아요. 그렇게 학문들이 발달한 거죠. 마치 한 눈만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면 (왼손으로 왼쪽 눈을 가리며) 잘 안 보이네... 그래서 두 눈 다 뜨고 최소한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봐야 3차원으로 보여요. 한 분야의 전문지식만으로는 복잡한 자연, 사회 현상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융합이 뜨기 시작한 것이고.

각 분야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연구는 다 한 듯싶어요. 남은 연구는 굉장히 어려운 연구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학문의 영역이 있다면 가장자리 부분에 관심을 두게 된 거죠. 그 가장자리 부분이 학문과 학문이 맞닿는 부분이에요.

바람 빠진 풍선에다 펜으로 그물 무늬를 그려요. 그리고 그걸 불기 시작해요. 불면 처음에는 선인데 선 사이사이가 늘어나면서 그 사이에 빈 영역들이 생기게 되죠. 예전에 인간이 가진 학문의 깊이가 얕아서 커버 못하는 부분이 생겼어요. 그런 부분을 채우는 게 융합인 거죠. 그래서 융합이란 게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거고요.

그런데 전문가들끼리 융합을 하기 위해 이과, 문과 출신들을 같은 대학에 묶어놓고 융합의 결과를 기다려요. 근데 쉽게 나오지 않아요. 비유하자면, 상자에다 모래를 담아놓고 기다리면 벽돌이 되나요. 모래알과 모래알이 붙지 않는 이유는 같은 한국 사람이고 말도 같고 나이도 같고 한데, 문화가 달라요. 용어가 달라요. 그래서 오해를 하게 되고 잘 되지 않죠. 한 과에다 양 분야 교수들 소속시켜 놓는다고 될 리가 없죠.

그래서 그 둘을 붙여줄 수 있는 사람. 아교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양 쪽을 전공한 교수님이 들어가서 붙여도 좋고. 학과장, 대학원장, 총장님이 위에서 압력을 가하면(웃음) 제가 며칠 전까지 압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다가 여기 와서(웃음) 그래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올해 초 빌 게이츠를 만나러 갔어요. 그 중 화제가 융합이었고 제 고민을 말씀드렸는데 뭐였느나면, 다른 분야 사람 만나서 일하는 게 힘들다. 용어도 다르고 하니. 빌 게이츠도 그런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문제 해결방식이 한 가지 프로젝트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를 모아놓고 선정한 책을 읽게 한대요. 같은 책을 읽으면 관심이 모아지고 용어가 같아지고 사고의 흐름이 비슷해져 그게 잘 된대요.

한 집에 두 사람이 같이 살게 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게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 일을 하게 만드는 그런 것 같은데, 한 조직 내에서 문과, 이과 좋다 이거에요. 근데 다른 학교, 다른 회사, 다른 조직 사람과 어떻게 소통하느냐...

오픈 이노베이션. 이것에 대해 버클리의 헨리 체스브로가 얘기해서 다시 각광받고 있는데, (기존에는) 깔때기 모델처럼 아이디어부터 결과물까지 깔때기 식이에요. 처음엔 아이디어가 참 많이 나와요. 그중에서 실제로 성공 가능한 것을 골라내고 점점 좁혀가면서 마지막에 결과가 나오는데 이것은 굉장히 폐쇄형이에요. 삼성전자도 그렇고 자기 기업체 내부 연구소에서 시작해서 그렇게 된 거죠.

그런데 전 세계 천재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경우는 없어요. 그래서 이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그래서 개방형 혁신모델이 나왔어요. 구멍 뚫린 깔때기. 조직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왔다갔다. 외부에서 들어온 아이디어를 흡수하는 거죠. 구멍 뚫린 깔때기 모델이 오픈 이노베이션이에요.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의 소통을 나타내는 방법이에요.
 
출마 선언하고 제가 내일이라는 포럼을 만들었어요. 내일은 오픈 네트워크 정책포럼인데요, 내일(Tomorrow)의 의미도 있지만 다른 말로는 '내 일'. '나의 일처럼 참여하면 좋겠다' 이런 뜻이 있어요. 그걸 어떻게 구상했냐면, 지금까지 고전적인 선거캠프에서는 전문가들을 모아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서 그 분들이 열심히 정책을 만들고 국민들에게 내놔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굉장히 수직적이에요. 폐쇄적이고.

