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은 우리 학교 역사상 가장 슬픈 시기였다. 4명의 학생이 차례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교수까지 그 비극의 행렬에 가세했다. 지난해 4월과 같은 비극은 다시는 우리 학교에서 반복되어서 안 되겠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지난해 4월의 슬픔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해 4월 이후 우리 학교는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성적에 따른 차등 등록금 제도가 폐지되었고, 영어 강의도 교양과목을 중심으로 다소 완화되었다. 학생처가 학생지원본부로 승격되었다. 지난해 4월 이후 우리 학교에서는 경쟁이 다소 완화되었고, 학생과 학내 구성원의 목소리가 학교 운영에 다소 반영되고 있다.

우리는 분명 지난해 4월의 교훈을 잊지 않았고, 지난해 안타까운 희생을 무의미한 희생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렇다면 이 정도 바뀌었으니 지난해의 희생과 슬픔은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던 것일까.

지금 우리 학교에서는 여전히 소모적인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어쩌면 지난해 4명의 학생과 한 명의 교수가 희생당한 그 비극적인 사건을 까맣게 잊은 듯, 정상적인 교육기관에서는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총장이 교수를 고소하고, 교수가 실명을 걸고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일이 지난해 4월의 희생과 슬픔을 겪은 바로 우리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결국 큰 틀에서 지난해 4월 이후 우리 학교에서는 변한 것은 거의 없다. 몇 가지 제도의 변경은 여론을 돌리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여전히 학내 구성원의 소통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고, ‘소통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총장의 약속도 현재로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의 희생과 슬픔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지난해 4월을 기억할 명칭을 제정할 것을 제안한다. 무책임한 언론은 지난해 4월 우리 학교에서 일어난 일련을 비극적인 사건을 일컬어 ‘카이스트 사태’로 명명했다. ‘사월 사태’로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이러한 명칭은 지난해 4월을 기억하는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지난해 4월의 비극이 왜 일어났는지, 그것이 우리 학교에 어떠한 숙제를 남겼는지를 다각적으로 검토해 합당한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다.

지난해 4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분들은 우리 학교에 무엇을 바란 것일까. 그분들의 희생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그러한 희생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4월의 비극은 결국 리더십의 위기였다. 일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리더십의 위기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다시 찾아온 4월을 맞이해 총장과 학교본부는 오늘날 리더십의 위기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 학내 구성원들에게 발표하고, 설득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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