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 이사장 “서 총장이 전권을 자신에게 일임, 계약해지안 처리 유보”
8시30분 시작해 9시15분 종료… 병풍 뒤로 입장해 취재진 거센 항의

▲ 임시이사회가 열린 20일 오전 8시, 40여 명의 취재진이 서남표 총장과 오명 이사장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김성중 기자

[종합2보= 7월 20일 오후 7시]

이사회는 결국 서남표 총장 계약해지안을 처리하지 않았다. 20일 열린 제217회 임시이사회에서 이사들은 예상을 뒤엎고, 서 총장 계약해지안에 대한 의결 자체를 하지 않은 채 회의를 45분 만에 종료했다.

이번 이사회에는 총 16명의 이사 중 허동수 이사를 제외한 15명이 참석했다. 당초 이사회에는 ▲지난 이사회 회의록 보고안 ▲서 총장 계약해지안 ▲후임 총장 선출 개시안 ▲총장후보선출위원회 위원 선임안 등 4개 안건이 상정될 예정이었지만, 서 총장 계약해지안이 논의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1번 안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리되지 않았다.



▲ 임시이사회가 열린 20일 오전 7시 30분, 학우와 교수 50여 명이 '서 총장 즉각 퇴진'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김성중 기자

“서 총장 계약해지하라” 학우·교수 침묵시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2층은 이사들이 입장하기 전인 오전 7시부터 총장 해임을 요구하는 피켓을 든 학우와 교수들로 가득 찼다. 호텔 직원의 지시 하에 시위단은 침묵을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자리를 지켰다.

이에 앞서 김도한 학부총학생회장은 이사들에게 서신을 보내 "서남표 총장은 학생과 교수, 이사회와 정부 모두를 '정치적 음모' '배후세력' '기득권'과 같은 단어로 폄하하면서 자신의 명예를 위해 KAIST를 깎아내리고 있지만, 독선과 거짓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에는 '배후세력'도 '기득권'도 없다"라며 서 총장 퇴진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날 침묵시위에는 총학 간부들과 ‘서남표 총장 퇴진을 위한 학생모임’ 소속 학우들을 비롯한 일반 학우들, 그리고 교협 운영위원들과 일반 교수들 등 50여 명이 참여했다.

▲ 임시이사회가 시작된 20일 오전 8시 30분 경, 이사회장을 방문한 학우들이 서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김성중 기자

병풍 뒤로 기습입장… 취재진과 거센 마찰= 이사회 예정시각인 7시 30분을 훨씬 넘긴 8시 15분 경, 취재진 40여 명은 서 총장과 오명 이사장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1시간 30분 째 ‘뻗치기’를 하고 있었다. 취재진이 학교본부 관계자에게 두 인물의 위치를 문의하자 “두 분이 곧 입장할 것이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러던 중 8시 25분 경, 서 총장과 오 이사장이 이미 이사회장에 들어가 조찬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당시 이사회장의 두 번째 문에는 높은 병풍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침묵시위 중인 학우와 교수를 피해 병풍 뒤편으로 들어간 것이다.

▲ 임시이사회가 열린 20일 오전 8시 30분 경, 서남표 총장과 오명 이사장이 병풍 뒤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시간 30분 째 대기하고 있던 취재기자들이 항의를 하고 있다 /김성중 기자

뒤통수를 맞은 40여 명의 취재진은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라며 강하게 항의했지만, 학교본부 관계자들은 “전혀 몰랐던 일이다”라고 해명했다.

취재진은 “그렇다면 스케치(회의 사전촬영)라도 하겠다”라며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고, 관계자들은 “회의가 다 끝나기 직전에 들어가 촬영하라”며 스케치조차 거부해 “지금 뭐하자는 것이냐” “취재진들을 대상으로 장난을 하는 것이냐”라는 등 기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 임시이사회가 열린 20일 오전 8시 35분 경, 스케치 촬영이 봉쇄된 회의장 앞에서 촬영기자들이 "당초 얘기와 다르다"며 항의하고 있다 /김성중 기자

8시 35분 경, 이사회는 촬영기자들에 한해 잠시 입장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촬영기자들이 입장하던 도중, 이번에는 학교본부 관계자가 본지 사진기자의 회의장 입장을 막아섰다. “교과부 기자단에 가입되지 않은 매체이므로, 들어갈 수 없다”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각 방송사 기자 등 교과부 출입기자들이 오히려 “학보사 기자를 안으로 들여보내라”며 항의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교수들과 학우들도 학보사 기자의 취재를 막는 것을 거세게 항의했다. 결국 본지는 회의장 내부를 스케치해 정상 보도할 수 있었다.

