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카이스트문학상] 심사평/ 수필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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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카이스트문학상] 심사평/ 수필 부문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12.01.1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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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글을 기다립니다

수필 부문에 9명이 작품을 보냈고 한 사람이 평론 부문에 작품을 보냈다. 우리 카이스트 구성원을 생각하면 매우 적은 숫자이다. 아직도 여전히 글쓰기는 학생들에게 멀리 있는 것일까. 그러나 또 다른 과학 글쓰기 대회라든지 논술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쓰는 것을 보면 글쓰기에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고 또 곧잘 쓰고 있기도 하다. 이곳이 카이스트 ‘문학상’인지라 평소에 글쓰기에 흥미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훈련을 해온 사람이 쓴 좀 더 높은 수준의 글만이 응모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싶다. 물론 시나 소설 부문, 평론 부문은 좀 더 많은 수련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열정과 노력뿐만 아니라 장르의 속성에 대한 이해와 구상, 다듬기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기본적으로 이공계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는 카이스트에서 도전하기 쉽지 않은 분야일 것이다.

그러나 수필이라면 좀 이야기가 다르다. 말 그대로 특정 형식의 완성도를 위한 가공이나 특별한 수련 과정이 없어도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난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는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수필 부문에 작품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우선 평론분야에 응모한 정승원의 경우는 평소에 떠오르는 생각을 간단하게 메모한 수준이어서 아직 평론이라고 할 수 없었다. 어떤 독자를 향해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즉 글의 목적과 독자 대상을 명확히 한 뒤 글을 쓰기를 부탁드린다.

수필 부문 응모작 중에서 자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그냥 추상적인 주장을 나열했거나 구성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 초점이 분명하지 않은 글을 제외하고 나니, 박지은의 [엄마와 목욕]과 김민혜의 [엄마의 방석]이 눈에 띄었다. 목욕이나 방석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서 그것의 의미를 깨달음, 엄마를 그리워함이라고 하는 익숙한 소재와 무난한 전개 방식을 취한 깔끔한 수필이었다. 다만 너무 익숙하고 무난해서 독자의 눈길을 잡아두기에는 부족했다.

우원균의 [보통의 나날들], 도준엽의 [고독예찬], 이석민의 [할미탕구야] 세 편은 각각 독자가 한번 더 읽어보고 싶게 하는 개성이 있었다. 우원균의 경우는 헤어짐으로 끝난 사랑에 대한 반추를 10개의 장으로 나누어 썼다. 매 감정의 결에 맞는 소재를 찾고 그 소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솜씨가 두드러졌다. 그런데 한 편의 수필로 읽기에는 각 장의 독립성이 너무 강했다. 도준엽의 글은 통상 공존과 공생의 장이라고 쉽게 말해 버리는 숲에 대해, 그런 상투적인 수식어의 이면을 드러내 보여 인상적이었다. 생각의 전개에 짜임새가 있고 특히 단어와 문장을 부리는 솜씨는 평소에 글을 쓰면서 갈고 닦은 내공이 보였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시 부문에도 상당한 수준의 작품을 응모하였고 심사위원 모두가 수필보다는 시 부문의 응모작이 완성도가 높다고 판단하여 각각 시 부문의 가작과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래서 수필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전문적인 - 카이스트 학생들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씌어진 - 이석민의 글을 당선작으로 올리기로 했다.

이석민의 글은 할머니에게 응석을 부리던 손자가 이제는 할머니의 응석을 받아주는 생활을 소재로 했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었고 할머니의 얼마 남지 않았을 삶을 서글프게 인식하면서도 비장하거나 감상에 빠뜨리지 않고 경쾌하게 처리한 것을 미덕으로 샀다.

이상경/ 인문사회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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