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비상위원회 의결사항 이행 문제를 두고 학내 갈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대학평의회 구성, 이사회 구성방식 개선, 명예박사 수여 기준 제정 등 학교 운영에 민감한 사안의 경우 대학본부, 이사회, 교수협의회, 총학생회 등 학내 여러 주체들 간의 이해가 엇갈려 의사 결정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 학교 갈등의 핵심은 이러한 개별 사안의 시행 여부가 아니라 사실 혹은 사실의 해석을 자의적으로 왜곡시켜가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겠다는 비민주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다.

우리는 지난 석 달 동안 하나의 사실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과 주장을 경험해왔다. 논란의 시작은 혁신비상위원회 활동에 관한 합의서를“잘 모르고 사인했다”는 지난 9월 전체교수회의에서 제기한 총장의 발언이었다. 서남표 총장은 실제로 그 합의서가 어떠한 파장을 야기할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할 때 서남표 총장의 발언은 신중하지 못한 것이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서남표 총장은 지난 달 5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한 번도 혁신비상위원회 의결사항을 중간에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발언해 위증 논란을 일으켰다. 이 발언과 관련해 학교 본부 관계자는 한자어 의미를 혼동해 보고를 받은 것이 아니라 통보를 받은 것이라는 발언을 하려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위증 여부를 떠나, 학내 갈등을 증폭시킨 이 발언 역시 우리 학교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신중한 발언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학교의 신뢰의 위기와 관련해 서남표 총장과 학교 본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교수협의회도 신중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수협의회는 지난달 26일 열린 이사회 결과와 관련해 서남표 총장에게 지속적인 개혁을 지지했다는 학교 측 발표와 달리 “격려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총장이 마음대로 저질러 놓고, 이사회에서 뒤처리해달라는 것에 대해 질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발언했다. 긴 시간 회의를 하다보면, 격려와 질타의 의견이 개진되기 마련이다. 회의란 그러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의견을 모아 하나의 안을 마련하기 위한 과정이다. 검증하기 어려운 주장으로 학교측 발표를 반박한 교수협의회의 발언 역시 학내 구성원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다. 우리 학교의 개혁도 중요하고, 대학평의회 구성을 통해 민주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되 어디까지나 객관적 사실과 합리적인 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지난 몇 달 간 우리 학교에서 벌어진 ‘진실 게임’은 교육기관에서는 벌어져서는 안 될 낯 뜨거운 일이다. 어느 쪽의 의견이 우리 학교의 개혁을 위해 올바른 것인지를 떠나 지도자는 진실만을 말하고 진실만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것이 개혁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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