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 "지금,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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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 "지금, 만나러 갑니다"
  • 손하늘, 박찬우 기자
  • 승인 2011.09.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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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첫 날 KAIST의 '각양각색' 고향길 풍경

<24시>는 우리 학교 안팎의 특정한 공간이나 특이한 날짜, 또는 특별한 사람을 24시간 내에 관찰해 글과 사진으로 전달하는 신개념 ‘다큐멘터리형 르포’다. [편집자 주]

보기만 해도 팔이 빠질 듯하다. 가득 찬 가방 3개를 짊어지고, 기계공학동 앞을 걸어가고 있는 박근우 학우(기계공학전공 09)가 향하는 곳은 서울 광진구. 무거운 짐을 들고 있어 기자의 인터뷰가 귀찮을 텐데도, 박 학우의 표정은 밝다.

“집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찾아가요. 모처럼 맞은 연휴니까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지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추석연휴 첫 날인 9월 9일 금요일, 우리네 이웃들이 들려준 고향 이야기, 그리고 사는 이야기를 담았다.

[오후 12시] “너무 바빠서, 인터뷰 할 시간도…”

수많은 열쇠들을 나누고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으로 분주한 캠퍼스폴리스 사무실. 이들의 업무는 연휴를 가리지 않는다. 조심스레 대화를 청해보지만 “너무 바빠서 인터뷰를 할 시간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대신 송민효 안전팀장으로부터 작업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연휴 기간 중 더욱 철저한 방범이 필요한 학내 연구실들의 열쇠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연구실을 1일 3회 순찰하는 등 업무가 많아요.”

같은 시각, 들뜬 표정으로 길을 나서는 학우들 사이에서 한 외국인 연구원을 만났다.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Augusto Esteves 씨의 고향은 포르투갈. 고향을 간다는 것은 남의 얘기일 뿐이다.

“친구를 만나러 포항도 가고, 여행을 목적으로 부산도 갈 계획입니다. 고향은 가지 못해도, 심심하지는 않은 연휴가 될 것 같아요.”

다른 외국인 동료들의 사정을 물었다. 그는 “어제 프랑스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는데, 따로 연휴 계획은 없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오후 1시] “아이들에게 잘 만든 ‘추석 선물’ 하고파”

30여 명의 고등학생들을 선생님 한 명이 이끌고 학부식당으로 향한다. 아뿔싸. 이런 모둠이 열 개 조가 더 있다.

“출입문이니까 옆쪽으로 밀착! 줄 바르게 잘 서고…”

이 손님들은 서울 선덕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다. 280명이 넘는 이과반 전교생이 ‘멘토 선생님’ 단 여덟 명의 힘으로 대덕연구단지를 2박 3일 동안 돌았다.

기자가 만난 김홍식 씨를 비롯한 인솔자들은 대부분이 아동복지학과 박사과정 학생들이다.

“이번 수학여행이 아이들에게 잘 만들어진 추석 선물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어요.”

식당 앞 택시승강장에는 삼십여 명이 ‘탈출 행렬’을 이루고 있다. 친지들도 만나야 하고, 공부도 놓을 수 없는 학우들은 저마다 연휴 계획을 세웠다. 양웅규 학우(무학과 11)는 “장남이기 때문에 사촌동생들도 잘 챙기고, 밀렸던 공부도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택시가 도착할 때마다 호출을 한 학우들의 눈이 바빠진다. 정체가 막 시작된 길을 뒤로 하고 도착한 택시 기사들도 덩달아 바쁘다.

“핸드폰 8073!”
“차 뒷번호 4098 호출하신 분!”

한 학우는 즉석에서 둔산시외버스터미널로 함께 갈 학우를 모으고 있다. 추석연휴 계획 짜랴, 고향까지 무사히 도착할 ‘전략’도 짜랴, 학우들의 머릿속은 분주하다.

