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비상위원회 위원 이병찬

지난 6월, 필자가 혁신비상위원회(이하 혁신위) 위원(학부 총학생회 추천)으로 있을 때 고민하던 내용이 있다. 혁신위가 중반을 넘어가고 후반부로 갈 때부터 한동안 필자의 머리를 맴돌던 것은, 혁신위에서 논의하고 의결한 안 중에서 과연 이사회로 넘어갔을 때 어떤 안건들이 받아들여지고, 어떤 안건들이 반려될 것인가였다. 학사 제도와 관련한 안건들은 당시 분위기 속에서 큰 이견이 없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소위 민감한 주제들은 이사회의 문턱을 못 넘는 안건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8월 말에 있었던 임시 이사회에서 혁신위에서 의결한 안건 보고 및 의결이 있었다. 안건 대부분은 큰 문제 없이 통과 또는 대학본부에 위임되었으나, 가장 민감한 안건들 세 가지가 ‘추후 재논의’라는 형식으로 남게 되었다. 차후에 재논의하기로 한 세 개의 안건은 다름 아닌 ▲대학평의회 발족 ▲KAIST 이사 선임절차 개선 ▲명예박사학위 수여기준 제정이다.

아직 사회생활 경험이 일천한 필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어떤 기준으로 몇몇 안건들은 안건들이 통과되고, 학교에 위임되고, 재논의 하기로 결정되었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지만, 이러한 결정 자체가 파급력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학우들은 (카이스트신문에 따르면) 이번 이사회 결정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교수협의회에서는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안건 몇 개가 ‘추후 재논의’로 발목이 잡히면서 행보가 바빠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내의 중요한 안건(중·장기발전 및 기본계획 수립 등)을 심의하고, 총장과 전체교수회의에서 골고루 평의원을 선출하도록 하는 ‘대학평의회’는 관련 규정이 1998년에 생겨났지만, 여태까지 한 번도 소집이 않았다는 점에서 교수협의회의 오랜 숙원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교수협의회에서 이러한 이사회의 결정에 반발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견제와 균형은 독선을 막기 위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리이고, 그러한 것들이 대학에서는 대학평의회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대학들에서는 법에서 정해진 바와 같이, 교원뿐만 아니라 직원 및 학생도 포함되는 대학평의회를 구성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교수협의회에서 주장하는 것들이 현재 언론에서 대학평의회가 아닌 ‘교수평의회’로 나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교수평의회 구성’의 형태로만 대학본부를 압박해 가는 모습은 학교 운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많은 대학에서 총장 직선제가 시행되었지만, 교수 간의 파벌 갈등으로 말미암아서 결국 많은 대학에서 직선제가 폐지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총학생회도 지금 이루어진 것들에 안주하지 않고 상황을 꼼꼼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이사회에서 통과되거나 대학본부에 시행을 위임하기로 한 안건 중에도 시행시기가 불명확한 안건들이 많은데 이러한 안건들에 대해서 대학본부가 시기를 명확히 하고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등록금 심의위원회에서 실질적으로 학생과 교직원이 동수를 유지할 수 있게 협상하고 있는 것과 같이 후속 조치들이 필요하다. 더욱이 이번에 다루어지지 않은 문제 중에서 시급히 고쳐야 할 문제들을 정리하고 여론 수렴을 하고 안을 다듬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 대학평의회 등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 학생이 직접적으로 참여하도록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여 큰 흐름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봄학기에 혁신위가 꾸려지고 운영된 과정을 상기해 보면, 아직 우리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교 정책 결정과정에 직접적으로 반영이 되기에는 현실의 벽이 높다는 느낌이 들었다. 혁신위 구성에서 교수협의회 추천 평교수:보직교수:학생 = 5 : 5 : 3이 된 과정이라던가, 혁신위 내부에서의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더 많은 의제들에 대한 학생사회에서의 여론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고, 그걸 잘 모아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총학생회 내에서도 정책 결정에 대한 의사결정구조를 재 정비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가령 총학생회 집행국 간부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정책과 관련한 전문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지난 4월의 비상학생총회의 안건4의 찬반토론에서 반대발언을 하신 학우의 말이 인상이 깊은데, ‘우리 학생들이 총장 선출과정 등에서 목소리를 낼 만큼 성숙해 있나’ 라는 말이 뇌리를 돈다. 그렇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 KAIST 학우들은 민주시민으로써, 자신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토론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다고 본다. 더 많은 의제의 공론화와 학생사회에서의 합리적인 토론, 총학생회의 정책 결정과정 및 보고의 투명화, 전문화만이 이러한 우려를 잠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가 있는 KAIST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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