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이사회에서 서남표 총장의 계약해지 안건이 처리되지 않은 이후 우리 학교의 리더십은 또다시 미궁에 빠졌다. 지난해 봄부터 반복적으로 야기되어온 것처럼 이번 이사회 결과를 놓고도 하나의 사실에 대해 서남표 총장을 지지하는 당사자들과 반대하는 당사자들 사이의 해석이 엇갈렸다. 하나의 사실에 반드시 하나의 해석만이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우리 학교에서 반복되어온 ‘진실 게임들’은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해석이 아니라 사실마저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지난 20일 이사회 이후 곽재원 이사는 “서 총장이 오 이사장에게 진퇴를 포함한 모든 것을 일임했다”고 밝힌 반면, 서남표 총장을 대리하는 이성희 변호사는 “진상규명이 먼저이며, 서남표 총장의 자진 사퇴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이사회에서 총장의 거취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혹은 없었다와 같은 사실 확인의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주장이 개진되기 일쑤였던 우리 학교에서, 총장과 이사장의 합의 내용에 대한 이 정도 해석 차이는 구체적인 일정을 못박지 않은 채 합의한 순간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총장과 교수협의회 사이의 특허를 둘러싼 명예훼손 사건은 이미 경찰을 거쳐 검찰에 넘어간 사건인 이상 그 자체가 법률적 문제이다. 법적인 규명이 필요한 문제라면, 법적으로 진실을 가리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학교와 같이 중요한 국가적 소임을 띄고 있는 교육 및 연구 기관의 리더십이 사사건건 경찰이나 검찰의 손으로 법적인 시비를 가려서 얻어질 문제는 아니다.

서남표 총장의 계약해지 안건이 이사회에 상정된 12일 이후 서 총장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처럼, 법적으로 서 총장이 해임되어야 할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서 총장이 해임되어야 할 이유를 법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서 총장의 남은 임기 2년으로 부족할지도 모른다. 서남표 총장이 우리 학교에서 남은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는 법적인 방법은 법을 전공하지 않은 학내 구성원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 서남표 총장이 리더십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처럼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만으로 우리 학교를 정상화시킬 수는 없다.

법적으로 따지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물적 증거도 부족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진실을 가리기가 어렵지만, 지난해부터 1년 가까이 학교에는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집단이 분명 존재한다. 서 총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두 세력 중 한 세력이 바로 그러한 집단이다. 두 집단 모두 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구성원의 신뢰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서 총장은 법적으로 명예를 회복하는 일과 함께 구성원들로부터 잃은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속적 개혁, 명예로운 퇴진, 계약해지 등 우리 학교의 리더십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든 우리 학교가 정상화되려면, 개혁보다 신뢰의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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