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물음표,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 삶을 축제로 만드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편집자 주> 우리 학교의 축제인 석림태울제가 끝난 지도 벌써 열흘 이상이 지나고, 학우들은 프로젝트 발표와 기말고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축제는 정말 끝난 것일까? 리더십 코치로 유명한 LJM교육연구소 이정민 원장은 삶을 하나의 축제로 만드는 즐기는 리더십을 소개한다.

▲ /송채환 기자

KAIST의 가장 큰 축제인 ‘석림태울제’가 끝났다. 언제부터인가 학교의 축제는 학내구성원의 축제에서 그치지 않고 지역의 축제가 되었다. KAIST 석림태울제에 다녀왔다는 한 지역주민의 글만 읽어도 뜨거웠던 석림태울제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석림태울제는 끝났지만, 삶의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삶을 축제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삶의 의미를, 학업을, 그리고 책임감을 즐기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매일매일이 축제가 되는 ‘즐기는 리더십’을 가지자.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죽어서 영혼이 하늘에 가면 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받게 된다고 믿었다. 먼저 ‘당신은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를 묻고, 다음으로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었는가?’를 묻는다는 것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두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지에 따라 천국에 갈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고 믿었다. 지금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면 우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찾는 리더십] “삶은 여행이다”

20대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큰 의미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누구나 20대의 몇몇 단편적인 기억을 가지고 30대를 맞이하며, 30대가 되어서는 유독 더 20대를 돌아보고 의식하게 된다. 그 속에 살고 있을 때에는 잘 알지 못했던 20대의 소중한 나날들이 스물아홉이라는 20대의 끝자락을 잡고 있을 그즈음에는 절실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필자는 20대를 많이 넘어지고, 아프고, 기쁘고 행복하기도 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스물아홉,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대를 좀 더 의미있게 기념하고 서른을 맞이하자고 막연히 생각했다. 이러한 갈망은 한 여행전문가가 쓴 책을 읽고는 ‘여행’으로 구체화되었고, 12월 무작정 비행기 표를 끊어 중국 리장으로 향했던 것이 필자의 대표적인 20대의 기억이다.

리장의 일년 내내 온화한 기후와 파란 하늘을 잊을 수 없다는 사람들의 얘기, 풍경에 매료되어 리장에 멈춰선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보편적 상식의 틀에서의 성공을 위한 삶과는 가치관이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글로써 형용하지 못할 공허와 동경을 함께 느꼈다.

그곳에는 다양한 방식과 모습,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의 인터뷰를 보면, “내 아이들이 성공한 ‘승자’가되기보다는, 삶의 진실을 이해하는 ‘패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는 스위스의 한 아버지, “놀기도 바쁜데, 출세가 다 뭐야?”라고 하는 프랑스 사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순간,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어”라고 말하는 한국인도 있다. 행복, 성공, 삶이란 무엇인가. 리장에 멈춰선 사람들의 삶은 다시금 우리를 사색하게 한다.

누군가의 삶을 접하고 스스로 변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아가, 내 삶의 이야기로 다른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희망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성공, 내가 지향하는 행복의 기준이 진정 무엇인지를 스스로 물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학업을 즐기는 리더십] “학문은 출세의 수단 아닌 탐험”

학문을 탐구한다는 것은 곧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출세의 수단으로써의 동기유발보다는, 지적 호기심 그 자체와 같은 즐거운 동기로 학문을 탐구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전미(全美) 최고 고교생상과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수상한 이형진 씨는 “공부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탐험이며, 더 성숙하고 지혜로운 나 자신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공부는 등수를 매기는 것이 목적이 아닌,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를 확인하는 수단일 뿐이라며,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욱 지혜롭고 행복하면 그것으로 아주 기쁜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 씨가 윤리, 정치, 경제의 3개 학과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도 공부를 학문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는 과정으로 삼기 때문이다.

최근 부쩍 리더십과 함께 ‘통섭’이라는 단어가 쓰이고는 한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의 브랜드를 ‘통섭 리더십’이라 칭하기도 한다. 통섭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 주체가 나머지를 도맡아 다스리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에드워드 윌슨은 저서 <통섭>에서 오늘날의 통섭을 ‘지식의 대통합’이라고 설명한다. 자연과학, 인문사회학, 공학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지식을 하나로 합쳐야 더 큰 힘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경영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인문학 열풍이 부 는 것도 통섭과 무관치 않다. 한 대기업은 ‘문리(文理) 통섭형’의 인재상을 강조하고 있다.

한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넘어 복수(複數)의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학문적 지식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분야에서 호기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임감을 즐기는 리더십] “일생에 대한 책임의식으로”

필립 체스터필드의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에는 ‘젊은 시절의 기반’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18세가 되기까지는 지식의 기반을 닦기 바란다. 그렇지 못하면 그 이후의 인생을 네가 마음먹은 대로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식이란 것은 나이 들었을 때의 휴식처가 되고 도피처가 되는 법이다. 내가 오직 한 가지 후회하고 있고, 앞으로 후회하리라 생각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젊었을 때 나태하게 지내버린 시간이다. 젊었을 때 기반을 닦아놓지 않으면 나이가 들었을 때 매력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수없이 고민한다. 하지만 갈림길의 정답은 명쾌하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을 진학하고 난 뒤, 자신의 전공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대학생들을 자주 본다. 기대했던 것만큼 성과도 만족도 창출되지 않는 답보상태라는 것이다. 물론, 적성에 맞지 않으면 빨리 전과하는 것도 올바른 선택일 수 있다. 필자는 “최선을 다해봤어?”라는 물음을 던진다. 명확하게 “네”라고 답할 수 없다면 치열함에 대한 회피를 중단하기를 권한다.

인생 최대의 영광은 한 차례도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데 있다. ‘소금에 절임당하지 않고 얼음에 냉장되지 않는 생선은 썩는다’는 말처럼, 무엇인가를 진정 원한다면 치열하게 준비하고 한판 맞서자. 책임의식을 가지자. 막중한 무게의 책임감이 아니다. 내 삶이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도록, ‘행복할 의무’와‘하고 싶은 일을 할 권리’를 위한 책임의식 말이다. 단편적인 책임지기가 아닌, 자신의 일생에 대한 ‘책임의식’을 즐기기를 권한다.

인생의 답을 찾으려면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KAIST 학생들이 그 물음표의 끝에서 느낌표를 찍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글/ LJM교육연구소 이정민 원장
정리/ 박찬우 문화부장
* 이정민 원장은 LJM교육연구소의 원장으로, 공공기관과 기업 등을 대상으로 조직 활성화, 리더십 등에 대한 코칭과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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