▲ 임시이사회가 열린 20일 오전 8시 45분 경, 두원수 홍보실장이 이번 임시이사회의 개요를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성중 기자

계약해지안 처리 유보… 45분만에 회의 종료= 오전 9시 15분 경, 회의장 옆방에 마련된 기자실에서는 각 언론사의 취재진들이 속보 경쟁을 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회의장 밖에서 침묵 시위를 하고 있는 학우들에게 두원수 홍보실장은 “이 문제는 이사회가 잘 처리하겠다. 학교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나. 이사회가 학생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원만하게 처리할 것이다”라는 오 이사장의 발언을 전했다.

▲ 임시이사회가 열린 20일 오전 7시 30분, 김영길 이사가 이사회에 출석하고 있다 /손하늘 기자

그러던 중, 9시 17분 경 기자실 밖에서 “끝났다”라는 외침이 들렸다. 통상적으로 이사회가 최소 1시간 반, 최장 4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던 점과 비교해 이례적인 외침이었다. 회의장을 나오던 오 이사장은 이내 취재진에 둘러싸였다.

오 이사장은 “서 총장이 자신의 거취를 포함한 학내 수습방안 모두를 자신에게 일임했다”라고 밝히고 “자세한 내용은 오늘 이사회의 대변인인 곽재원 이사에게 하라”고 말한 뒤 호텔을 빠져나갔다. 이사회 종료 직후 오 이사장이 회의 결과에 대해 공식 브리핑을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브리핑은커녕 자료조차 제공하지 않고 퇴장하자 취재진들은 혀를 내둘렀다.

▲ 임시이사회가 열린 20일 오전 8시 30분 경, 이사회장 문을 가린 병풍 뒤로 회의장 안쪽의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손하늘 기자

곽재원 이사 “총장 거취 및 수습방안, 다음 이사회에서 결론 낼 듯”= 오 이사장이 이사회 대변인으로 지목한 곽 이사는 오 이사장의 발언이 끝난 직후 “서 총장이 신상발언을 통해 ‘오 이사장에게 진퇴를 포함한 모든 것을 일임했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곽 이사는 “이사회 시작 전 6시 20분부터 서 총장과 오 이사장이 호텔 비즈니스룸에서 만나 협의한 뒤 회의장에 들어왔다”라며 “협의 내용을 이사회 시작 직후 발표했고, 나머지 이사들은 구두로 동의했다”라고 말했다.

▲ 임시이사회가 끝난 20일 오전 9시 30분, 오명 이사장이 회의장을 빠져나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다 /손하늘 기자

또한 “학내 상황에 대한 수습방안이 결정되면 다음 이사회를 소집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한두 달 내에 거취 등을 다루는 다음 이사회가 소집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곽 이사는 “이러한 내용은 서 총장이 남은 임기 2년을 채우지 않는 것(조기 퇴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라고 못박았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우리 학교 출신 표삼수 이사는 회의가 끝난 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6명 정도의 이사가 ‘방향을 더욱 분명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했다”라고 전했다. 곽 이사도 이러한 발언이 있었음을 취재진에게 확인해줬다.

표 이사는 “KAIST의 장래와 한국대학의 지속적 개혁을 위해 이사회가 고민을 많이 했다”라며 “계약 중인 총장의 해임은 통상적인 일이 아니므로 신중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특별한 사유 없이 총장을 해임할 경우 명성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라고 말했다.

서 총장과 오 이사장의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합의되었는지 자세히 듣지 못했다”라며 “총장의 거취를 포함해 전권을 오명 이사장에게 일임한다고만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 임시이사회가 열린 20일 오전 10시 경, 학교본부 측 이성희 변호사가 이날 새벽 있었던 서남표 총장과 오명 이사장 간의 회동 내용을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성중 기자

이에 대해, 오전 10시 경 기자간담회를 연 학교본부 측 이성희 변호사는 이사들의 주장을 일부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오늘 새벽 서 총장과 오 이사장의 회동에 배석해, 대화 내용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다”라고 밝히며 두 사람의 발언을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일각에서 보도되고 있는) ‘사퇴를 전제로 합의’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며, 먼저 특허 사건 등에 대한 진상조사가 선행된 다음에, 서 총장이 자신의 거취 등을 자율적으로 판단해 오 이사장과 협의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곽 이사 등이 발언한 ‘퇴진 전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 임시이사회가 열린 20일 오전 9시 17분 경, 회의가 끝난 직후 회의장을 빠져나가던 오명 이사장과 곽재원 이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중 기자