그게 이제는 먹히지 않는 것 같아요. 사회가 너무 복잡해서 일부 전문가가 사회 복잡한 걸 다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각계에 여러 전문가가 있는데 그게 잘 반영되지 않아요. 오히려 21세기 복잡한 융합의 시대에 필요한 정책은 사회단체나 시민단체가 정책을 만들어요. '이런 정책이 반영되면 좋겠다'고.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담아내요. 실현 가능성은 잘 모르겠지만 본인들이 최선을 다해 공약을 만드는 움직임이 사회 곳곳에 있어요. 이런 건 폐쇄형에서는 힘들어요. 그래서 내일을 만들었어요.

내일에서는 뭘 하느냐하면, 내일은 철학, 방향성을 제시하고 각계각층에서 전문가를 흡수해서 받아들여요. 무작정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그 철학에 부합하는지 등을... 그래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충돌하는 부분에 대해 정리하는 역할을 하는거죠. 기본적으로 큰 방향을 제시하고 그걸 잘 받아들여 우선순위를 정하고 충돌을 잘 조정하는 것이 내일의 역할입니다.

개방형 혁신 모델이 정치권에서도 도입됐으면 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러 의미가 있어요.

조직 내에서도 여러가지 다양한 분야들 간의 소통이 있을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 나름대로 고민하게 된 계기가 미국에 가서 벤처캐피탈을 둘러보았을 때였어요.

미국에 샌드힐 로드가 있어요. 거기 주변에 미국에서 가장 큰 벤처캐피탈들이 엄청나게 거기에 모여있습니다. 수십 조 원이 왔다갔다하는 엄청난 곳인데, 1,2등은 아니었고 5등 내에 드는 벤처캐피탈에 가봤어요. 그래서 투자자금 얼마나 운용하느냐, 2조 원이래요. 제가 갔던 때가 꽤 오래되어서 한 10년 된 것 같아요 한국 같으면 2,000억 정도가 가장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럼 도대체 몇 명이나 일하세요 하고 물어보니, 스무 명이래요. 한국은 2천억 운영하는 데가 200명인데. 돈은 10배인데 사람은 십 분의 일. 엄청난 효율이에요.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전문가가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었어요.

나노 테크놀로지(나노기술, Nano Technology)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인데, 관련 전공을 했고 특허 10여 개에 누구보다도 이 분야가 어떻게 흘러갈지 산업 전반에 비전을 갖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고 자기가 보고 판단하고 자기가 투자하면 된다. 성공확률도 굉장히 높고 그런 상황인데, 우리나라는 벤처 캐피탈에서 투자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관련 전문가를 고용하죠. 전문가들이 투자할 대상에 대해 리포트를 쓰고 이그제큐티브 서머리(Executive summary)를 보고 결정해요. 의사 결정권자 한 사람당 10명 정도 분석가가 필요한 거에요. 그 구조가 어쩌면, 전체적인 효율이나 성공 확률은 전문가가 의사결정권을 갖느냐 비전문가가 갖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사회도 전문가가 의사결정 할 수 있는 그런 쪽으로 가야 하나 생각돼요. 앞으로 전문가가 의사결정권을 가지는 구조가 더 심화되지 않을까. 그런 것들이, 문과랑 이과처럼 맞지 않는다고 혹시나 생각하셨던 카이스트 학생분이 계셨다면 그거는 정말로 착각이고 오히려 과학기술인이 소통에 재능이 있으면 열배 백배 가치가 나요. 이공계 인이 대접받지 못하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소통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

