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연구환경실태조사, 그 속내 파헤쳐보니

제40대 대학원총학생회(이하 원총) 선거기간 도중 안상현 당시 원총 회장의 ‘연구환경실태조사’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위)가 발족하는 유례없는 일이 일어났다.

진상위는 11일간의 조사 끝에 ‘진상위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보았을 때, 안 회장이 연구환경실태조사 용역을 통해 고의적으로 학생회에 손해를 끼치려 했다고 판단하지는 않으나, 업무의 미숙함으로 인한 과실이 인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진상위의 판단은 여러 의혹에 대해 뚜렷한 해명을 하지 못했고, 다수의 학우가 이에 대한 지속적인 규명을 요구했다. 이에 본지는 그 이면을 밝히기 위해 자료를 분석하고 증언을 청취하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취재를 벌였다. 관련자들 대다수가 익명보도를 요청했고, 본지는 이를 받아들여 A, B, C 등의 알파벳 순서대로 인물들을 표기했다.

연구환경실태조사, 그 시작은?

안상현 전 대학원총학생회(이하 원총) 회장을 필두로 한 연구환경실태조사의 시작은 지난해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기 초였던 안 전 회장은 원총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와 원총 내부 회의에서 더욱 체계적인 연구환경실태조사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피력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안 전 회장은 당시 “지난해(2010년) 조사는 원총 내부에서 진행되어 통계적 신뢰도가 떨어지고, 상관관계 분석이 부족해 신빙성도 떨어진다”라며 외부 통계분석기관과의 계약을 통해 전문성과 통계적 유의미를 확보하고자 했으며, 학생회 내부 회의에서 이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원총 부회장이었던 김민희 학우는 이를 위해 여러 전문통계업체에 설문조사 견적의뢰를 했고 업체들은 이에 7,000만 원에서 1억 원 사이의 금액을 제시했다. 당시 중운위와 원총 내부에서는 이러한 금액이 너무 비싸다며 난색을 보였다. 이에 안 전 회장은 중운위 회의에서 “(주)ALC경제정책분석연구소(이하 ALC)라는 업체에서 3,000만 원을 제시했는데, 이는 업계평균대비 매우 저렴한 가격이다”라고 밝히며 중운위원들과 원총 간부들의 공감을 얻었다.

중운위의 인준을 받은 안 전 회장은 4월 28일 연구용역표준계약서를 작성, ALC와 협의를 통해 계약기간을 2011년 5월 2일부터 2012년 1월 16일로 하는 9개월간의 ‘연구환경실태조사’를 시작했다.

원총 회장 본인이 ALC 대표이사 역임

현재 논란이 되는 것은 안 전 회장이 ALC를 2010년 2월 설립해 2010년 12월 20일 사임할 때까지 대표이사직으로 있었고, 현재도 이 회사의 주주라는 것, 이와 더불어 업체선정 당시 이 사실을 중운위원들이나 학생회 간부들에게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중운위 이후 위원들의 전자우편으로 온 서면 결의 자료를 보면 안 전 회장은 ALC라는 회사명은 공개하지 않은 채 우리 학교 출신이 대표라는 것만 명시한 것이 드러난다. 또한, 연구환경실태조사 실무를 맡았던 원총 간부 A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원총 간부 누구도 구체적인 회사의 이름을 알거나 안 회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듣지 못했다”라며 “그러나 3,000만 원 이라는 가격이 회사 측의 오버헤드수입 하나도 없이 150만 원의 간접경비만 책정한 저렴한 가격이라는 안 전 회장의 설명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저 그러려니 했다”라고 밝혔다.

안 전 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처음부터 ALC에 견적문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아는 회사라 전화통화를 하다 보니 우연히 요즘은 통계분석 업무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에 오퍼(offer)를 한번 넣어 보라고 귀띔했다”라며 “이에 처음에는 그쪽(ALC)에서 5,000만 원을 제시했지만 내가 3,000만 원에 맞춰달라고 부탁했다”라고 설명했다.

업계평균 8천만 원, ALC는 3천만 원?

원총이 지난해 초 받아서 발표한 7,000만 원에서 1억 원 내외의 견적서는 전수조사(90% 이상의 응답률)와 면접조사(일일이 면접원이 방문해 설문을 완수하는 방식)를 보장하는 설문에 대해 산출된 것이었다.

