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RA는 시끌시끌하다. ‘대화’를 나누는 공간인 학내 커뮤니티가 조용하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만, 이번에는 한목소리로 학교의 여러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다. 서로 비판하고 논쟁하는 일은 잦았지만, 학교 시스템에 대한 입을 모은 비판은 흔치 않던 일이다. 그 중 학생처와 반대표자협의회 ‘어울림’이 역점 사업으로 두고 있는 <즐거운 대학생활(이하 즐대생)>과 <신나는 대학생활(이하 신대생)> 수업에 대한 비판은 눈여겨볼 만하다.

처음 즐대생 수업을 만든다고 했을 때, 필자의 반응은 회의감 반 호기심 반이었다. “즐거운 대학생활이 강제적인 수업으로 가능한 걸까”라는 반감이 들면서도, “그래도 같이 모아놓고 놀면 친해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런 기대감과 이 수업이 잘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학기 초 기자가 직접 즐대생 수업에 다녀와 르포를 쓰는 기획을 마련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카이스트신문 345호 ‘새내기의 즐거운 대학생활 만들기’)

그리고 사실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수업의 존재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조교가 아닌 한 3학년에게 새내기 후배들의 필수 수업 한 가지는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나마 필자가 학보사 편집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학교의 대소사와 학우들의 일상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른 ‘헌내기’들에게 즐대생과 신대생의 존재감이 얼마나 미약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1학년 학우들이 즐대생 수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랐다는 점에 궁색한 핑계를 대기 위해서다. 두어 살 많다는 위세로 “판 뒤집기 게임이 ‘아이들’에게는 재밌을 수도 있겠지”라고 웃었다는 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처음 이 수업에 대해 들었을 때, 이 수업이 기획 단계에 있을 때, 지금과 같이 학우들이 지적하고 나서기 전에 검토하는 기획을 마련하지 못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그랬다면 애써 준비한 반대협도, 함께한 조교들도 이러한 비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편 기대감이 든다. 이것이 ‘자정작용’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없애버려라” 식의 비난보다는 발전을 위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만약 기획단도 비판을 비난이 아닌 ‘피드백’으로 받아들여 더욱 개선해 나간다면 우리 학교만의 특색 있는 수업을 마련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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