[오후 2시] “학업으로 바쁜 딸아, 우리가 왔다”

다솜관 앞 주차장에 걸터앉은 부부가 묵묵히 누군가를 기다린다. 학부모 박성수 씨는 산업및시스템공학과 3학년인 딸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왔다.

“딸이 공부할 게 많아서 연휴 때도 집에 오지 못할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워낙 바쁜 걸 아니까…. 짐 좀 전해주고 얼굴 좀 보러 찾아왔지요.”

캠퍼스 곳곳에 우편물을 전하던 문서수발팀 직원들은 갈릴레이관 앞에서 잠시 고단한 숨을 돌렸다. 양군석 씨가 이 일을 시작한 지는 벌써 17년이 지났다. 택배라는 것이 생소하던 불과 10년 전만 해도, 양 씨는 추석 때마다 무거운 선물 소포를 모두 들고 날라야 했다.

“추석 대목이라서 우편물이 평소보다 많긴 해도, 소포를 나르던 그 때보다 많이 나아진 거지요. 얼마나 힘이 쫙 빠지던지…. 이제는 추석이라고 해서 큰 부담은 없네요.”

같은 시각, 교수아파트에서 근무하는 ‘람보 아저씨’ 방선권씨를 만난 곳은 뜻밖에도 서측 학생회관이었다. 방 씨가 학생회관에 들른 것은, 주차된 자전거를 정리하고 불필요한 전등을 소등하기 위해서다.

아들은 얼마 후면 아빠가 되고, 방 씨는 할아버지가 된다. 물론 그도 한 아버지의 아들이기에, 고향인 옥천으로 성묘를 갈 계획이다.

“온 가족이 모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지. 특히 며느리의 임신 소식이 어찌나 기쁘던지…. 우리 학생도 고향 잘 내려가고, 조만간 꼭 커피 한 잔 마시러 이 람보 아저씨 찾아와. 정직하게 살고.”

다시 녹슨 자전거를 타고 교수아파트로 향하는 방 씨의 작별인사는 유난히 밝았다.

[오후 3시] “우리는 추석 당일에도 근무합니다”

연휴에도 일터를 지키는 이들은 캠퍼스폴리스 외에도 더 있었다.

전쟁 같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한 숨을 돌리고 있는 서측식당 조리사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학우들에게 토요일 식사를 제공해야 하는 이들의 연휴는 하루 늦게 시작된다. 김미영 씨 역시 토요일 저녁까지 근무한 뒤에야 연휴를 맞는다.

“저 같은 경우는 많이 쉬는 편이에요. 동측식당은 연휴 중에도 식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추석 당일에도 교대로 근무하지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오리연못에 멈춘 버스에서는 운전기사가 내렸다. 본원-문지-화암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송광용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송 씨는 이날 문지 셔틀버스를 다른 기사에게 맡기고, 임시로 편성된 학생복지위원회 유성 행 셔틀버스를 운전하고 있었다. 송 씨는 추석 당일 운전대를 잡는다.

“그래도 고향인 충북 보은에 다녀올 예정이에요. 수원에서 일하는 아들도 내려온다니, 기대되네요.”

충북 청주가 고향인 학부이용원 이발사 정윤택 씨. 20여 년 동안 살았던 고향을 뒤로 하고 대전 선화동에서 이발을 시작했다. 1988년, 지금은 밴드 동아리방이 있는 제2학생회관 지하로 옮겨왔다. 이발 요금은 학생 4천 원, 어른 5천 원. 이 가격은 13년 째 동결했다.

토요일, 고향으로 가면 스무 명의 친척이 정 씨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저는 막내라서, 고향에선 나이 든 축에도 못 끼죠. 형님, 누님들이 한데 모이면 되게 반갑고 그래요.”

가위와 함께 한 인생길 60년, 정 씨는 ‘힘 닿을 때까지’ 학생들의 머리를 다듬고 싶다고 말했다.

이발소 건너편에 위치한 우체국도 막바지 접수 작업이 한창이다. 직원 오정석 씨는 “물량이 평소보다 50% 정도 늘었다”라고 말했다.