이는 2011년 2월 16일 학생회 개선부 회의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자리에서 원총은 “면접을 통한 전수조사는 한 명당 평균 15,000원에서 20,000원이 소요되고 대학원생 5,000명을 기준으로 7,500만 원에서 1억 원 선으로 책정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복수의 업체에 문의한 결과, 기존 업체들이 견적을 비싸게 책정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전수조사와 면접조사에는 시간과 인력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ALC가 제시한 3,000만 원이 전수조사, 면접조사를 기준으로 한 금액이 맞는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안 전 회장은 “ALC가 제시한 3,000만 원 역시 전수조사, 면접조사를 기준으로 측정된 금액이 맞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취재진은 당시 원총이 ALC에 보낸 과업지시서를 분석하던 중 눈에 띄는 항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업지시서의 제6항 ‘계약해지 및 지체에 관한 사항’에는 “설문 의뢰와 관련해 20%에 미치지 못하는 설문 응답률이 발생할 시 그에 해당하는 상환금을 부여한다. 단, 이와 관련된 사항은 관련 업계 평균 가격에 따른다”라고 쓰여 있다. 다시 말해, 설문조사에서 20% 이상의 응답률만 기록하면 처음의 내용과 달리 원총이 ALC에 공식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태로 프로젝트를 시작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고려할 때 “전수조사를 통한 설문조사가 3,000만 원이면 저렴하다”라는 안 전 회장의 말은 신뢰성이 부족해진다. 실제로, 안 전 회장이 실질적으로 ALC와 진행한 설문조사의 요구사항을 토대로 진상위에서 다른 업체에 견적을 의뢰한 결과 1,020만 원부터 1,790만 원까지의 견적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경우 ALC의 3,000만 원보다 오히려 더 저렴해진다.

안 전 회장은 이에 업체선정 과정과 설문조사 의뢰 과정에 대해 독자적으로 변호사를 통해 법적 소견서를 받고 이를 중운위 회의에 배포, 의혹을 부인했다. 안 전 회장이 밝힌 변호사 자문은 “수주금액보다 결과물의 가치가 현저히 낮을 때만 도의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으나, 여타 불법적 요소가 없으며, 결과물의 가치가 현저히 낮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혹이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 진행된 설문조사 조건대로 다시 의뢰해 입수한 견적서= 원총이 발표했던 7000만 원~1억 원에서 1000만 원대로 낮아진 가격을 책정받았다.

원총 간부들 “아무도 몰랐다”

본지는 조사 과정에서 전 원총 간부 A씨와 연락이 닿아 그의 진술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간부 중 아무도 안 전 회장이 ALC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회사였는지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들은 바 없다”라고 진술했다.

이는 안 전 회장이 지난달 9일 임시 중운위 회의에서 한 진술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증언이었기 때문에 더욱 명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지난달 9일 임시중운위 당시, ALC와 안 회장의 관계를 학생회 간부들이 알고 있었냐는 대학원 동아리연합회장 강동수 학우의 질문에 안 회장은 “아는 부분이고…”라고 진술했고, 이에 중운위에서는 원총 내부에서 이미 이 문제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는 식의 해석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추가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던 도중 취재진은 다른 원총 간부 B씨와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전 원총 간부 B는 “ARA에서 논란이 되기 직전까지도 안 회장이 회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라며 “중운위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은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는 책임을 분산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B는 “프로젝트 과정에서 안 회장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ALC와 직접적인 연락을 하지 못했고, 안 전 회장은 언제나 혼자 출장을 가고 회사와 접촉을 했다”라고 말했다. 두 간부 모두, 설문조사의 상당 부분이 원총 내부에서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최종용역비 사용실적보고서 중 '세부항목 부분'= 실무기간을 초과해 과다 책정된 임금, 행방을 알 수 없는 해외사례 조사와 영어자문비 등이 '인건비' 항목으로 기재되어 있다.

실무자 A씨 “회장 거쳐 단 2차례 연락”

간부 A는 이번 프로젝트의 실무자였다. 구체적으로 100여 개에 달하는 문항을 혼자 만들었고 또한 이를 영어로 번역했다고 한다. 문항들의 초안은 5월 초에 완성되어 있었지만, 당시 혁신비상위원회(이하 혁신위)가 출범함에 따라 원총은 일주일에 세 번 있는 혁신위 회의 사전 준비에 총력을 쏟았다. 자연스레 연구환경 실태조사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본지는 A씨와의 통화에서 “문항의 작성, 번역, 수정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ALC와 직접적인 연락을 한 적이 없고 회사 이름도 몰랐다”라는 진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즉, 5월부터 이듬해 1월, 9개월의 계약기간 동안 용역을 발주한 실무자와 수주회사 간의 대면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A는 ALC로부터 10월 16일 처음으로 문항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지만, 단순히 문항의 순서배치에 관한 것이었고 이 역시 안 전 회장을 거쳐서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실적보고서상의 전문가, 그는 누구인가?

최종용역비 사용실적보고서 5쪽의 ‘세부항목’을 보면 간부 A의 증언은 더욱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A는 해외사례 조사 및 영어자문을 하고 320만 원을 받아간 것으로 기록된 박(Park)아무개 씨의 존재를 실무자인 자신조차 몰랐다고 진술했다. 문항을 만들고 그것을 번역해서 실제 학우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마칠 때까지 A는 단 한 차례도 해외사례에 대한 조사, 번역된 영어에 대한 자문을 회사로부터 전달받은 적이 없고, 이에 대해 안 전 회장으로부터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취재진은 혹여나 ‘안 회장이 독자적으로 자문을 받고 A가 모르는 사이에 설문에 반영해서 A가 간과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고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정황은 찾을 수 없었다.

문항작성과정, 일체의 자문 받지 못했다

‘세부항목’ 중 직접경비 - ‘온라인 설문조사'로 책정된 50만 원의 수령자는 전 원총 부회장 박지훈 학우다.