<학우 질의응답> Q. 연사님께서 기본적으로 기술 벤처 창업 경험이 있으시고 KAIST에서도 기업가정신에 대해 강연한 적이 있으시기 때문에, (중략) 과학기술인의 창업 진출에 대해서 질문드리고 싶고, 이들이 해외 페이스북과 같은 성공을 보려면 어떤 점이 개선되고 발전돼야할 점은 무엇인지 연사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 우선, 이공계 학생들이 아셔야 할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뭐냐, 회사의 성과는 ‘기술력 X 마케팅 능력’이에요. 보통 기술 기반으로 창업을 하게 되니까 기술이 정말 중요하다. 3분의 2 또는 90% 이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마케팅, 매출을 낼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느냐면, 기술력은 백 점인데 마케팅은 빵점이면 백 곱하기 영은 제로(zero). 그러니까 세계 수준의 백 점짜리 기술을 가지고도 망하는 이유가 그래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추천해 드리고 싶은 것이 첫 번째, 팀을 이루어서 창업을 하셔야 해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이고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두 사람 이상. 두 사람에서 세 사람이 모여서... 코파운더(Co-founder)라고 하죠. 공동창업을 하면 혼자 하는 거보다는 굉장히 많은 부분이 좋아질 수 있죠.
두 번째로 명심하셔야 할 점은 내가 만드는 서비스나 제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 흔히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창업을 하다 보면 빠지는 오류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그걸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면 다들 좋다고 하고 “그거 만들면 내가 사 줄게” 이럽니다. 그래서 신이 나서 열심히 투자를 받아서 물건 만들어서 찾아가면 안 사줘요. 그런 일들을 제가 90% 이상 봤어요. 보통 평소에 알던 사람이 찾아와서 대놓고 물어보면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안 산다고 말할 사람 없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잘못 속으면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건데, 그래서 내가 만들고 싶고 내가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기보다 정말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하라. 그러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가장 쉬운 것 중 하나가 영어로 컨셉 테스트(Concept Test)라는 게 있어요. 하나 어떤 예를 들까요. 그래요, 제초제. 잡초 없애는 화학약품이 있어요. 이것을 대량으로밖에 못 사고 손에 묻고 하니 사람들이 불편해서 대량으로 농사지을 때 빼고는 가정에서 이용하지 않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아이디어를 냈어요. 이걸 에프킬라처럼 통 속에다 넣으면 소량으로 쉽게 제초를 할 수 있을 거 아니냐. 그런데 이걸 공장을 만들고 투자를 받아 사람들이 사는지 안 사는지 보기에는 너무 위험이 커요. 이럴 때 쓰는 방법이 뭐냐면, 팜플렛을 만들어요. 그러니까 투자받고 공장 만들기 전에 팜플렛을 만들어서 마치 그 물건이 지금 있는 것처럼 해요. 거기에 사진도 넣고, 사용 방법도 있고, 광고문도 있고, 가격도 있어요. 이걸로 주위 사람에게 가서, 내가 만들었다고 하지 말고, “이거 필요하냐고 이 정도 가격이면 사겠냐”고 물어봐요. 만약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사람들이 사겠다고 하면 실제로 뛰어들어도 되는 거에요. 이런 식이 컨셉테스트(Concept Test)에요, 마케팅하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인데. 그런 간단한 거 모르고 뛰어들어서 망하는 벤처기업을 너무나 많이 봤어요. 굉장히 간단하고 상식적인 마케팅 조사 방법이 많아서, 그런 것으로 최소한 투자하기 전에 시장성을 알 수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실제로 계획을 실행할 때 사업은 나 혼자의 일일 뿐만 아니라 투자자, 직원들이 다 있기 때문에 정말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한 번에 모든 것을 걸면 안돼요. 올인하면 안돼요. 내가 만약 이번 투자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두 번째 시도를 할 수 있게, 항상 그렇게 해야 해요. 그렇게 하려면 실행에서 점진적인 실행. 내가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사람과 필요한 돈을 한꺼번에 투자받아서 한꺼번에 하지 말고, 투자를 100을 받았다면 그중에서 단계를 나눠요. 1단계에서 얼마의 돈과 얼마의 사람이 필요하면 그것만 해요. 시도해서 성공하면 그 다음 단계, 그 다음 단계. 만약에 실패하면 나머지 여력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조금씩 여러 과정을 한꺼번에, 모든 것을 투자하지 말고 세부 단계로 나누고 마일스톤(Milestone)들을 세운 다음에 증명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그런 신중한 모드로 가면 꽤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어요.

Q. 카이스트 학생들처럼 이공계 자녀를 둔 부모로서, 선생님께서 중요하다 생각하시는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자녀에게 전달해주셨나요?

A. 질문을 듣고보니 딸에게 그런 적이 없네요(웃음). 저도 다른 부모와 다를 바 없습니다. 결국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도 인간관계입니다. 그런데 인간관계는 예외 없이 관심과 애정,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가까워져요. 저도 분명 지금도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써서 (가족과) 보낼수록 더 가까워져요. 오히려 부모 관계가 혈연이라 충분히 가깝다고 생각하면 멀어져요. 아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저도 학교 다닐 기간이라 그때 회사에 있었으면 바빴을 텐데... 나이 들어서 공부하니 그런 점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저는 아이의 조언자라고 생각해요. 결정권자가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 저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제 딸에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딸이 답답해하기도 해요. 딸이 ‘왜 다 나한테 떠넘기느냐’라는 고민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과정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깨닫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못 해준 말들은 책이나 유튜브 등에서 보시고(웃음).

