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우가 자신이 살던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생과 교수의 잇단 자살로 학교가 큰 슬픔에 잠긴 지 1년 만이다. 학교본부의 대응은 굉장히 빨랐다. 비보가 전해진 즉시 서남표 총장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주요 보직자들이 참석하는 대책회의가 열렸다. 즉시 비상대책팀이 꾸려졌고, 곧바로 소집되어 해법을 모색했다. 극단적인 선택이 추가로 발생하는 것만은 막아내자는 절박한 의지가 담긴 대응이었다.

지난해와 비교해 대응 속도가 크게 빨라진 것이 하나 더 있다. 대(對)언론 창구의 일원화다. 비보가 전해진 오전, 학교본부는 포털과 ARA에 글을 게시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막고자, 취재진이 접촉하는 창구를 일원화하려 하니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학부총학생회는 이에 협조해 취재기자들의 전화와 방문을 모두 사양하고 홍보실로 문의하도록 안내했다.

혼선과 동요를 막고, 도가 넘는 언론보도를 차단한다는 취지는 백번 옳다. 하지만 ‘KAIST의 한 관계자’라는 장막 뒤에서 학교본부의 명예만을 사수한 창구 단일화 결과를 확인할 때, 과연 누구를 위한 단일화였으며 그 진정성은 어떠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학교본부는 미르관 현장에서, 본관 임시기자실에서 이번 비보가 학점과 무관함을 거듭 강조했다. “성적이 중상위권”이며 “학점이 높은 편이었다”는 학교 측의 발언이 속속 전해지더니 급기야 직전학기 성적을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공개했다. “학점이 평균보다 높으므로 성적을 비관했다 보기 어렵다”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나왔다. 두 달 전 복학했으므로 직전학기(2009년)가 아닌 전체 학점을 살펴야 한다는 일부 학우들의 지극히 타당한 지적은 손쉽게 걸러졌다. 게다가 “학생들 평균보다 학점이 높은 편”이라는 설명조차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학교본부가 강조한 것은 학점만이 아니다. 학교본부는 “그동안 학생들의 건의사항을 대부분 수용”하고 “대폭 완화했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사실과 거리가 멀다. 당장 지난해 비상학생총회에서 의결된 학생 요구사항을 보면, 3개의 안건 중 ‘2번째 안건’에 5개의 항목이 들어있는데, 이 중에서 ‘3번째 항목’인 교육환경 개선 요구안에는 ▲재수강 개선 ▲계절학기 개선 ▲연차초과 개선 ▲전면영어강의 완화 ▲교양과목 확충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이러한 건의사항은 비상학생총회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2년 전의 직전학기 학점을 끌어다가 공개하고, 학생들의 요구는 대부분 수용했다고 발표한 ‘KAIST의 한 관계자’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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