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잠수교가 보행자 중심으로 바뀌고, 반포대교에 무지개분수가 설치되었을 때만 해도 기껏해야 구경오는 사람들밖에 없었는데, 저녁을 만끽하는 인파를 볼 때 이제는 삶터의 일부가 된 느낌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가뭄정신’의 거점이었다. 목마른 이들은 다양했다. 올림픽대로는 더 빨리 달리려는 차들로, 반포대교는 더 오래 야근하고 집으로 향하는 승객들로 가득찼고, 다리 남단에는 더 휘황찬란하고 기계적 멋을 뽐내는 인공섬을 세운답시고 혈세를 쏟아부었다. 지금 반포대교 남단에서 불꺼진 이 인공섬을 보며 낭만을 논하는 사람은 없다.

부쩍 늘어난 것은 여수 밤바다의 인파도 마찬가지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싶다”며 속삭이는 한 인기 가수의 노래와 맞물려, 방학과 휴가를 맞은 이들은 너도나도 여수 밤바다로 향하고 있다. 여수엑스포를 취재한 본지 기자들은 이번 엑스포를 공존과 화해, 메시지가 있는 감성적 엑스포라고 전했다.

학교 주변에는 로봇 모양, 브라운관 모양 등의 20년 전 대전엑스포 상징물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과학의 도시인 대전에서 개최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성이 더 컸겠지만, 자기부상열차와 과학전시 등 휘황찬란한 첨단기술이 서로 자신을 뽐냈던 지난 엑스포들과 여수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러한 경향은 기본으로, 일상으로, 사람으로 돌아가자는 ‘되돌아보기 열풍’ ‘힐링 열풍’과 맞닿아있다. 전후 반세기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많은 것을 하는 게 미덕이었다면, 오늘의 시대정신은 가장 기본적인 일상의 향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문득 퇴보로 비춰질 수 있지만, 풍요로운 일상을 충분히 누리며 자유롭고 행복한 꿈을 꿀 때 창의와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미 사회 각계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읽었는지, 대선에서 유독 ‘경제’ 화두가 나오지 않는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제는 시민들이 ‘경제’라는 단어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한다. 경제가 있던 자리를 대신한 캐치프레이즈는 ‘진보적 성장’ ‘저녁이 있는 삶’ ‘따뜻하고 공정한 시장’등으로, 거창하거나 이념적인 구호가 아닌데도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그런데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는 곳이 있다. 학생은 끊임없이 경쟁해야만 하고, 나중에 이기기 위해 지금 질 수 있으며, 철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대학으로 가면 된다는 말이 나오더니, 이제는 개혁에 부적응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무엇이 KAIST의 본성인가. 무엇이 시대를 꿰뚫는 정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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