우체국의 한편을 지키고 있는 이창진 국장은 충청우정청에서 근무하다 1년 전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 국장은 “우체국을 이용해 주시는 학생들께, 좋은 명절 보내시라는 의미에서 준비했다”라며 입구에 비치된 송편과 다과를 권했다.

[오후 4시] “30분 째 기다려도, 택시는 오지 않고”

수업이 모두 끝난 학우들이 밀려온 택시승강장의 줄은, 어느새 사십여 명으로 늘었다.

유성고속버스터미널까지 40분의 여유를 두고 길을 나선 서동현 학우(산업및시스템공학과 08)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20분을 기다려도 오는 택시는 없고, 배차를 요청한 콜택시도 감감무소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서 학우는 기숙사로 돌아가야만 했다.

“지금 택시가 와도 타지 못할 것 같으니, 얼른 예약 변경이라도 해서 집에 가야지요. 남은 표가 있을 지 모르겠어요.”

앞서 30분을 기다린 끝에 콜택시 배차를 받아 대전역으로 출발한 김창현 학우(무학과 10)가 취재진에게 교통상황을 알려왔다. 출발한 지 10분이 지났는데도, 대전지방기상청 앞을 지나고 있다고 했다. 평소 2~3분이면 도달했을 거리다.

전화기를 계속 붙잡고 있는 3명의 학우에게 다가갔다. 부산과학고 동기로, 2시간의 여유를 두고 승강장으로 나온 이들은 결국 모든 콜택시 회사로부터 “차량이 없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방준형 학우(무학과 11)는 이번 연휴에 부산 집과 고향인 전남을 방문할 예정이다.

“지금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있기는 한데, 심지어 콜밴 회사에 전화를 걸어도 차가 없다네요.”

대강당 앞은 버스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흡사 터미널을 연상케 했다. 탑승 인원을 파악하고 있는 학우들 중에는 김예찬 학생복지위원장도 있었다. 김 위원장은 준비한 귀향버스를 타고 곧 부산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귀향버스를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냐고 묻자 명료한 답변이 돌아왔다.

“에이, 하나도 없었어요.”

[오후 5시] “교통정체 절정… 충대 농대로 우회”

퇴근하는 차들과 고향으로 떠나는 차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교통정체는 절정에 달했다. 전세버스 운전기사 박현용 씨는 송광용 씨와 함께 유성 행 셔틀버스의 핸들을 잡았다. 그는 “극심한 정체로 1시간 배차를 맞추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시내 상황을 설명했다.

버스 밖으로는 캠퍼스폴리스 이종국 씨가 교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 씨는 “추석인데다 대기업 부사장의 방문, 고유의 순찰 업무까지 겹쳐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오후 7시] “명절이라고 놓을 수 없는 공부”

모처럼 불이 꺼져 있어 썰렁한 학생회관. 학부총학생회 사무실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안에는 복지국에서 일하는 정양원 학우(무학과 10)가 문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KAIST에서의 세 학기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보니까, 물 흐르듯이 사는 것보다는 능동적으로 해 나갈 필요성을 느꼈어요. 학습량이 많기로 유명한 ‘논리 및 집합’ 과목을 공부하기 위해 추석 당일 학교로 돌아올 계획입니다.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공부하기로 했으니 명절이라고 책을 놓을 수는 없죠.”

공부를 위해 남은 학우부터 고향을 갈 수 없는 외국인 학우, 멀리 강릉과 부산으로 길을 떠나는 학우까지, 학우들의 추석 풍경은 굉장히 다양했다. 하지만, “고향이 그립고 가족들도 얼른 보고 싶다”라는 말은 9일 하루 동안 만난 학내 구성원 모두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저녁 7시 반, 25명을 태운 유성 행 마지막 셔틀버스가 출발했다. 25곳의 고향을 향해 띄우는 25개의 마음도, 숨가빴던 개강 첫 주를 뒤로 하고 힘차게 출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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