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카이스트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 잘가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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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카이스트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 잘가요, 아저씨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12.01.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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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아저씨

서예윤(생명과학과 10)

 

 

1.


 육호선 상월곡역에 내려 눈길을 지나 콘크리트 건물의 노란 문 안으로 들어서면,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그곳의 시간과 공간 자체는 모두 이 지구의 것이었지만, 우리 중 누구도 노란 문 안쪽 세상이 저 바깥과 똑같은 차원의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곳엔 우리들뿐이었지만 그 우리들마저도 매순간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생을 살았기 때문에 각자가 누구다 하는 것이 딱히 중요한 건 아니었다.

 노란 문은 언제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잊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2011년 1월, 3주 동안 반짝하고 일어났다 결국 사라진 마법이었다.

 


2.


 갓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역시 갓 스물 한 살이 된 내가 해볼 수 있는 건 공부 말고도 많았다. 두 달이나 되는 빌어먹을 여름방학을 너무도 무료하게 보낸 나는, 겨울방학만큼은 그래도 철판에 붙은 호떡이 아니라 인간처럼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대학교의 계절학기 과목들을 뒤져보았다. 수많은 지루한 강의들 사이에 국내 최고의 예술학교라 불리는 H대의 <기초연기1>이 눈에 띄었다. 수강평을 읽어보니 그 예술학교에 다니는 신기한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거나 하는 말들이 많았다. 그 무렵 나는 무척 따분해 하고 있었고 신선함이 필요했다. 이거다 싶었다. 나는 무척 기대하며 그 수업을 신청했다. 방학이 시작된 후 하루하루 겨울학기가 개강하기만을 기다렸다.
 첫 수업을 받는 날, 상월곡역에서 내려 편의점을 끼고 안쪽으로 들어서자 허름한 골목길이 나왔다. 골목길 한쪽으로 늘어선 가게들은 대부분 무척 낡아있었고, '슈퍼'나 '마켓'이 아닌 '상회'에선 소주를 내다팔고 있었다. 그것도 팔 백 원 특가에. 그래, 예술을 하려면 소주가 필요하겠지. 뭐든 들이 부어야 뭔가 나오지 않겠어? 터덜터덜, 나는 허름한 H대 정문으로 들어섰다.
 학교 안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도 한 명 없고 아주 조용했다. 우뚝 서 있는 노출콘크리트 건물들만이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소복이 쌓여 있는 눈들이 그나마 떠다니는 소리들마저 흡수하는 걸까. 나는 그 하얀 방음판들을 꾹꾹 눌러 밟으며 내가 수업을 받을 연극원 건물을 찾아다녔다. 여러 건물들을 한참 헤매고 다닌 후에야 연극원 건물 표지판을 찾을 수 있었다. 연극원은 정문에서 가장 멀었고, 학교 안 깊숙이 숨겨져 있었으며 학교 안 다른 건물들처럼 회색 노출콘크리트로 지어져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눈을 마구 밟으며 연극원 앞으로 뛰어갔다. 창백한 빛깔의 연극원 문 앞에는, 다들 슈퍼가 된 마당에 홀로 남은 아까 그 상회처럼, 어떤 아저씨가 외롭게 담배를 물고 서 있었다.
 <남자>라기 보단, <오빠>라기 보단, 확실히 <아저씨>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건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칙칙한 카키색의 외투나 신경 안 쓴 듯 덥수룩한 머리모양보다는 그 사람의 표정 때문이었다. 눈빛은 흐리멍덩했고 입은 자꾸만 담배를 쫓아가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이걸 빨지 않으면 주, 죽을 것 같다는 듯이. 저기요 아저씨, 오다 상회가 하나 있던데 거기서 소주라도 한 병 사다드릴까요, 하고 묻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 아저씨는 어느새 필터만 남을 정도로 짧아진 담배를 아쉽다는 듯이 길게 빨다가 허리를 깊게 굽히며 기침을 했다. 콜록, 콜록, 콜록, 이 아니라 웩, 웩, 웩, 하는 것 같은 기침이었다. 마치 토라도 하려는 것처럼.
 나는 그 옆을 조용히 지나 연극원 101호 노란 문 앞에 섰다. 연극원의 복도 벽도 회색 콘크리트였는데, 그 회색 콘크리트와 노란 철제문이 제법 잘 어울렸다. 나는 101호의 손잡이를 잡고 문을 힘껏 열었다. 문은 무거웠다. 무거운 문이 열리며, 그 틈새로 밝은 전등 빛이 흘러나왔다. 문 색깔보다 더 찬란한 노란 빛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며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그 아저씨가 문 안으로 같이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놀라 아저씨를 봤다. 칙칙한 카키색 외투와 덥수룩한 머리카락은 여전했지만 표정은 더 이상 <아저씨>가 아니었다. 눈이, 빛나고 있었다.

