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우리 민족 삶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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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우리 민족 삶의 자취
  • 민홍일 기자
  • 승인 2011.11.07 01: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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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철도는 지난 1세기 동안 전국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많은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철도는 근대화의 상징이지만, 일본의 침략 수단이 되어 우리 민족을 착취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철도역사에는 우리 민족의 삶과 한이 담겨 있다. 이제는 더욱 우리 생활에 밀착해 경제 발전, 문화 전파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은 철도에 담긴 역사를 되짚어 보자

▲ 우리나라 최초 모갈형 증기기관차

우리나라의 첫 기차소리가 울리다

 ‘화륜거의 소리는 우뢰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차의 굴뚝 연기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라. 차창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움직이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라’ 1899년 9월 19일에 발행된 독립신문 기사의 한 문구다. 우리나라의 철도의 역사는 1899년 9월 18일 노량진과 제물포 간의 경인선 33.2km가 개통되면서 시작되었다.

 철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1889년 개화정책이 추진되던 중 주미 대리공사인 이하영이 귀국하면서 철도 모형을 가져와 철도부설의 필요성을 강조했을 때부터다. 그 후 우리나라는 자발적인 철도건설을 시도했으나 심각한 자금난 때문에 결국 미국인 모오스에게 경인철도의 부설권을 넘겼다. 하지만 모오스 또한 여러 이유로 자금조달에 실패하여 일본에 1898년 12월 철도부설권을 넘겼다. 그 결과, 경인선은 일본에 의해 개통되었다.

최초의 철도 경인선

 경인선이 개통된 후, 우리나라 최초로 화륜차가 운전된다며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열차운전은 큰 지장을 받았다. 반일감정이 심한 시기였기 때문에, 운전을 방해하기 위해 당시 사람들은 일부러 여름철에는 철길에서 낮잠을 자고, 돌이나 장애물을 철길에 놓거나 무임승차도 많이 했다고 한다. 철도회사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순사를 고용해, 잡힌 자는 형벌을 줬다. 하지만 조선인 순사였기 때문에 조선인과의 큰 충돌은 없었다.

 당시는 엽전을 쓰던 시대라 한닢 두닢 돈을 세다가 기차가 떠나가자 손을 들고 쫓아가며 소리치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게다가 한화와 일화의 가치 차이가 있어 차비 계산에 많은 시간이 소비되었다고 한다.

 러일전쟁 발발 당시 경인철도 인천사무소에서는 지배인의 일본 출장 중 보선과장이 대리집무를 보고 있었는데, 물가가 너무 뛰어 박봉으로 고통받는 종사원들을 보게 되었다. 그는 독단으로 전 사원의 급료를 한꺼번에 70%씩의 승급을 단행했고, 동경 본사에 보고했다. 그는 후에 상부로부터 꾸중을 들었으나 종사원으로부터는 하느님처럼 받들어졌다고 한다.

철도를 침략의 수단으로 이용한 일제

 우리나라 철도역사의 절반은 일제 침략과 애환이 깃들어 있는 근대사의 생생한 흔적이다. 경인선 개통 이후 일제는 한국에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 1931년 장항선을 차례로 개통했다. 해방되기 전까지 일본은 우리나라 철도를 독점적으로 운영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과 철 등 광물을 일본으로 나르는 등 식민지 착취와 침략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지금까지 이 철도 건설을 근거로 들어 한국지배를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 호남선 개통당시 군산역

경성궤도의 영업과 그 의미

 도시권이 점차 확대되면서 이동거리가 길어지고 교외철도의 수요가 생겼다. 일제 강점기 서울, 부산, 평양 등 대도시에서는 자연스럽게 교외철도 계획이 세워졌다. 대부분은 빛을 보지 못했지만, 서울의 경성궤도는 꽤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왕실 땅은 일제시대에 들어서서는 조선총독부의 소유가 되었고, 이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해 일본인들에게 매각되었다. 그때부터 일본인들은 뚝섬, 즉 현재의 성수동 일대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서울과 뚝섬 사이의 교통수요는 갈수록 늘어나서, 두 곳을 잇는 교외철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경성궤도다. 경성궤도는 주로 산업 물자 수송을 목적으로 쓰이다가 1935년 일부 열차가 전차로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그 일대가 서울시민들의 나들이 장소가 되었다. 그 결과, 경성궤도를 중심으로 상업이 크게 발달했다.

문화가 철도에 의해 변화하다

 철도가 생기면서 문화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특히 건축 분야에 그 영향이 매우 컸다. 서울역은 비록 일본인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이지만 르네상스 혹은 절충식이라는 새로운 양식으로 건축되어 우리나라의 건축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자, 역 주변으로 호텔 및 관광지가 개발되어 관광문화가 발달했다. 또한, 많은 문화유적도 생겼는데, 그 중 하나가 급수탑이다. 지금은 삼랑진 역 등 전국에 7개의 급수탑이 남아 있다.

