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역사와 인류 문명에 대한 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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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역사와 인류 문명에 대한 공헌
  • 이서은 기자
  • 승인 2011.10.0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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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번 이슬람 문화기행 마지막 연재에서는, 1천 년간 번성했던 이슬람 제국의 흥망과 그들의 문화가 현대 사회에 남긴 찬란한 유산을 되짚어본다

이슬람의 탄생과 성장

 이슬람의 마지막 예언자 무함마드가 등장하는 6세기 말 중동지역은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 제국과 이란의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이 격돌하는 장으로 바뀌었다. 두 제국이 벌이는 300년에 걸친 소모전쟁으로 주민의 삶은 피폐하고 새로운 질서를 갈구했다. 이런 시대적 절망감에서 이슬람이란 새로운 종교가 등장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전혀 우연이 아니다. 무함마드는 서아시아의 정통적이고 오랜 사상적 기반을 가진 유일신 사상을 다시 한 번 설파하면서, 혼란스러웠던 당시 사회를 정신적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토착 종교와 기존 구조에 대한 포용정책과 더불어 역동적인 유목군사시스템을 통해 정복 사업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슬람 군대는 합리적인 조세제도를 실시하고 토착 주민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인정해 줌으로써 전쟁다운 전쟁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주변 지역을 쉽게 복속시킬 수 있었다.

 이슬람 제국의 시대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출발해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스페인 남부,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인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이슬람 종교와 문화적 유산을 남겼고, 1천 년의 대제국시대를 거치면서 인류문명의 성숙에 큰 공헌을 했다. 

압바스 제국과 이슬람 문화의 전성기

 9세기경 압바스 시기에 세 대륙에 걸쳐 형성된 이슬람 제국은 아랍의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오리엔트, 그리스, 로마, 이란 및 인도의 문화를 흡수해 독창적인 이슬람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슬람 문화의 특징은 이처럼 광대한 정복지의 문화를 파괴하지 않고 받아들여, 국제적이고 종합적인 문화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이슬람 문화는 칼리파 하룬 알-라시드(Harun Al-Rashid, 786-809) 시대에 가장 번성했는데, 당시의 수도 바그다드는 동서문화가 집결하는 중심지로 크게 번영했다. 바그다드에 설립되었던 바이트 알-히크마(bait al-hikma:지혜의 집)는 외국어 문헌의 종합번역센터로서 이슬람 문화의 국제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전당이었다. 이곳에서 그리스와 오리엔트의 중요한 철학서와 과학서가 아랍어로 번역되었는데,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학자들의 많은 저술이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 이븐 시나(Ibn Sina, 980-1037)와 스페인의 무슬림 학자 아베로스(Aver-ros, 1126-1198)는 이 시기에 활동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신플라톤주의에 입각한 철학 체계를 세운 대표적인 무슬림 학자였다.

현대 과학과 예술의 기반이 된 이슬람 문화

 더욱이 무슬림들은 자연과학에서 매우 발달한 수준을 이룩했다.수학에서는 그리스의 유클리드 기하학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인도의 영향을 받아 아라비아 숫자 체계와 영(0)의 개념을 확립했다. 그들은 삼각법, 해석기학, 그리고 그 어원이 아랍어인 대수학(Alge-bra)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천문학에서는 경도와 위도, 그리고 자오선의 길이를 측정하고, 천체관측기구를 만들어 지구구체설을 증명했다. 이슬람력의 원리는 원나라 때 중국과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태음력의 정비와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밤에 별을 보고 움직이는 유목생활과 새로운 오아시스를 찾고자 하는 열망은 천문학을 생존의 학문으로 키워나갔고, 아울러 심리적인 안정과 공동체적 운명이 점성학을 발전시켰다.

 의학에서는 예방의학과 외과수술이 성행했으며 대표적인 의학자인 알-라지(Al-Razi)의 <의학대전>과 이븐 시나의 저술들은 유럽 의과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재로 사용되었다.