 수업을 받는 곳은 강의실이라기보다는 연습실 같은 곳이었다. 사방이 거울이었고 신발을 벗고 들어갔으며 그냥 누워서 굴러다녀도 됐다. 첫 수업은, 강의실 안을 이리저리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에게 교수님의 지시에 따라 반갑게 인사를 하거나, 죽일 듯이 노려보거나, 너무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거나, 대스타를 만난 것처럼 열광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나를 포함한 수강생 대부분이 연기를 처음 해보는 사람들이라 많이 어색해했다. 대체 처음 보는 저 못생긴 인간을 어떻게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쳐다보라는 거야, 다들 진땀을 빼고 있었다. 단 한 사람만 빼면. 기침하던 그 아저씨만은, 소심하게 생겨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떤 남자 수강생을 마치 연인 보듯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설마 저 인간 진심은 아니겠지, 했지만 곧 그 의심은 깨졌다. 돌아다니다 마주치는 사람에게 이번엔 미친 듯 화를 내세요! 라는 교수님의 지시를 들은 아저씨가 이번엔 그 소심해 보이는 남자에게 꺼지라며 심각하게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꺼져! 꺼지란 말야! 이제 너 같은 새끼는 필요 없어! 교수님은 미소 지었고 소심한 남자는 거의 울 지경이었고 아저씨는 여전히 진심 같아 보였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그렇게 기본적인 연기연습으로 두 시간 반을 보내고 우리는 교수님과 함께 둥글게 앉았다. 이제 첫 수업을 마무리하며 자기소개를 해보자고 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구애도 하고 욕도 하고 온갖 싸이코 짓은 다 하고 났는데 이제 와서 자기소개라니. 허허 이런 제기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모두들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백지 하나씩을 나눠주었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이렇게 해 봅시다. 이 백지를 찢어도 되고 접어도 되고 어떻게 변형시켜도 좋아요. 이걸로 자기 자신을 표현해보고, 돌아가면서 그렇게 만든 이유를 말해 봐요.
 적막 속에 몇 분이 흘렀다. 사람들은 각자 종이를 찢기도 하고 접기도 했다. 나도 생각을 한 후에 그 종이에 구멍 열 개를 뚫은 뒤 내 열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종이를 찢지도 접지도 않는 사람은 아저씨뿐이었다. 아저씨는 가만히 앉아 종이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수강생들이 얼추 준비를 끝내자 한 명씩 자신을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눈웃음이 정겨운 무대미술과 언니는 사각형 백지의 모서리를 다 둥글게 접은 것을 보여주며 자신은 둥글둥글한 사람이라고 했다. 과연 그럴 것 같았다. 건축과에 다닌다는 언니는 종이를 한 번 반으로 접어 A자 모양으로 만들고는 바닥에 세워두고 이건 움집인데 움집은 인류 최초의 건축물이라며 자신은 건축가가 꿈이니까 이걸 만들었다고 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백지에 끼워 넣은 열 손가락을 들어 보여주며 말했다. 저는 지금 이렇게 묶여있는 상태예요. 그런데, 하고 손가락을 움직여 종이를 조금씩 찢어냈다. 열심히 움직이자 손가락을 감싸고 있던 구멍들이 점점 넓어졌다. 조금 더 찢어내자 결국 종이는 너덜너덜해졌고 결국 훌쩍, 내 손에서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저를 묶고 있는 것을 부수고 나오고 싶어요.

 그 순간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아저씨는 급히 눈을 피했다.

 마지막은 아저씨 차례였다. 아무 변형도 가하지 않은 백지를 보여주며 “저는 백지같이 순수한 인간입니다”라고 하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은 됐다. 순수한 인간인데 오만상을 쓰고 담배를 그렇게 피나요, 질문할 준비도 되어있었다. 그렇지만 아저씨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저씨는 마치 내가 널 먹어버리겠다는 듯이 종이를 바라보더니,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비장하게 종이를 들었다. 그리고 귀퉁이를 찢어 그 종잇조각을 입에 넣었다.
 아저씨는 입에 넣은 종잇조각을 오물오물 씹더니, 삼키고, 다시 귀퉁이를 찢고,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고, 삼키고, 귀퉁이를 찢고,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고, 삼켰다. 그걸 백지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반복했다. 마지막 조각을 삼키자 아저씨는 나지막이 말했다.

 “저는 저를 먹어버리고 싶습니다. 저는 저를 없애고 싶어요. 저는 저를... 잊어버리고 싶어요. 잠시만이라도.”

 


3.