남북으로 쪼개진 철도

 1950년 6·25 전쟁으로 한국 철도는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철도 당국이 재건에 힘쓴 결과, 1959년 8월 처음으로 국산객차 제작에 성공했다. 한국전쟁 후 UN군이 철수하면서 기증한 기관차 4량을 시작으로 디젤기관차 시대의 막이 올랐으며, 1961년 7월 부터는 디젤 기관차를 도입해 오늘날과 같은 철도수송체계의 기반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 6·25 전쟁으로 파괴된 서울역

본격적인 철도발전의 시작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으로 산업철도의 건설과 지역사회개발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1963년부터 철도청을 특별회계로 운영해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공기업으로 발전시켰다. 이때부터 철도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열차자동폐색장치(ABS)와 열차집중제어장치(CTC)가 등장하는 등 안전성도 크게 향상되기 시작했다. 또한, 승차권 발매의 전산화도 이루어졌다.

▲ 우리나라 최초의 CTC 사령실

 1970년대 경제개발 방향이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변화하면서 산업선이 개통되고 전기기관차가 등장했다. 또한 수도권 전철이 개통되어 도심 인구의 분산을 가져왔다. 1호선 개통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역세권 주변으로 인구가 늘어나며 도시 팽창은 가속화되었다. 이는 위성도시인 부천, 수원, 인천 등에 독자적인 신도시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일생활권의 탄생 및 사건 사고

 수도권 전철의 개통과 1974년 새마을호가 서울과 부산을 4시간 50분에 주파함으로써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묶는 등 철도는 일상생활의 필수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1974년 최초운행된 새마을호(디젤기관차)

 철도가 이렇듯 국민들의 보편적인 교통수단이 되면서 뜻하지 않은 사건 사고들도 일어났다. 대표적인 사고로는 남원역 열차 추돌 사고를 말할 수 있다. 1971년 10월 13일 새벽 6시경, 수학여행을 가려던 남원국민학교 6학년 학생들과 전주로 향하던 전주공고 학생들이 탄 순천-서울행 완행열차는 제동장치의 고장으로 뒤의 유조열차와 충돌했다. 이 때 완행열차가 유조열차의 지붕 위로 치고 올라오면서 하중을 이겨내지 못해 탈선했고, 이는 학생들을 포함한 20명이 사망하고 48명이 부상을 입은 대형참사가 되었다.

찾아온 철도위기를 극복하다

 1978년에는 동력차의 국산화와 철도기술의 해외진출을 이륙하는 등 1970년대 이후 철도는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지만, 고속도로가 개통과 자동차 교통의 발달로 철도이용객이 줄자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다. 따라서 철도청은 경영난 회복 방안을 찾게 되었다.

 그 결과 기차역의 이미지를 쇼핑과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종합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철도청은 정동진 관광열차, 환상선 눈꽃열차 등을 개발하여 관광상품을 다양화했으며, 복합화물터미널 기지를 조성하여 열차 이용을 유도했다. 그리고 현재는 경영의 다양화를 위해 새로운 부대사업을 개발하는 등 공공기관이 지니기 쉬운 권위주의적이거나 관료주의적인 틀을 벗어나 고객 만족 경영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철도문화의 발전과 고속철도의 등장

 1990년대, 철도청은 국가기관으로는 최초로 고객중신 경영혁신활동을 추진하는 등 철도문화발전에 힘썼다. 2002년 한국철도는 순천향 대학교와 공동으로 강의실 객차를 시범 운행하기도 했으며, 같은 해 9월에는 남북 간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 착공식’을 가졌다. 2004년 1월 1일에는 고속철도가 준공되었으며, 4월에는 KTX가 개통돼 부산에서 서울까지 첫 운행을 가졌다. 올해 10월 5일에는 전라선 KTX가 개통되기도 하는 등 고속철도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들었다.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철도

 철도는 우리나라의 근대화 역사와 함께 발전한 교통수단으로, 이미 우리의 삶에서 빠져서는 안 될 존재다. 철도는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서 안전할 뿐만 아니라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또한, 고속철도망이 남북의 철도망에 연결될 경우 중국횡단철도(TC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통해 한반도에서 유럽지역까지 열차를 운행할 수 있어 미래의 교통수단으로서도 가치가 높다. 철도의 실크로드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철도는 앞으로도 대규모 운송 수단이며, 국민의 생활 수단으로서 그리고 문화의 전파수단으로서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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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선 2014-12-10 18:09:28
서울도시철도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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