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탄생 250주년, 그의 통치 철학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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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탄생 250주년, 그의 통치 철학을 말하다
  • 이경은 기자
  • 승인 2012.07.3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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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월 3일(음력 6월 16일)은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맞이해 전남 강진군 다산기념관에서는 지난 28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다산 기념 특별전시회가 열린다.

다산의 생가 여유당 /다산유적지관리사무소 제공

다산은 18세기 조선의 실학자로, 실학의 집대성자라고 불린다. 그는 수백 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그중에서도 <목민심서>는 2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목민심서>에 드러난 그의 사상은 무엇일까?

조선 후기 대두한 실용적인 학문, 실학

조선 후기 학자들간에는 주자학이 대세를 이루었다. 주자학이란 주자가 <논어>, <맹자> 등의 책을 해석한 철학을 말한다. 주자는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근본원리가 ‘마음속에 있는 이치(在心之理)’라는 원리로 유교 경전을 해석했다. 조선 학자들은 특히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이론 추구에 몰두해있었다. 왜란과 호란을 겪어 국토가 황폐해지고 경제가 어려워졌음에도 대신들은 주자학 이론만 추구하며 탁상공론을 거듭했다. 이 때, 정권에서 소외된 남인계 학자들을 중심으로 주자학을 비판하는 세력이 등장했다. 이들은 근대지향적인 성격의 실천적 학문을 추구했는데, 이것이 바로 ‘실학’이다.

자신만의 철학체계를 정립한 다산

주자학의 폐단을 반성하고 이론과 실천이 조화를 이루는 본래 성리학으로의 회귀를 주장했던 전기 실학자들에 비해, 후기 실학자들은 주자학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강했다. 그들은 실학을 ‘실제 생활에 유용한 학문’이라는 의미로 이해해 현실 문제의 해결점을 찾으려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후기 실학자였던 다산은 주자가 생각한 우주 만물의 원리 이(理)를 부정하고 행위와 실천의 실제가 우주 만물의 원리라고 주장했다. 유교 경전을 자신의 실학적인 측면으로 재해석한 철학자가 다산이었다.

다산의 대표작, <목민심서>

다산의 실학사상이 대표적으로 드러난 저서는 <목민심서>다. <목민심서>는 지방 관리들이 백성을 다스리고 보살피는 방법과 그 예시를 저술한 책으로, 48권 16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수령이 지켜야 하는 덕목을 12편으로 나누고 편마다 6개의 조항을 만들어 총 72개의 조항을 다루었다.

<목민심서>에는 다산이 관직에 있을 때 백성을 다스렸던 경험과 유배기간 동안 목격한 부패 관리들의 횡포에 고통받는 백성의 모습이 녹아있다. 그는 수령이 고을에 부임할 때 가지고 가야 할 물건부터 임기를 끝내고 고을을 떠날 때의 차림새까지 구체적인 언급을 통해 무엇보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했다.

청렴,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최고 덕목

다산은 백성을 돌보려면 무엇보다 수령이 흠 잡힐 것 없이 청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목민심서> ‘율기(律己)’편에는 ‘청렴은 공직자 본연의 임무이며 모든 선의 근원이고 모든 덕의 뿌리이다. 청렴하지 아니하고서는 수령이 될 수 없다’라고 쓰여있다. 그는 지도자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청렴을 꼽았다.

다산은 집안을 다스리는 데에도 비리를 경계하도록 했다. 이 역시 <목민심서>에 명시된 것으로, 자신이 청렴하게 생활하려 해도 아내나 부모, 형제가 뇌물을 받고 부정부패를 저지른다면 이것 또한 백성의 고통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역설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부하직원에 해당하는 아전을 다스리는 방법에 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놓았다. 그는 윗사람이 자신을 다스리고 집안을 다스리면서 모범을 보여야 아랫사람도 부정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정치계에는 ‘부패’, ‘비리 의혹’이라는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해마다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 ‘부패 척결’, ‘깨끗한 정치’라는 슬로건이 눈에 띄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국민의 실망만 불러일으킨다. 최근에도 유력 인사들의 저축은행 관련 비리가 연일 불거져 나오며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다. 다산이 ‘부패하고 썩어 문드러졌다(腐爛)’라며 한탄하던 조선 후기의 부정부패문화는 아직도 남아있다. 그가 <목민심서>를 통해 당대 수령들에게 전하려던 메시지가 현대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셈이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바뀐 제도나 변화된 시대의 제약에서 벗어난 목민심서의 주장은 오늘의 통치와 행정의 중심사상이 되는 데 부족함이 없다”라며 <목민심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스려야

<목민심서>가 실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그 당시 현실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실천안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대선 정국마다 이론만 앞세운 개헌 논의가 급부상하지만 결국 매번 흐지부지된다. 다산은 이 같은 일을 경계하며 충분히 현실의 문제점을 숙지한 후 폐단을 고치려 했다. 법률 개정과 같은 개혁은 실제로 실행되기 어렵다. 때문에 다산은 <목민심서>를 통해 대대적인 개혁 없이도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했다. 그 밑바탕에는 항상 백성을 먼저 생각한 다산의 인본주의 사상이 깔려있다. 그는 <목민심서> 중에서도 ‘애민(愛民)’편을 따로 만들 정도로 백성을 연민했다.

다산이 애민편에서 언급한 ‘백성’은 현대에서 사회적 약자를 의미한다. 그는 노인, 어린이, 가난한 자, 상을 당했으나 상을 치를 형편이 되지 않는 자, 아프거나 몸이 불편한 자, 재난을 당한 자를 ‘소민(小民)’이라 하며 이들을 마땅히 수령이 보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민편에서는 다산의 근대적 사상도 돋보인다. 그는 고아를 위한 교육시설,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을 만들 것을 권고하고 자연재해를 예방하는 예시를 나열하는 등 근대적 복지국가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다산은 당시로는 드물게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철학자였다. 그는 <목민심서>에서 ‘지극히 천해서 억울해도 억울하다고 말도 못 하는 사람들이 연약하고 힘없는 백성이다. 그러나 높고 무겁기가 산과 같은 사람들 또한 바로 그 백성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다산은 백성을 연민했지만 천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통치자는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의 학문은 백성 중심이었고 그의 저서들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다. 때문에 당시 다산이 제시한 올바른 통치자의 모습은 오늘날 국민이 열망하는 통치자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이것이 바로 <목민심서>가 현대사회에서 정치인, 기업인의 필독서로 손꼽히는 이유다.

그림/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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