 3주 동안 매일 노란 문 안에서 우리가 한 것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었다. 짝을 짓거나 그룹을 나눈다. 상황을 대충 정한다. 짝이나 그룹끼리 연기를 한다. 거의 대부분은 즉흥극이었다. 처음 시작한 사람이 상황을 빠르게 생각해서 상대의 이름을 어떤 뉘앙스를 넣어서 부르면(예를 들어 다급한 상황이라고 설정하면 그에 맞는 톤으로 신영아!!! 하고 부른다), 상대가 그 뉘앙스에서 상황을 짐작해서 그에 걸 맞는 대사를 치는 식이다. 그렇게 간단한 상황극을 하는 게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나는 마음대로 성격을 바꿨고 성별도 바꿨다. 습관과 나이도 바꿨다. 방금까지 내 연인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우리 아버지가 되어버렸고 나는 일곱 살이었다가 여든이 되었다가 했다. 갓 스물 한 살의 조신영은 노란 문 안쪽의 세상에는 없었다. 만약 나를 옥죄던 것이 나 자신이었다면 노란 문 안쪽에서 나는 그것을 타파하는 데 성공한 셈이었다. 다들 자신이 생각하던, 혹은 깨부수고 싶던 어떤 것이 성취되거나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던지 참 열심히도 했다.
 나는 아저씨와 자주 짝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기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도 조금씩 능숙하게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지만 아저씨는 정말이지 배우 같았다. 그런데 아저씨가 연기하는 사람들은 다들 어딘가 좀 미친놈 같은 구석이 있었다. 울어도 미친놈처럼 울고 웃어도 실성한 것처럼 웃었다. 엉뚱한 대사나 행동도 많이 했다. 내가 아저씨에게 총을 겨누는 시늉을 하며 빵! 하고 쏘는데도 아저씨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톱 밑의 때를 빼는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아저씨와 같이 즉흥극을 하면 언제나 컬트가 됐다.
 그런데 나는 그게 좋았다. 내가 야! 하면 쟤가 왜! 하는 식의 연기는 재미없었다. 내가 야! 하면 아저씨가 아멘.. 하는 게 재미있었고 내가 아저씨에게 소리를 지르면 아저씨가 아무 말 없이 탭댄스를 추는 연기가 재밌었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고 아저씨는 더 빠르게 탭댄스를 췄다. 신기한 것은 서로 아무 개연성 없는 행동들이 쭉 이어지는데도 나와 아저씨의 즉흥극을 보고 나면 모두가 멍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즉흥으로 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블랙코미디를 만들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행동의 연속보다는 모두의 얼을 빠지게 하는 즉흥을 할 수 있다는 걸로 만족했다. 사전에 약속 없이 계속해서 미친 것을 생산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언제나 상대방의 반응에 맞게, 예의와 규범에 적합하게 행동해야만 했던 답답한 틀을 깨는 것 같아 마냥 즐거웠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가 신영아 왠일이야~ 하면 애매하게 웃으며 보고싶었어~ 라고 말하지 않고 이 새끼가 갑자기? 미쳤냐? 라고 받아쳐도 되는 자유로움 같은 걸 느꼈다. 나는 아저씨와의 연기로부터 내 행동의 새로운 양식을 볼 수 있었다. 그게 나에게는 새로운 세계였고 늘 경이로웠다. 나를 제약하지 않았고 자유롭게 했다.
 무슨 싸구려 예술영화 찍냐, 하며 제대로 된 연기가 아니라고 욕할 수도 없는 게 아저씨는 진심으로 연기를 하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다. 연인이 죽은 상황을 연기할 때에는 너무 심하게 울다가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도 감정을 쉽사리 추스르질 못했다. 그만큼 조각조각의 연기들은 정말 훌륭했다. 단지 그 연기들이 모이면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인데, 그건 아무래도 아저씨가 굉장히 특이한 놈이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했다.
 나는 아저씨가 그렇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모든 걸 쏟아 부으며 연기하는 게, 아저씨가 연기를 잘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연기를 잘 하기 때문에 몰입이 쉽게 되는 것이라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아저씨가 자기 입으로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나를 먹어버리고 싶다고. 잠시만이라도 잊어버리고 싶다고. 아저씨는 연기를 하며 끊임없이 자아를 자기 머리 밖으로 몰아낸 것이었다. 아예 뇌에서 ‘자기’라는 것을 지워버리려 그렇게 애를 쓰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웃어도 그냥 웃으면 안 되고 자아가 무너지도록 웃어야 하고, 사랑한다고 고백을 해도 자신의 한 부분이 불 타 없어지도록 거세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걸 깨닫자 아저씨를 처음 본 날 담배꽁초를 길게 빨다 토할 듯 기침하던 아저씨의 모습이 생각났다. 참, 애처롭게 애를 쓰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삽 한 자루로 이놈의 지구 하나를 다 거덜 내겠다며 덤벼드는 인간처럼 말이다. 그 모습이 너무 외로워보였다. 안쓰러웠다. 그리고 아저씨가 왜 그렇게 자신을 삼켜가며 연기를 해댔는지 알게 된 건 개강 마지막 주에 있었던 수강생끼리의 술자리에서였다.

 


4.


 “우리 연기만 하지 말고 술도 좀 먹어봅시다!”

