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방학 어느 날, 이메일을 확인해보라는 연락이 왔다. 새내기 디자인 수업을 들은 3개의 조에게 공리적 디자인 학회인 ICAD 2009(International Conference of Axiomatic Design)에 참가할 기회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공리적 디자인이란 행렬법을 이용해 고객 요구사항(customer needs)이 기능 요건(functional requirements)과 계획 요소(design parameters) 등으로 변환하는 것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으로 서남표 총장이 발명했다.

이번 호에서는 포르투갈에서 3월 25일부터 27일까지 열린 ICAD 2009를 기자가 직접 참가하여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전달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서남표 총장, 건설및환경공학과 메리 캐서린 톰슨 교수, 산업및시스템공학과 이태식 교수와 이효나(필자), 아론 박, 정수한, 전병수, 정용철 학우(무학과 08), 권오훈, 박민주 학우(건설및환경공학과, 석사과정)가 학회에 참가했다

 

설레임의 시작

출발하기 하루 전날 아침 8시, 서남표 총장이 전할 말이 있으므로 본관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학생들이 도착하자 서 총장은 식사 예절, 복장 등 포르투갈에서 지켜야 할 사항들을 꼼꼼하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동아일보 지명훈 기자와 학회에 관련해 인터뷰를 했다. 그전까지는 중간고사 때문인지 아무런 긴장이 없었는데, 지 기자가 소감을 묻자비로소 학교를 대표해 학회를 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 설레이고 책임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24일 뮌헨을 향하는 비행기에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학우는 아무도 없었다. 톰슨 교수가 발표자료를 피드백 해주고 학우들은 준비한 대본을 끊임없이 연습했다. 경유하면서 공항에서나마 독일 맥주와 소시지를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 콜라가 맥주보다 비쌌다. 그제서야 기내에서 맥주를 물처럼 마시는 독일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리스본 공항에 도착하자 ICAD 2009의 주최자인 곤살베스 코엘료 UNL(Universidade Novade Lisboa, 영어로는 The New University of Lisbon) 교수가 우리를 맞이했다.

 

교수로서의 서 총장, 룸메이트로서의 톰슨 교수

25일 11시, UNL에서 개회식이 열렸다. 그 후 서 총장이 혁신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에 대해서 연설을 했다. 우리 학교 총장으로서가 아닌 교수로서의 서 총장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낯설면서도 새로웠다.

점심을 먹으면서 다양한 국적의 공학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어떤 학생은 우리 학교로 공리적 디자인에 대한 연구를 하러 올 계획을 세우고 있기도 했다. 톰슨 교수가 말한 바에 따르면 우리 학교는 비교적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고 절차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외국에서 연구하러 오기 어렵지 않다고 한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의미 있었던 일 중 하나가 톰슨 교수와 함께 방을 사용한 것이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교수와 함께 방을 쓴다는 사실에 대해 많이 걱정했다. 행동에 제약이 따르기도 하고 의사소통도 어려울 것 같다는 예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톰슨 교수와 함께 방을 쓰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인생 선배로서 필자의 인생과 미래에 대한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또한, 포르투갈에 와서도 새내기 디자인 과목을 위해 여행조차 가지 않고 일하는 교수를 보며, 학생으로서 교수에게 갖춰야 할 예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보는 새내기 디자인

학회 둘째 날인 26일부터 본격적인 발표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톰슨 교수가 KAIST에서의 공리적 디자인 교육에 대한 두 개의 논문(Applying Axiomatic Design to the Educational Process, Teaching Axiomatic Design in the Freshman Year: A Case Study at KAIST)을 발표했다. 새내기 디자인 수업을 직접 들은 학생으로서 객관화된 자료를 통해 우리가 어떠한 목적으로 교육받았으며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톰슨 교수는 이 수업의 궁극적인 목적 중 하나가 공학도로서 필요한 문제 접근 방식 및 사고의 전환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 아론 박 학우와 정수한 학우의 개발도상국을 위한 백신 용기 디자인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탄소섬유로 만든 용기 껍질은 충격을 흡수하도록 과학적으로 설계되었다. 또, 백신 용기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데 연기를 이용하는 등 사용자의 필요에 맞춰 제작되었다. 발표가 끝나고 나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여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학회 참가자들의 논문을 이해하려면 각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부분 발표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공리적 디자인이 제품부터 시스템 디자인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학회에 계속 참가해온 크리스토퍼 브라운 WPI교수는 제1회 ICAD의 경우 대부분 제품 디자인이었던 반면 올해로 5회를 맞이하는 ICAD 2009는 다양한 영역을 주제로 한다며, 앞으로 공리적 디자인의 응용 범위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르투갈에 오면 포르투갈법을 따르라