 화학분야에서는 승화작용이나 증류법과 같은 화학 실험 방법이 고안되었다. 알칼리, 알코올 등의 아랍어 용어는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의 교리 때문에 이슬람 미술에서 사람 혹은 동물을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은 발달하지 못했다. 대신 둥근 돔과 아치, 첨탑을 특징으로 하는 모스크사원 건축과 여기에 화초문양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아라베스크가 유행했다. 특히 아랍어나 꾸란 구절을 예술적인 서체로 표현하는 이슬람 서예가 매우 발달했다. 이처럼 국제성과 보편성이 뛰어난 이슬람 문화는 과학을 중심으로 무슬림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동서양 여러 곳으로 전파되었으며, 특히 중세 유럽문화에 큰 영향을 주어 후일 근대과학의 진보에 결정적인 이바지를 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과학용어와 일상 언어 중에도 아랍어에서 유래된 것이 많이 있다는 사실은 이슬람 문화의 강한 영향력을 짐작케 해준다. 서구 사회에서 일반화된 화학(chemistry), 연금술(alchemy), 천문학(astronomy), 점성학(astrology), 대수학(algebra), 그리고 커피(coffee), 설탕(sugar), 레몬(lemon), 음악(music), 파자마(pajama) 등도 아랍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슬람 세계의 이러한 학문과 문화적 성취는 후일 유럽의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의 실체

 일찍이 서구인들은 무슬림에 의한 정복사업을 소위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이슬람의 호전성과 종교의 강압적 전파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이교도에 대한 적개심과 확산되는 이슬람 세력에 대한 위기감에서 만들어낸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이슬람의 전파는 무슬림의 종교적 의무이다. 하지만 ‘무력에 의한 이슬람 전파’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꾸란에서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꾸란에서는 분명한 단어로 상반되는 원칙을 주장한다. “종교에는 어떠한 강요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슬람이 강제개종과 무력보다는 공납제도와 포용정책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이슬람교는 발생하자마자 급속히 전파되기 시작했다. 당시 비잔틴과 페르시아의 수탈과 착취에 시달리던 시대적 상황이 이슬람의 진출을 오히려 환영했고 이슬람 정복 과정에서 강제 개종은 실제로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무슬림들은 피정복민들의 문화나 관습 및 종교 등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그들에게 무슬림들보다 약간 많은 세금만을 요구했다. 따라서 피정복민들로서도 이슬람 세력의 진출을 방해할 뚜렷한 이유가 없었으며 세금액도 그 이전 비잔틴과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통치시기의 수탈에 비하면 훨씬 가벼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금도 적게 내고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이 주어지는 이슬람으로의 대량 개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슬람 정부는 세금 감면을 노리는 대량 개종을 막기 위해 오히려 개종금지백서를 발효해 국가 수입의 증대를 위해 피정복민의 개종보다 공납을 요구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무력에 의한 이슬람 전파는 근거가 희박하다. 십자군 전쟁 이후, 당대 최고의 기독교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유럽 전역을 휩쓰는 이슬람 열풍을 막고 기독교 세계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적의감이 가득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용어다.

오늘날 중동지역의 분쟁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나

 1천 년의 이슬람 제국 시대 모두가 아랍인 중심은 아니었다. 1258년 몽골에 의해 압바스 제국이 멸망한 이후, 이슬람 세계의 주도권은 투르크인 중심의 오스만 제국으로 무게중심이 이동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이슬람 세계의 정교일치적 통치권인 칼리파권을 행사했고, 1924년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오스만 왕정이 무너지고 터키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이슬람 세계의 명목상 통합마저 깨어져 버렸다.

 오스만 제국의 멸망과 와해는 그 치하에 있던 여러 소수민족이 독립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으나, 곧바로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 열강들이 중동 일대를 식민 통치함으로써 오늘날 중동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과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분쟁 지역인 팔레스타인 문제만 하더라도 영국과 프랑스가 이 지역을 나눠 차지하려고 하면서 만들어 놓은 3중의 상호 모순된 비밀조약이 그 빌미가 되었으며, 국제법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양쪽의 평화협정 등이 지켜지지 않고 미국 등 강대국들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두둔하면서 사태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금 많은 중동 국가들은 21세기의 글로벌 흐름을 잘 인식하고 내부개혁과 민주화, 여성 권익 신장, 시민사회 형성 등보다 발전하는 국가의 미래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으며, 산유국들은 오일머니로 들어오는 자본을 사회간접기반 시설에 투자해, 농사를 짓고 낙농과 담수화 시설 확충 등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희수 교수는 국내 최고의 이슬람 전문가로, 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어과를 졸업한 후, 터키 국립이스탄불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0년간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튀니지, 터키, 이란 등지에서 생활했으며, 현재는 중동 이슬람권 문화와 이들의 소수 민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슬람', '한•이슬람 교류사', ‘80일간의 세계문화기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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