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총장 사퇴 요구하며 학우 100여 명 본관서 공부
현수막·대자보 등 게시… 학교본부와 마찰
총학, 21일부터 양일간 총장 거취 설문조사 진행
교수협의회, 학내 곳곳에 “즉각 사퇴” 현수막 게시

▲ 21일 오전,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공부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본관 앞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손하늘 기자
기말고사 기간과 방학을 맞아 꺾일 것으로 예상되었던 학내 갈등이 오히려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학우 100여 명(21일 오후 4시 기준)이 본관에서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공부 시위’를 벌였으며, ‘카이스트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생들의 모임’ 소속 학우들은 현수막과 대자보를 게시했다. 이러한 가운데 학부총학생회가 21일부터 이틀간 총장의 거취를 묻는 설문조사에 돌입했고, 교수협의회는 학내 곳곳에 총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게시하는 등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이로써 학내 갈등상황은 하루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일촉즉발의 양상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 21일 오전,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공부 시위'에 참가한 학우들이 본관 건너편에서 본관 입구로 자리를 옮겨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손하늘 기자

총학, 서 총장 사퇴여부 묻는 설문조사 = 학부총학생회(총학)가 서남표 총장의 거취를 묻는 문항을 포함해 5문항으로 구성된 설문조사를 21일부터 22일까지 온라인(vote.kaist.ac.kr/survey)으로 진행한다.

총학은 학우들의 의견을 확인하고 총학의 공식 활동방향을 확정하기 위해 전체 학부과정 학우를 대상으로 이같은 설문조사를 진행한다고 20일 밝혔다. 김도한 총학 회장은 “지난 몇 년 간 학우들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서 총장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없었으며, 특히 지난해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대처하는 서 총장의 모습을 보면서 총장을 신임했던 많은 학우들이 이제는 지쳤다”라고 말했다.

▲ 21일 오후,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공부 시위'에 참가한 학우들이 남긴 방명록이 본관 외벽을 덮고 있다 /손하늘 기자

설문조사는 ▲서남표 총장의 사퇴 찬성 여부 ▲지난해 ‘카이스트 사태’ 이후 서 총장이 보여준 리더십에 대한 평가 ▲서남표 총장을 비판하는 교수협의회(교협)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 ▲서 총장이 제안한 ‘대통합 소통위원회’ 참가 여부 ▲학생이 의결권을 가지는 민주적 대학평의회 구성 찬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찬성과 반대로 답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총학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 입장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 21일 오후,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공부 시위'에 참가한 학우들이 본관 입구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손하늘 기자

가르치고… 일손 돕고… 기부하고… 간식 후원까지 = 21일 오전 10시부터 본관 안팎에서 진행된 ‘공부 시위’에는 오후 4시를 기준으로 동시간대 100여 명의 학우가 참여했다.

학우들이 공부를 위해 자리를 잡은 곳은 21일 오후 4시 현재 본관 입구(30여 명)와 로비(60여 명), 휴게실(5명), 제1회의실(10여 명), 제2회의실 등이다. 시위를 시작할 당시 본관이 보이는 맞은편에 ‘본관 열람실’을 설치했지만, 기온이 높아 건강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오전 11시경 자리를 그늘로 옮겼다고 참가 학우들은 밝혔다.

▲ 21일 오후,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공부 시위'에 참가한 학우들이 본관 로비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손하늘 기자
이날 시위에는 기말고사 공부를 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참여가 이어졌다. 교수와 조교는 제자의 시험공부를 돕고, 책상과 의자를 나르는 것에 힘을 보태며, 후원금을 내거나 간식을 돌리는 등 ‘측면 후원’이 속속 도착한 것이다.

▲ 21일 오후 6시경, '공부 시위'를 마무리한 학우들이 본관 앞 잔디밭에 모여 후원금으로 마련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손하늘 기자

물리학과, 수리과학과, 전산학과, 원자력및양자공학과, 생명과학과, 전기및전자공학과 등에 재학중인 대학원생 학우와 학부 고학번 학우들은 일찌감치 본관 앞을 찾았다. 이들은 후배들이 기초과목 및 전공과목 시험을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 생기면 찾아와 질문할 수 있는 ‘헬프 데스크’를 열었다. 이날 시험이 있는 일반생물학과 프로그래밍기초 등에 대한 학우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김봉수 화학과 교수도 시위 현장을 찾아 일반화학 과목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 21일 오후,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공부 시위'에 참가한 학우들이 본관 입구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손하늘 기자

앞서 오전 8시에는 일손을 도와줄 학우를 찾는다는 ARA의 게시글을 본 학우들이 본관 앞을 찾아 책상과 의자를 날랐다. 기부금은 100만 원에 달했으며, 오후 들어서는 자발적으로 간식을 가져와 나누어주는 학우들도 눈에 띄었다.

오후 6시까지 본관에 남아있던 학우들은 오후 6시 10분 경 본관 앞으로 모여 "서남표 총장은 즉각 사퇴하라"라는 구호를 외친 뒤 준비된 저녁식사를 먹고 자진해산했다. 사용된 책상과 의자 등이 오후 7시 경 모두 정리되면서 시위는 마무리되었다.