 평소에도 자주 술이 당기는 모양이던 영화과 남자가 말했다. 다들 등교할 때 소주가 팔 백 원이라는 광고를 보고 다녀서 그런지 흔쾌히 좋다고들 했다. 나는, 말하자면 술은 마시든 안마시든 상관없었지만 혹시 아저씨도 오지 않을까 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이 보는 연극관람이 끝난 후로 정해졌다.
 계절 학기를 들으며 같이 관람하는 마지막 연극으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보고 난 후 우리는 신촌의 술집으로 발을 돌렸다. 아저씨는 으레 그 아저씨 같은 표정을 하고는 담배를 들고 조용히 따라왔다. 우리는 적당히 허름한, 그래서 반드시 소주를 먹어야만 할 것 같은 술집으로 들어갔다. 주인 아주머니가 술은 뭘로 줄까요? 라고 묻자 영화과 남자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에 복종하듯 소..소주 여섯 병이요 라고 대답했고, 아주머니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방으로 돌아갔다. 예술가 따윈 살지 않는 신촌의 술집이라 그런지, 소주는 학교 앞보다 세 배 이상 비쌌다.
 일단 술이 좀 들어가자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다들 이때까지 살아온 얘기들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거의가 대학생들이라 그 한숨은 별로 거칠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깊이가 없었다. 깊이야 어떻든 누구나 살기 힘든 세상인 거겠지, 생각하며 나도 작게 숨을 내뱉었다. 탁자와 술잔 위에 우리 한숨이 고루 섞여 이상한 냄새가 났다. 숨을 죽이고 있는 건 아저씨뿐이었다. 아저씨는 말없이 소주만 마시고 있었다. 돌아가며 신세한탄이 끝나니 사람들은 돌아가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둥글둥글한 무대미술과 언니가 말했다. 난 봄 학기 휴학하고 혼자 티벳에 가볼까 하는데. 한 4개월 정도. 모두가 환호하며 언니의 용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왜? 진짜 혼자? 대단하다. 언니는 으쓱했다. 누군가 용기 있게 로망에 뛰어드는 일에 우리는 쾌감을 느꼈다. 휴학하고 혼자 티벳에 4개월이나 머무는 짓을 우리 대부분은 못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짓을 모두가 어느 정도는 꿈꾸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기소개 시간에 종이를 찢으며 자유롭고 싶다고 말하던 나처럼.
 이야기가 깊어지는 동안 아저씨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적당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나는 아저씨의 얘기가 가장 듣고 싶었기 때문에 몹시 실망하고 있었다. 중간에 나와 같은 타 학교 남자가 아저씨에게 형님은 무슨 일 하세요? 하자 아저씨가 아 저는 여기 학교 조형예술과 다닙니다, 뭐 말하자면 미술과예요, 하고 다시 그 남자가 와 그럼 무슨 미술 하시는데요? 하자 뭐, 사진작업도 하고 동양화도 하고 퍼포먼스도 하고 이것저것요, 한 게 다였다.
 밤이 깊어지고, 우리의 위장엔 술이 차오르고, 사람들이 연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 무렵, 조금씩 부스럭대던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밖으로 향했다. 담배 피러 가나. 나는 아저씨의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나는, 아저씨의 얘기가 정말 궁금했다. 왜 그렇게 애쓰며 연기를 하는지. 아저씨의 한숨은 우리들의 그것처럼 가볍진 않을 것 같았다. 너무 묵직하기 때문에 몰아쉬기보다는 그저 꿀꺽 삼키는 거라고, 담배를 통해서만 밖으로 뱉을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저씨를 따라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가 문 옆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빨고 있었다. 말보로 빨강, 꼭 지 같은 것만 펴요.
 나는 아저씨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저씨 저도 한 대만 주세요. 새파란 여자애가 담배를 청하자 아저씨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적거리더니 내게도 담배를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아저씬 왜 그렇게 몰입해서 연기를 하세요?”

 침묵을 뚫고 내가 물었다. 아저씨는 한참동안이나 발밑의 보도블록을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낮은 목소리였다.

 “그것보단 왜 내가 연기할 때마다 자꾸 미치는지 묻고 싶은 거 맞죠?”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으로, 아저씨는 미친놈이 아니라 정상인처럼 웃었다. 심지어 눈웃음까지 지을 수 있는 인간이구나. 아니 저런 인간이 어쩌다가. 다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려는 찰나에 아저씨가 말했다.

 “나를 자꾸 잊으려고 해요. 없애려고 해요. 그리고 무아지경으로 연기해야만 그게 가능하니까. 내가 그림을 그리는 놈이라서 나를 없애는 훈련을 한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딴 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림은 내가 김진규든 김진규가 아니든 그릴 수 있는 거니까요. 그 문제가 아니에요.”

 아저씨는, 다시 대사를 치고 있었다. 단지, 이번엔 미친놈이 아니라 아저씨 자신의 대사였다.