일정이 끝나고 나서 학회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과거에 성이었던 곳을 재건축해서 만들어진 식당이었다. 곳곳에 걸린 액자에 담겨 있는 삽화를 통해 중세 시대 때 이곳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식사하면서 서 총장이 포르투갈 식사 예절을 가르쳐주었다. 빵은 본인의 왼쪽 접시에 놓여져 있는 것을 먹어야 하고 물은 본인의 오른쪽에 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 또한, 미국에서는 식사를 하지 않을 때 손을 식탁 아래로 내려야 하지만 포르투갈에서는 항상 두 손을 보이도록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예절이라고 한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는 서영자 총장 부인이 식당 관련자에게 따로 부탁을 해성 안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이어서 성 꼭대 기에 올라가지 못해 아쉬웠지만, 리스본의 야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높은 건물이 많은 서울과 달리 대체로 건물들이 낮아 높이가 비슷했기에 오히려 빛이 밀집되어서 끝이 없이 펼쳐진 느낌이 들었다.

 

세계 속의 KAIST

27일 역시 26일과 마찬가지로 논문 발표가 학회의 주된 일정이었다. 필자가‘휴대전화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 에 대해서 발표했고 연이어 전병수, 정용철 학우가‘여러 관절을 가진 생체를 모방하여 장애물을 극복하는 로봇'에 대해 발표 했다. 전병수 학우가 발표하기 전에 청중에게 스 트레칭을 유도해 순간 우리 일행은 모두 당황했지만, 다행히도 청중이 모두 전병수 학우를 따라해 주었다. 학회의 마지막 순서로 권오훈, 박민주 학우가 교차로의 디자인에 대해 발표했다. 그 뒤 점심을 먹으면서 수상자를 선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즐겁게 옆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었는데 낮익은 소리가 귀에 꽂혔다. 권오훈, 박민주 학우가 상금 1,000달러와 함께 대상을 받은 것이다. 박민주 학우는 국제 컨퍼런스에서 첫 발표인 ICAD를 통햇 나를 한 단계 성장시 킬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모두가 함께한 학회의 마지막

학회가 끝나고 나서 전날과 마찬가지로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를 가졌다. 식사 도중 성악가들이 간단한 연극과 함께 가곡을 불러주어 더욱 즐거웠다. 마지막에는 모두 다 함께 ‘산타루치아’를 부르기도 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각기 다른 분야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노래를 부르는 광경은 아름다웠다. 단순히 논문을 발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렇게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자칫 지루할 수 있었던 학회를 즐길 수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포르투갈의 황금기와 함께했던 상 조르제 성과 제로니모스 수도원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미야자키 나카오 도쿄대 교수와 함께 리스본을 구경했다. 오픈 마켓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상 조르제 성에 오르기도 했다. 상 조르제 성은 알파마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난 왕들이 항구와 테주강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군사적 이점을 살려 군사 요새로 사용했다고 한다. 성 위에 올라가면 동화 같은 리스본 전경이 펼쳐져 있다. 야경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 후 벨렘 지구로 가서 제로니모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nimos)으로 갔다. 이는 포르투갈의 황금기인 대항해시대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그 시대 번성했던 포르투갈을 그려볼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몸은 지쳤지만, 머리 속은 다양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학 회를 통해 더욱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해 볼 수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효나 기자 /

same-emas@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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