▲ 21일 오후 6시경, 시위 현장에 마지막까지 남은 90여 명의 학우들이 자진해산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손하늘 기자

이날 시위에 참여한 전산학과 11학번의 한 학우는 "총장님이 소통을 거부하고 독단적 운영을 한다는 것을 느껴 퇴진을 바라게 되었다"라며 "시위를 통해 학교의 진정한 주인이 학생임을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물리학과 11학번의 한 학우는 "이제는 변화를 기대할 때는 지났으며, 깨끗이 물러나야 한다"라며 "대통합 소통위원회 역시 지난해와 같은 기만적인 제안으로 전혀 믿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한 10학번 학우는 "지금까지 학사제도를 변경할 때 학생에게 설문조사 한번 안 하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는데, 지금 이 때 학생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학생들은 다시 제3자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다"라고 시위에 참가한 이유를 밝혔다.

▲ 21일 오후 7시경, '공부 시위'를 마무리한 학우들이 책상과 의자 등의 집기를 정리하고 있다 /손하늘 기자

“총장님, 이제는 떠나실 때입니다” = 이에 앞서 ‘카이스트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생들의 모임’은 21일 오전 10시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 '카이스트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생들의 모임' 소속 이윤석 학우(물리학과 10)가 21일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양현우 기자

학우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기자회견은 ‘카이스트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생들의 모임’ 소속 이윤석 학우(물리학과 10)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곽민욱 학우(생명과학과 10)가 ‘총장님께 드리는 글’을 낭독했다.

‘카이스트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생들의 모임’ 소속 학우들은 ‘총장님께 드리는 글’에서 “소통에 올인하며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총장님은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결국 그 끝에는 말바꾸기와 무시, 진정성 없는 대화와 독선이 있음을 알고 있다”며 “환골탈태를 기대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총장님께 더 이상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확인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민주적이고 상식적인 학교, 학생들의 꿈과 열정이 생동하는 학교의 복원을 위해 총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 21일 오전 10시, '공부 시위'에 참가한 20여 명의 학우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양현우 기자

또한 ‘카이스트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생들의 모임’은 ‘학우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뜻을 함께하는 많은 학우들과 함께, 기말고사 첫째 날인 월요일 ‘본관 열람실’을 연다”라고 밝혔다. 본관 앞 ‘공부 시위’에 대해 이들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총장과 학교본부의 독선을 타파하고, 진정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재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카이스트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생들의 모임’은 학업적 부담 속에서도 현 시국의 학내 문제를 학우들의 목소리로 답하고 풀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구성된 학생 모임이다. 학부생 약 2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평적인 모임으로 대표나 간부는 없다. 이들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시국이 흘러간다면, 학생의 권리는 물론 우리가 사랑하는 KAIST가 더욱 회복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자발적으로 모이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 21일 오전, '공부 시위'에 참가한 학우들이 시위를 알리는 게시물을 본관 입구에 붙이고 있다 /양현우 기자

현수막·대자보 부착… 학교본부와 마찰 = 앞서 지난 20일 오전 3시, ‘카이스트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생들의 모임’ 소속 학우들은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본관 앞 시위를 알리는 대자보와 현수막, 안내문을 학내 곳곳에 게시했다. 하지만 오전 9시, 이는 모두 철거되었다.

이 모임 소속 학생들이 직접 학교본부를 항의 방문한 결과, 학교본부 모 부장급 이상의 지시로 학교본부 소속 직원들이 대자보와 현수막, 안내문을 뗀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이들은 전했다.

▲ 21일 오전, 시위에 참가한 학우들이 서남표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자보를 본관 입구에 붙이고 있다 /양현우 기자

이에 대해 ‘카이스트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생들의 모임’은 긴급호소문을 통해 “지난 6년의 독선적 대학운영이 끝내 반복되는 현실을 목격하는 심정은 실로 참담하다”라며 “부디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견 표현을 제압하지 말 것을 호소한다”라고 밝혔다.

▲ 21일 오후,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공부 시위'에 참가한 학우들이 본관 입구에 방명록을 남기고 있다 /손하늘 기자

서남표 총장 “학생 20여 명, 조직 급조해 기자회견까지” = 학교본부는 21일 오전 11시 ‘학생 동향 관련 학교본부 입장’을 통해 “학생 20여 명이 급조해 만든 조직이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총장의 사퇴를 요구한 현 상황에 서 총장은 우려를 표명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학교본부는 “서 총장은 그간의 스타일 지적을 최근 수용해, 학생들과 스킨십을 확대하고 학생 중심의 학교 행정시스템 정착을 본격화하던 중이었다”라며 “학생들과 정례 모임 및 비공식 자리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는 등 학생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해 왔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본부는 “학부총학생회가 내일까지 총장의 거취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라며 “현 시점에서는 특별한 입장을 밝힐 단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 21일 오후, 100여 명의 학우들이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공부 시위'에 돌입한 가운데 교수와 조교의 '헬프 데스크'를 알리는 상황판이 본관 입구에 게시되어 있다 /손하늘 기자

교수협의회, 학교 곳곳에 현수막 게시 = 한편, 교협은 총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21일 오전 11시 경 창의학습관, 정보전자동, 대강당 앞, KI빌딩 등에 게시했다. ‘총장 퇴진 현수막 게시’는 앞서 지난 8일 교수총회에서 의결된 바 있다. 교협은 22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향후 대응방향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 21일 오전,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교수협의회의 현수막이 정보전자동에 걸려 있다 /손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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