 “나는 어렸을 때 결혼을 했어요. 신영씨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았을 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그게 당연한 건줄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다 반대해도.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고, 떨어지기 싫으면 결혼을 하는 거 말이죠.
 결혼할 당시에 나는 사회교육과 학생이었어요. 아내도 대학생이었고. 결혼할 때 부모님께 죽을 때까지 같이 살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결혼허락을 받아냈어요. 결혼을 한 후에도 내가 임용고사를 보고 선생님이 될 때까지는 생활비를 다 받았죠.
 나는 선생님을 하고 아내는 금속공예를 해서 가게도 내고 이런저런 곳에 납품도 해서 부모님 도움 없이도 그럭저럭 살았어요. 애초부터 아이는 낳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돈이 부족하지도 않았죠. 가끔, 내 마음속에서 화딱화딱 일어나는 불길 같은 것만 빼면, 둘이서 재미나게 잘 살았어요. 근데, 그 불길이, 그 불길이 문제였어요.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처음엔 그게 그냥 남들보다 일찍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생기는 답답증인 줄 알았죠. 그래서 계속 무시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학교에 제대로 자리 잡으면서 더 심해졌어요. 가슴에 불이 난 것 같고. 한 자리에 십분 이상을 못 앉아있었어요. 수업을 할 때도 너무 심하게 돌아다니는 통에 아이들이 정신없다면서 제발 좀 교탁 앞에 서있으라고 얘길 할 정도였으니까. 그 때부터 욕도 많이 하고 누가 버르장머리 없는 말 하면 잘 못 참고 많이 때리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아끼던 제자 하나가 같이 전시회에 가자길래 그러마고 했어요. 그 놈이 미술 하는 놈이었거든요. 샤갈전이었어요. 색채의 마술사 어쩌고 해서, 시립미술관에서 한 전시회였지요. 살면서 미술관을 제대로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내가 그 날 미술관에 여덟 시간을 있었어요. 상상이 가세요? 여덟 시간을? 들어가서 처음으로 그림과 제대로 마주하는데, 죽고 싶거나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뛰쳐나가 화장실에 가서, 나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들어왔어요. 그 때부턴 마음을 다잡고, 울음을 참으면서 전투하는 기분으로 그림을 봤어요. 감동이 크면 싸움이 된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천천히 그림을 다 보고 마지막으로 다시 내려와서 <도시 위에서>를 보고 있는데, 그 오랜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주던 제자 녀석이 나를 막 흔들었어요. 깜짝 놀라 그 놈을 보니 그 놈이 더 놀라고 있더라구요. 제가 너무 울었던 거예요... 그게 제가 처음 그림과 만난 날이었어요.
 가끔씩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삼십 다 된 나이에 처음 무용을 시작한 홍신자 같은 사람도 있고. 그냥 그렇게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무언가 사명을 가지고 말이에요. 그렇게 샤갈전에서 전투를 치르고 다음 날 학교에 돌아가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제자 녀석이 와서 큰 봉지를 하나 주고 가더라구요. 열어 보니 캔버스랑 온갖 종류의 붓이랑 유화물감 세트, 오일 같은 것이 들어 있어요. 그림을 한 번 그려보라고. 그 날 밤 집엘 일부러 안 들어갔죠. 학교 미술실에 들어앉아서 뭣도 모르고 붓을 기름에 적셨다 물감을 발랐다 했어요. 그래놓고 뭔지도 모를 이상한 것들을 그려댔는데, 붓이 캔버스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느낌이었나. 미술실 창문으로 달빛이 스며들어와서 캔버스 근처에 서리던 그 상황이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 밤 나는 또 엄청 울었어요. 아니 요즘은 그렇게 안 울어요. 그때가 과도기였던 것 같아요. 막 붓질을 하면서 울고. 하여간 그렇게 밤을 꼬박 새고 다음 날 퉁퉁 부은 눈으로 애들을 가르쳤어요. 방학이 될 때까지 이틀에 한 번씩 그렇게 밤을 새면서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렸어요. 별로 친하지도 않던 미술교사한테 유화의 기본적인 것들을 물어가면서.
 그리고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화실에 다니면서 미친놈처럼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그 불꽃 같은 게 자꾸 폭발하더라구요. 이십대 중반부터 생활인이 되느라고 모아뒀던 에너지가 거의 서른이 다 돼서 그림으로 터진 건가 하는 생각을 해요. 많이 고민을 하다 직장을 때려쳤어요. 그리고 그림을 그리다 여기 학교 시험을 봤고. 한 번에 붙었어요.”

 아저씨는 긴 이야기를 단숨에 하고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저씨가 뱉는 연기가 훅 풍겨서 괜히 코가 찡했다. 아저씨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 건 한 대를 다 피우고 나서였다.

 “아내도 처음엔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도 숨기지 않았겠죠. 그런데, 알죠, 수입이 줄고 힘든 생활이 계속되면 언젠가 그걸 참을 수 없게 되는 날이 와요. 아무리 참을성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시간이 온단 얘기죠. 역시 그랬어요.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하고, 아내는 살아야 하고. 그때쯤 또 아내의 금속공예품도 잘 팔리질 않아서 더 힘들었어요. 예술시장 같은 데도 나가고 발품을 많이 팔았는데도요. 아내로서는 화가 났겠죠. 이혼 얘기가 오가고,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 아껴오던 나쁜 말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웃기는 상황이 됐고 아내는 여전히 힘들어하고 나는 그냥 그림만 그렸어요. 만약 아이가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미술을 밀고 나가진 못했을 거예요.
 집에서도 그렇고 갑자기 미술한답시고 말썽 부리는 아들 사위한테 지금도 화나 계신 부모님이랑 시부모님들도 그렇고, 또 미술이란 것이 매번 내 한계에 부딪히는 일이다 보니까. 기침을 해도 토하는 상황이 되고 한숨을 쉬어도 호흡이 멎는 사람이 된 거예요. 꿈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은 아무리 작업을 열심히 해도 오히려 뇌리에 더 각인될 뿐이거든요. 나라는 놈이 이렇게 좆같은 놈이었는지 자꾸만 되돌아보게 되고 그러면 죽고 싶어지니까. 그런데 붓을 부러트리면 그땐 또 마음속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니까. 탈출구가 필요했어요. 그 때 그 A4용지를 먹어치우던 것처럼 나를 먹어치워야 했어요.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연기를 그렇게 열심히 한 거죠.”

