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순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책임교수

최근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에 대한 많은 기사를 읽었다.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처럼 전문가의 손에 있던 컴퓨터를 일반인도 쓸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 PC 시대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PC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고 PC 시대의 종식을 가깝게 한 장본인, 인류의 문화 향유 방식을 바꾼 이 시대의 에디슨 등, 잡스에 대한 찬사는 줄을 이었다.

어느 드라마보다도 더 극적인 그의 인생격정도 내 눈길을 끌었다. 사랑은 했으나 결혼을 할 수 없었던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평생 저축한 돈으로 등록금을 대준 양부모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한 학기 만에 대학을 중퇴하고,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 다시 최고경영자의 위치에 오르고, 암과의 투병 속에서 디지털 산업의 치열한 경쟁을 이끌어간 스토리는 가슴에 무언가 뭉클한 느낌을 들게 하기 충분했다.

잡스의 업적과 삶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생각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잡스는 그 누구보다도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을 강조했는데, 왜 그랬을까?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잡스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하고 캠퍼스에 머무른 18개월 동안 자유롭게 청강을 했는데 특히 서체과목에 열중했다. 그는 서체가 가지는 역사성과 예술적 미묘함에 매료되었고, 이런 관심은 10년 뒤 다양한 활자체를 제공하는 최초의 컴퓨터 매킨토시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잡스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애플에서 쫓겨나고 더 드러난다. 1985년 그는 NeXT를 설립해 교육용 컴퓨터를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꿈은 단순히 좋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우주”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비록 이 사업은 실패했지만, 남들보다 앞서 도서관의 장서 및 음악과 영상 모두를 디지털 형식으로 바꾸고 공급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잡스는 선불교에도 심취했었다. 애플을 창업하기 전 1년 동안 인도를 돌아다녔고 그 이후에도 계속
사원을 찾았는데, 잡스가“단순함”과 “집중”을 강조한 것은 선사상의 영향이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그럼, 잡스는 인문학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아름다움의 원천을 찾는 법을 배웠고, 지식의 정보화를 통한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인간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법을 깨달았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인문학 교과서는 그의 삶 자체였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었고, 무엇이 가장 가치있는 일인지 찾았으며, 복잡한 생각이 단순해질 때까지 자신을 담금질했다. 돈과 명예는 부속물에 불과했다.

이러한 점에서 잡스는 인문학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청명한 언어로 얽히고설킨 인간사를 간파하는
시인, 복잡한 문제의 논리구조를 명료하게 밝히는 철학자, 수많은 사실속에서 진리를 끄집어내려는 역사학자 모두 기존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자기를 재발견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요즘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기술의 생태계와 사람의 생활패턴을 바꾼 스마트폰과 같은 발명품이 이 경향을 부추겼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어떻게 융합을 해야 좋을까? 무엇이 올바른 융합 연구인가? 잡스의 예에서 우리는 섣부른 융합, 융합을 위한 융합을 경계해야 함을 배운다. 근본적인 융합은 개인 차원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기술을 만들기에 앞서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하고, 이런 문제인식에 앞서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즉 내면의 빛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편의 시와 소설, 철학책과 역사책은 이러한 자기성찰의 방법을 알려 준다. 잡스는 인문학에서 바로 이 가치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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