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장으로 직책을 옮긴 지 한달 반. 드디어 처음으로 문화부 기사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문화부의 일은 기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녹록치 않았다. 기획을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기간,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공의 압박은 취재의 시간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 시간을 내어 다녀온 미술관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화려한 미술품들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었고, 친절한 도슨트와 작가들의 설명은 작품을 해석하는 재미를 주었다.

하지만 기자가 미술관의 방문이 ‘좋다’라고 말을 할 수 없는 까닭은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쉬어도 될 만한 미술관 안에서도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불편한 현실 탓일 것이다. 애써 교양 있는 사람인척 지루함을 참는 기색이 역력한 아주머니들. 열심히 도센트와 작가의 말을 받아적으며 학교의 과제를 하고 있는 대학생들. 기사를 쓰기위해 평상시라면 오지 않았을 미술관을 찾은 기자. 기자는 이들을 어떻다라고 단언을 하지는 않겠다. 혹자는 이것이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는 부나방같은 현대인의 아름다움이라 평가할 것이고, 혹자는현대인의 거짓과 위선을 대변하는 ‘양질호피’에서 등장하는 면모라 평가할 지도 모른다. 다만, 이러한 것들이 기자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왔고, 모종의 감명을 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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