 아저씨가 잠깐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연기를 하다보니까. 자꾸만 다른 사람이 되다보니까 이게... 이게 안 되겠더라구요. 학교 밖을 나가서도 자꾸 연기를 하게 돼요. 자꾸 김진규가 아니고 이상병으로 서선생으로 살려고 해요. 그런데 생각해봐요. 밀린 집세 받으러 온 집주인 앞에서 경찰관 연기를 하면, 진짜 경찰이 와서 내 손을 붙들게 되죠. 그저 하얗게 떠 있는 캔버스가 내 연인인 양 키스를 하고 애무를 해도 캔버스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에요. 아무 그림도 그려지지 않아요. 이젠 지쳤다고, 이혼하자는 아내의 말을 듣고 도둑 역할을 하며 담장을 넘으려고 하면 아내는 망연자실해서 더 크게 울어버리죠.
 노란 문 밖의 세상, 그 앞에서 연기를 하면, 그 땐 배우가 아니라 진짜로 미친놈이 돼요. 내일이... 마지막 발표니까... 내가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내일이 마지막이에요. 그 후에도 계속 연기를 한다면 보나마나 나는 정신병원이나 감옥으로 가게 되겠죠. 어쨌든 나는... 나를 피할 수 없으니까. 도피는 이제 끝났어요. 내일 내 모든 걸... 불태울 거예요.”

 아저씨는 거기까지 말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속이 안 좋은 듯 배를 잡더니 이내 바닥으로 쓴 물을 조금 토해냈다. 안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무 말도 안하며 소주를 많이도 마신 모양이었다. 아저씨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조금 떨더니 침과 위액과 알콜이 섞여있을 것 같은 물을 계속 뱉었다. 나는 옆에 앉아 아저씨의 등을 쓸어주었다. 웩, 마지막으로 토해낸 뒤 아저씨는 고개를 들어 풀린 눈으로 주위 가게들의 네온사인을 쳐다보았다.
 아저씨가 쏟아낸 얘기는 확실히 보통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아저씨의 연기만큼 아저씨의 인생 역시 극단적이라고 느꼈다. 하여간에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생각하면서도 어찌됐든 나는 그의 등을 쓸어주었다. 어디로든 빠르게 튀어 오르는 아저씨의 인생에 지지표를 던졌던 것이다.
 아저씨가 갑자기 일어섰다. 그러고는 역시나, 말없이, 네온사인이 쏟아지는 거리로 똑바로 걸어 들어갔다. 불빛들이 아저씨에게로 돌진해 머리카락을 온통 붉게 만들어버렸다. 아저씨는 내게 왜 얘기를 털어놓았을까. 나의 무엇이, 아니면 이 상황의 무엇이, 그걸 가능하게 했을까. 나는 수업 첫 날에 백지를 뚫어 찢어버리던 내 모습이 아저씨의 마음을 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흔들리던 눈빛이 결국은 공감이었을 거라고. 하지만 나와 달리 아저씨는 종이를 찢어버리지 않고 결국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갈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을 들어 보니 아저씨는 네온사인의 따가운 공격을 이겨내며 거리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5.


 계절학기의 마지막 과제는 1인극이었다. 각자 자기만의 대본을 준비해서 3분 동안 공연을 하는 거였다. 나는 음악을 하고 싶다며 부모님께 대드는 공부 잘하는 딸의 대사를 준비해갔다. 아빠, 저는 공부가 아니라 음악을 하고 싶은데요. 아, 알았어요. -데요, 라고 안 할게요. 저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아빠. 제가 재능 있는 거 다 아시잖아요. 왜 갑자기 말이 바뀌세요? 전문적으로 할 만큼은 재능이 없다뇨? 아빠가 어떻게 그걸 판단하세요? 제가 만든 곡 들어보기나 하셨어요? 아빠! 들어가지 말고 나랑 얘기를 해요! 잠깐만요!
1인극은 어려웠다. 혼자서 대사를 계속 해야 했으므로 3분이란 시간도 참 길었다. 내가 연기한 여자애는 결심한 듯 부모님께 강하게 이야기하다가 나중엔 음악을 하다 망하면 어쩌나, 두려움도 생기고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의심도 들어서 조금씩 기세를 잃어간다. 그러다 마지막엔, 그래도 음악을 하고 싶은 소망이 너무 강해 몹시 괴로워하며 혼잣말을 한다. 그래도 어떻게 해, 읊조리며 기타를 부둥켜안고 있다가 슬퍼하며 잠에 든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몰입이 잘 됐다. 눈물도 흘리면서 열연을 해서인지 교수님과 다른 수강생들도 공감을 해줬다. 나는 연기를 통해서 중학교 3학년 때의 나를 다시 불러낸 셈이었다. 연기를 하며 나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상태를 넘어 내가 다시 나 자신이 된 거였다. 이십일 년의 내 인생에서는 꽤나 힘든 기억을 불러낸 거긴 했지만 아저씨 같은 사람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그대로 연기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내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연기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있자 아저씨가 내 옆으로 오더니 귀에 소근댔다.