‘전권을 위임했다’라는 표현에 대해 이 변호사는 “위임이라는 단어가 ‘오 이사장 독단적으로 결정한다’라는 말이 아니라 ‘그것(판단)을 (오 이사장과 서 총장이) 협의해서 하자’는 뜻이다”라며 “서 총장에게 자율권을 많이 주어, 서 총장이 자신의 생각을 이사장에게 전달하면 이사장이 최종 판단한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또한 “오 이사장이 ‘거취에 관한 자율권을 존중한다’라고 말했다”라며 “거취에 관한 자율권이란 사퇴의 시기나 방법 등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오 이사장은 당초 서 총장 계약해지에 확고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오 이사장의 입장이 이처럼 크게 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변호사는 “계약해지를 했을 때 상당한 혼란이 오는 것을 피할 수가 없는데, 그런 부분을 협의하자고 오 이사장에게 제의했다”라며 “그제 이후로 오 이사장이 계속 연락을 해 왔고, 어제 최종적으로 이 장소(호텔 비즈니스룸)로 약속을 잡았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강성호 교수평의회장과 경종민 교수협의회장은 이사회가 끝난 직후 오 이사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오 이사장은 “너무 길지 않은 시한 내에 (서 총장이) 사퇴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확실히 사안을 처리했으며, 총장이 사퇴하기 전이라도 후임 총장 선임절차를 가동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경 회장이 전했다.

▲ 임시이사회가 열린 20일 오전 8시 40분 경, 이사회에 참석한 서남표 총장이 이사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양현우 기자

서 총장은 이와 관련해 “학교 개혁 및 거취와 관련된 저의 소신과 원칙에 오 이사장이 뜻을 같이했다”라며 “향후 학교발전 방안 및 학내 문제 해결방식에 대해서도 의견일치를 봤다”라고 말했다고 학교본부 관계자가 전했다.

학교본부 관계자는 “이사회 직전 서 총장과 오 이사장이 합의한 내용은 ▲총장의 거취는 총장 자율로 함 ▲향후 후임 총장은 함께 선임 ▲지난 6년 개혁업적 계승발전 ▲특허 도용사건 및 명예훼손 사건에 함께 적극협조 ▲학내 근거없는 흑색선전 및 비방 근절에 최선 등이다”라고 밝혔다.

일부 이사가 회의 종료 후 복도발언에서 “자진사퇴로 봐도 된다”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학교본부는 “해당 이사의 사견이며, 총장과 이사장의 합의내용과도 다르다”라며 “이날 자진사퇴 및 해임과 관련된 어떠한 논의나 결정도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오명 이사장은 이날 오후 교육과학기술부를 통해 낸 보도자료에서 "서 총장이 자신(오 이사장)에게 전권을 위임함에 따라 오 이사장은 이와 관련한 KAIST 정상화 및 발전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이사회 내에 소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기로 했다"라며 "이 소위원회는 이사 4~5인으로 구성해 앞으로 약 1~2개월간 운영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 임시이사회가 열린 20일 오전 8시 40분 경,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들이 회의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양현우 기자

총학·교협 “실망… 기대”= 김도한 학부총학생회장은 회의 결과가 알려진 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실망스럽지만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오늘 결과는 실망스럽지만, 오 이사장이 전권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서 총장을 퇴진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빠른 시일 내에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라며 “개학할 때까지 거취가 정리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와 훨씬 큰 저항이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경종민 교수협의회장은 10시 40분 경 기자간담회를 갖고 “결과가 명쾌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교협은 이날 오후 5시 경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이사회가 이미 상정된 계약해지안마저 보류하고 자진사퇴의 길을 열어준 것을 우려한다”라며 “KAIST와 그 구성원들은 이로 인해 더 큰 고통을 받고 학교가 골병이 들 수 있기에 이러한 양보와 인내는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어야만 했다”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교협은 “오늘 이사회의 결정은 이사장에게 엄청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임시이사회가 끝난 20일 오전 9시 30분 경, 곽재원 이사가 이사회 결과를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성중 기자

안건 상정에서 이사회 개회까지= 앞서 12일 오후 10시 이사회에 서 총장의 계약해지 안건이 전격 상정되자 학내외에서는 발빠른 행보가 시작됐다.

지난 월요일 서 총장은 기자회견에서 “남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떠나야 할 것 같다”라고 운을 띄우며, 일부 이사를 비롯한 특정 고위층의 사퇴압박을 받았음을 폭로했다. 또한, 총장 측 이성희 변호사는 “(계약해지 안건이 통과될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이사회에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밝혔다.

이날 서 총장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총학은 호텔 인근 인도에서 “이사회는 서 총장을 계약해지하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 이사장은 각 언론사에 서신을 보내 “당일 이사회에서 충분히 안건을 논의해 KAIST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결론을 내릴 것이므로, 이사회가 개최되지도 않은 현 시점에서는 소모적인 논쟁을 자제해 달라”며 일축했다.

다음 날인 화요일 교수평의회는 서 총장의 퇴진을 재차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으며, 기자회견이 있고 이틀 뒤인 수요일에 열린 교수협의회 정기총회에서는 서 총장이 “물러나야 하는 사유를 밝히라”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것에 반발해 서 총장이 물러나야 하는 이유 40가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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