Q. 소통과 융합이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학문 간의 융합은 각광받고 있지만, 과학기술인과 사회의 소통을 강조하는 학문은 주목받지 않는 것 같은데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기본적으로 좀 어렵죠... 융합이 다 좋은데 참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보통 한 분야만 전공해서 그 분야로 어떻게 승부를 보려 하면 그에 대해 굉장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게, 한 분야 전공을 하려면 굉장히 많은 투자가 필요해요. 그러면 나이가 좀 들어요. 그런데 다른 전공을 택한다는 것은 새로운 분야로 뛰어든다는 것인데. 나이가 든 다음에 다른 분야로 가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어요. 그래서 그런 고난의 과정이 있고. 새로운 분야를 하면서 그 분야 전문성이 유지가 되면 잘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힘든 게, 다른 공부 하다 돌아오면 잊어버려요.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같이 유지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또한, 현실적인 문제로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의학과 법학이 융합하면 접점이 세 가지가 생깁니다, 의료 소송에 관한 분야가 생기고, 윤리랑 또 한 분야는 생명 과학, 바이오테크놀러지(생명과학기술, biotechnology) 쪽에서의 지적재산권 문제 이렇게 세 분야가 생겨요. 이것들은 어느 한 쪽 지식만으로는 하기 힘든데. 이걸로 취직하려면 한 분야만 공부해서는 안돼요. 이쪽 분야에서의 일도 50% 저쪽도 50%여야 하잖아요. 그런 거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죠.
융합대학원 때 일을 말씀드리면, 교수님이 양쪽을 해요. 제가 같이 일한 교수님의 경우. IT를 전공하고 음악에 대해 박사 받았어요. 그러면 어떤 곡을 듣고 자기가 해석을 해서 추천 곡이 나온다든지 그 곡이 뭔지 금방 알아낸다든지 그런 연구를 하는데, 이런 분들 고민이 뭐냐면 학교랑 학회가 논문집이 한 분야로 align 돼 있어요. 정렬이 되있어요. 더 위에는 연구비가 있죠. 연구비도 학과도 한 분야로 되어있고. 학회활동을 해야 하는데 한 가지로 굳혀져 있고. 논문 발표하는 저널도 한 분야면 두 분야 일을 하고 싶어도 그쪽 성격에 안 맞아서 안 받아주고. 그래서 현실적으로 융합이 미래의 방향으로 좋긴 한데, 오래된 학문의 구조상 연구비 주는 기관부터 융합 쪽으로 투자해야 해요.
그 다음에 바뀌어야 할 것은, 여러 과가 있는데 학과마다 벽들이 있죠. 그걸 허물어서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인사구조가 대학에 되어있어야 하고. 전혀 다른 학과가 한자리에 모이며 공동 세션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하고. 여러 권 내는 저널 같은 경우 융합 특집을 해서 그쪽 논문을 받는다든지 아직은 그 정도까지가 아니라 어렵긴 한데 학생들 입장에서는 괜찮은 것 같아요. 학생들이 크면 그런 조직적인, 시스템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취재진 질의응답> Q.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끼리 융합하기 위해서는 가교 역할이 필요하다는 강의 내용이 어제 탈당하고 합류한 송호창 의원을 지칭하는 것인가

A. 그렇지 않다. 원래 생각해왔던 것이다. 학문간의 장벽을 없애고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는 얘기 그대로다.

Q. 어제 캠프에 합류한 송호창 의원에 대한 생각은

A. 저랑 오랜 시간 뜻을 같이한 분이다. 캠프에 합류하는 결단을 해 주셔서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Q.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할 당시 잇단 자살에 침묵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A. 제가 서울대로 옮긴다는 뉴스가 나오고 자살 사태가 터졌다. 제가 몸담고 있던 조직을 나갈 때 그 전 조직에 대해 험담하면 오해를 받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에서 관심을 가진 다음에 자살 얘기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자살을 하는 사람의 20배가 자살을 생각한다고 한다. 언론에서 그 문제가 보도되면서 관심이 집중되었고, 일단 안타까운 선택은 멈췄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치유되지 않았었다. 그냥 있으면 재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미국에서 스트레스 순위를 보면 이공계가 굉장히 높다. 카이스트에서 더욱 무한경쟁으로 가중시키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학생들이 받게 된다. 아울러,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리하면 인문학적인 교육이 확충되어야 하고, 너무 극단적인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학생들을 탈락시키기보다, 다른 전공을 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등 제도적인 장치들이 보완되어야 한다.

Q. 미래기획부 신설과 총리 역할분담론 등 보도가 나왔는데

A. 이름도 몰랐다. 그 명칭은 신문 보고 알았다. 지금은 논의 중의 하나로, 청와대 이전을 비롯해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논의하는 중이다.

Q. 충청도를 찾은 소감은

A. 저도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은 곳이다. 첫 직장이 천안이었고, 회사 경영 후에 대전에서 강의를 하면서 열심히 하다 보니 대전 명예시민도 되었다. 선거가 다 끝난 뒤에 제대로 둘러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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