 “그거, 니 얘기지?”

 눈을 닦으며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다시 반짝이는 눈으로 웃어보였다. 나는 애매한 웃음을 흘렸다. 아저씨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내가 광대 연기를 해야 해서 화장이 좀 필요한데 해줄 수 있어? 나는 그러마고 했다.
 아저씨와 함께 교실 뒤쪽으로 가서 립스틱과 아이라이너를 꺼냈다. 광대처럼 보여야 되니까 완전 진하게 해드릴게요. 아저씨는 씨익 웃었다. 이 상황을 재밌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성껏 화장을 해줬다. 눈매가 매서워지자 아저씨 얼굴에선 뭔가 오싹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리고 붉은 립스틱으로 입술을 칠하고, 조커처럼 입가를 웃는 모양으로 슥슥 그려주었다. 웃기면서도 잘 보면 소름끼치는 얼굴이 됐다. 아저씨가 거울을 들여다보더니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어요? 응. 예쁘다.
 예쁘, 지는 않지만요 아저씨. 진짜 광대 같아요. 무서운데, 웃기면서 슬퍼 보여요. 그리고 이건 화장이 아니고 분장이에요.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교수님이 아저씨의 이름을 불렀다. 김진규씨 나와서 1인극 해주세요. 넵, 마치 광대처럼 가볍게 말하며 아저씨는 광대의 얼굴을 하고 앞으로 나갔다.

 아저씨는 우릴 향해 반듯이 서서 연기를 시작했다.

 

6.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서커스단 공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 오늘은 특별히, 아주 특별히 여러분을 위한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여러분! 한 주 동안 기분 나쁜 일들 많으셨죠? 알아요 알아. 주먹 날리고 때려 부수고 싶었던 것들 많으셨잖아요. 이, 여러분을 위한 광대 김진규가 그래서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저씨가 연기를 하면서 자신을 김진규라 칭한 것은 처음이었다.

 “자, 이제 어서 던져들 보세요. 제가, 당신 상사라고 생각하고! 당신을 괴롭히는 깡패라고 생각하고! 당신을 힘들게 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뭐든 던져보라 이겁니다. 계란이든, 양말이든, 돌이든, 칼이든, 뭐든 괜찮습니다. 다 던져요, 다 던져. 다 던져봐! 제가 다 맞아 줄 테니까!”

 수강생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웅성댔다. 이게 연기인지 진짜인지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그중에는 이미 양말을 벗어 돌돌 말아 손에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 뭐해요. 어서 던져보라니까요. 나한테 F준 교수님, 땍땍거리며 못살게 굴던 선배, 그때 나 임신시키고 떠나버린 그 개새끼, 나를 그 새끼라고 생각해요. 다 던져! 던져!”

 사람들이 던질 것을 하나둘씩 들기 시작했다. 양말도 있었고 까먹던 귤도 있었고 열쇠꾸러미나 핸드폰도 있었다. 신문지를 단단하게 뭉친 것을 손에 쥐고 있기도 했다. 처음에 양말을 들고 있던 사람이 아저씨를 향해 힘차게 던졌다. 한 명이 던지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아저씨를 향해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 양말과 귤과 핸드폰이 날아갔다. 신문지와 빗자루가 날아갔다. 아저씨에게로. 그것들은 아저씨의 얼굴과 팔과 몸통을 맞추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저씨는 용감하게 맞아냈다. 오히려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는 문제없어, 아프지도 않아. 던져 봐, 이 새끼들아, 하는 것처럼.

 “그래! 그래! 좋아! 더 던져봐! 다 던져봐! 좋아!”

 사람들은 신이 나서 주위에 보이는 것들은 다 아저씨에게 던져댔다. 아저씨는 묵직한 것들과 날카로운 것들을 다 맞아내며 소리를 계속 질렀다. 더 던져봐! 아저씨 입가에 그려진 웃는 모양이 섬뜩했다. 점점 얼굴은 찌푸리는데 입만은 계속 웃고 있었다. 빨갛게. 그렇지만 입술은 경련하듯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던진 열쇠와 거울이 전속력으로 날아왔다. 아저씨의 눈빛에는 잠시 두려움이 서렸다. 열쇠가 아저씨의 뺨을 스치며 상처를 냈고 거울은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아저씨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열쇠가 스친 볼에서 피가 스몄다. 아파 보였다. 너무 아파 보였다. 아저씨는 고개를 흔들고 눈을 잠시 질끈 감더니 더 크게,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던져!!! 다 던져!!!!!!! 씨발, 다 던지라고!!!”