안 전 회장에 따르면 “회사와의 연락 도중 Google Docs에 문항들을 입력하고 설문조사 시스템을 관리하는 작업을 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들었고, 이에 외부인이 맡아서 문항들을 입력하기보다는 내부의 사람이 하는 것이 보안상 나을 것으로 판단해 당시 옆에 있던 박 부회장에게 맡긴 것이다”라고 했다.

추가적인 진술에서 간부 A는 “박 전 부회장이 Google Docs에 등록을 하려고 내가 가지고 있는 최종 문항자료를 달라고 부탁했고, 이를 그대로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라며 “ALC로부터는 설문지 자문, 영어자문 등 용역비사용실적보고서에 마치 제공된 것처럼 쓰인 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얼마큼 지급했고, 얼마큼 돌려받았나

애당초 책정된 3,000만 원과 달리 설문조사 후 ALC에서는 원총에 사용하지 않은 직접경비 480만 원 정도를 반환금으로 돌려줬다. 또한, 진상위의 활동이 종료된 후 ALC에서는 원총에 300만 원 정도의 추가금을 반환했다.

안 전 회장은 이에 대해 “내가 ALC에 전화해서 도의적 책임을 물었다. 만약 과도하게 징수된 내역이 있으면 반환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다그쳤고 이에 ALC에서 원총에 추가로 입금을 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결과적으로 2,220만 원의 지출이 있었던 것이다”라며 다른 회사의 견적과 큰 차이가 없음을 강조했다.

그런데, 취재진이 다른 자료를 분석한 결과 타 회사의 견적과 큰 차이가 없다는 해명도 여전히 의문점이 남음을 발견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안 전 회장은 “ALC는 나와 10차례에 걸쳐 회의하며 스토리라인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ALC와의 첫 협업은 8월 초에 시작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8월 초에 업무를 시작했음에도 ALC가 책임연구원의 임금을 월 80만 원씩 9달 간 지급한 점, 5~7월에는 회사가 아무 업무도 안 했는데 임금 책정에 대해 ALC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점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안 전 회장은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할말이 없다”라고 답했다.

ALC경제정책분석연구소에서 책정한 용역비사용계획서= 회사는 안 전 회장과 8월 초 첫 공식회의를 가졌다. 하지만 위 자료에서 회사는 5,6,7월분의 임금 또한 책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3,000만 원의 보고서… 내실은?

원총이 연구환경실태조사를 외주업체에게 발주한 가장 큰 이유는 안 전 회장이 ARA에 밝힌 대로 심층적 통계분석과 설문항목에 대한 전문업체의 보증을 바탕으로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진상위는 우리 학교 경영대학원 교수에게 통계적 분석 기법이 적용된 부분을 평가해줄 것을 의뢰했고, 해당 교수는 “통계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단독으로 몇 시간만 주어지면 완수할 수 있다”라고 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안 전 회장은 학생들에게 배포되는 배포판이 아닌 업체의 전체 작업내용을 보면 해당 교수의 의견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안 전 회장은 “업체는 스토리라인을 짜는 등 세부적 컨설팅을 해주었고 원총은 그에 필요한 큰 그림을 그렸다”라며, 업체와 연락한 유일한 원총 간부로서 업체의 세부 업적에 대한 평가는 피했다.

진상위, ‘애정남’ 역할 아쉬웠다

진상위는 지난달 9일 중운위가 끝나고 발족했다. 애당초 중운위원들이 그 권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날 안 전 회장이 “모든 자료를 공개할 용의가 있다”라고 분명히 밝혔고 이에 따라 법적 강제성을 띠지 않는 조사위원회일지라도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조사는 난항을 겪게 된다. 안 학우와 ALC는 통장내역 공개를 거부했고, 설문조사에 참여한 4명의 전문가와 10명의 아르바이트생의 연락처를 공개하라는 진상위의 요구에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지속적인 거절 의사를 밝혔다. 결국, 진상위는 가장 논란이 되었던 금품 관련 의혹에 대해 정황만을 조사할 수 있었다. 11일의 조사기간을 거친 진상위는 지난달 20일 ARA를 통해 진상위 최종보고서와 결론을 게시했지만, 명쾌한 해명이 결여된 최종결론에 학우들은 진상위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본지는 지난 11일, 진상위원 중 한 명을 만나 이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애초에 진상위의 인사가 충분한 검토 끝에 이루어지지 못한 부분이 있다. 각 선본에서 한 명씩 참석했고 박찬, 박승 후보의 편이 아니냐는 오해를 샀던 진상원 학우가 위원장을 맡았다. 또한, 당시 드러난 증거자료들이 안 전 회장에게 불리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자료들의 흐름을 따라 조사하는 것은 자칫 편향적인 조사를 한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었다”라며 “안 전 회장의 잘못이 있다고 가정한 채 조사하는 것보다는 무죄라고 가정한 채, 정황보다는 사실에 따라 판단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생각했다”라고 모호한 결론을 내린 경위를 설명했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