 아저씨의 포효에 사람들은 움찔 놀랐다. 사람들이 물건을 던지려다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뭐하고 있었던 거지 멍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든 물건들은 더 이상 날아가지 않았다. 결국 폭격이 멈추고, 아저씨 안에 있던 폭탄이 터진 것이다. 어쩌면... 폭죽일지도 몰라. 뭐가 터졌든, 축하해야 되는 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저씨는 가만히 손을 늘어뜨리고 이내 고개도 푹 숙여버렸다. 천천히, 아저씨의 무릎이 접혔다. 아저씨는 무릎 꿇은 자세로 조용히 흐느꼈다. 눈물이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그 눈물방울들이 웅덩이를 만드는 걸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저씨에게로 다가가 주변에 떨어진 물건들을 줍기 시작했다. 열쇠를, 핸드폰을. 손에 닿는 그 쇠붙이들이 너무나도 차가웠다. 아저씨가 꿈을 좇으며 맞아낸 돌들도 이렇게 차가웠을 거였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와 주변을 정리했다. 양말을, 빗자루를. 아저씨의 감정이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서인지, 작게 훌쩍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그들도 자신이 우는 이유가 뭔지 모를 거였다. 뭔진 모르지만 이 상황이 슬프니까 울 밖에. 아저씨는 아주 크게 울고 있었다. 그러나 운다기보다는 웩, 웩, 하고 토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저씨는 아무래도 인생의 어느 힘든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의 구덩이를 통과하는 동안 살갗이 타오르는 게 너무 아파 울고 있는 거라고, 불 붙어 녹아내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안쓰러워 눈물 흘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목이 멨다.
 상황이 조금 정리가 되자 나는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저씨가 토하던 그 때처럼, 아저씨의 등을 살살 쓸어주었다. 아저씨의 호흡이 서서히 정돈되었다. 교수님과 수강생들은 그런 아저씨를 아주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아저씨가 눈을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핏줄이 빨갛게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길게 내쉬더니 내 팔을 꽉 잡았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있잖아, 신영아. 너무, 세게, 누르면... 피도 안 나. 그냥. 하얗게... 죽어.
 아저씨가 콜록거렸다. 나는 다시 조용히 그의 등을 쓸어주다 아저씨의 팔을 꽉 잡고 말했다. 걱정 마요. 아저씨 피 많이 흘렸어요. 여기서 제가 다 봤어요.

 아저씨가 비로소 웃었다. 미친놈이 아닌, 김진규의 웃음이었다.

 


7.

 

 연기를 하면서 마음이 너무 맞아 벅차고 신났던 시간들을 모두 뒤로 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은 고요하고 슬펐다. 나는 3주 동안의 마법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뭐가 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정리될 거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벅찼을까, 뭐가 날 잊게 만들었고 뭐가 날 다시 불러들였을까. 그리고 아저씨는? 아저씨가 1인극을 하던 상황 자체가 하나의 연극 같았다. 무엇이 우리가 아저씨에게 물건을 던지게 만들었고, 아저씨가 자기 자신을 인정하게 만들었으며, 무엇이 사람들이 아저씨의 감정을 공유하게 만들었을까. 노란 문 밖에서는 쉽게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노란 문 안쪽에서 일어난 일들은 전부 그런 식이었다.
 그걸 마법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법은 서서히 소멸되기 마련이었다. 소멸은, 우리가 그 노란 문을 나오면서부터 시작되었을 거였다. 그렇게 날 멍하게 만드는 것을 경험하고 났는데 난 앞으로 어떡해야 하나. 아저씨의 뺨에 난 상처는. 대체 어떻게 잊어야 하나. 연기를 하지 않고, 딴청을 피우지 않고 이 세상과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이 소름끼쳤다.

 잠깐... 보자. 아까 아저씨의 입술에 발라준 립스틱을 꺼냈다. 뚜껑을 열어보니 립스틱 표면이 마구 갈라져 있었다. 열쇠에 맞아 뺨에 난 상처처럼, 스크래치가 잔뜩 나 있었다. 아무래도 수염을 스친 모양이었다. 오늘은 너도 아저씨도 상처투성이군.
 나는 립스틱을 내 입술 위에 대고 천천히 문질렀다. 다시 립스틱을 보니 스크래치가 조금 옅어져 있었다. 몇 번을 그렇게 하자 그 상처가 많이 희미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그냥 이렇게 하는 거야. 그냥 이렇게 하는 거예요 아저씨. 그때부터 나는 필사적으로 립스틱을 입술에 문질렀다. 이렇게 하면, 세상이 던지는 수많은 돌을 맞고도 괜찮아질 것처럼. 아저씨가 힘든 의식 끝에 결국 짓던 미소를 영원히 기억할 것처럼. 아무리 날카로운 걸 던져도 그 앞에서 능청스레 연기할 수 있을 것처럼. 립스틱은 내 입술 위에서 자꾸만 피를 쏟아냈다. 그 피에 내 입술은 온통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꽃처럼 밝게 빛났다. 피꽃이었다.

 봐요... 깨끗해요.

 립스틱은, 크기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무 상처 없이 붉게, 방긋 웃고 있었다. 피를 많이 흘려서 다행이야,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로소, 내 입술에 놓인 피꽃도 옆으로 길어지며 환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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