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단백질을 설계해 생산이 가능해져, 연구·신약개발의 새 장이 열려

 

 우리 학교 화학과 박희성 교수팀이 세균으로부터 맞춤형 인산화 단백질을 생산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예일대 솔(Soll) 교수팀과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연구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글로벌프론티어사업’에서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지난달 26일 자에 게재되었다.

신호전달에 핵심적인 단백질 인산화

 세포에 주어진 자극 신호를 핵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백질이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데, 이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인산이다. 각 단백질의 어떤 부위에 몇 개의 인산이 붙느냐에 따라 단백질의 상호작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백질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반응 속도가 빨라, 세포 신호의 전달 과정을 밝혀내는데 어려움이 많다.

인산화 단백질 합성 기구 새로 설계해

 박 교수팀은 인산화 단백질을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세균의 단백질 합성 과정에 인산화된 아미노산을 집어 넣어 통째로 인산화 단백질을 생합성 하는 것이다. 세균에는 인산화 반응이 없어, 인산화 단백질이 생성되더라도 다른 단백질과 반응하지 않는다. 박 교수팀은 단백질 합성 과정에서 인산화 아미노산을 끼워 넣기 위해 단백질 합성 기구(아미노산, tRNA, 중합효소)와 확장 인자(Elongation factor)를 제작했다.

자연계 모방 진화로 단백질을 조작

 중합효소에 의해 형성된 아미노산-tRNA 복합체는 확장 인자를 통해 리보솜에 들어간다. 이때 아미노산의 종류에 따라서 단백질 생산 기구와 확장 인자가 달라지므로, 인산화 아미노산을 단백질 합성 공정에 추가하려면 단백질 합성 기구는 물론, 확장 인자도 새로 설계해야 한다. 이를 설계하기 위해서 도입된 방법이 ‘자연계 모방 진화’이다. 자연계 모방 진화는 수만 년에 걸쳐서 일어나는 진화 과정을 몇 달 동안 압축적으로 실험실에서 재현해 기존의 단백질을 원하는 특성대로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이를 이용하면 기존의 단백질을 조작해 새로운 특징을 갖는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

질병 발생 메커니즘 규명, 신약개발에 박차

 세포의 신호전달은 암의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포가 분열하도록 하는 신호가 핵에 도달하면 세포는 분열한다. 따라서, 세포 분열을 유도하는 단백질이 돌연변이로 계속 신호전달을 하게 되면 세포는 계속 분열한다. 이렇게 세포가 계속 분열하는 경우가 암인데, 어떤 신호 전달 단백질에 이상이 생겼는지를 알아낸다면, 그 단백질의 반응을 억제함으로써 암을 치료할 수 있다. 현재 수많은 제약회사가 이러한 세포 신호의 전달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 수백 조의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인산화 단백질을 마음대로 설계해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신호 전달 과정의 규명이 쉬워졌다. 세포에 원하는 인산화 단백질을 집어넣고 어떤 반응과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관찰하면, 각각의 단백질의 역할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질병에 관여하는 핵심적인 단백질을 알아내면 그 단백질을 억제하는 화합물을 찾아 신약을 개발하기 쉬워진다.

에탄올 생산에도 커다란 기대

 본래 이 연구는 탄소 순환에 관한 연구였다. 나무가 연료의 연소로 배출되는 탄소를 흡수하고, 이 나무를 분해, 발효시켜 에탄올로 만들면 탄소가 순환되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기존에는 나무의 셀룰로오스를 포도당으로 분해할 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러나 셀룰로오스에 친화력이 높은 비천연 아미노산을 합성해 셀룰라아제에 첨가하면 셀룰로오스에 높은 접근성을 가진 분해 효소를 개발할 수 있다. 비슷하게, 셀룰라아제의 활성부위에 촉매역할을 하는 아미노산을 더 높은 촉매활성을 갖는 비천연 아미노산으로 대체하면 셀룰라아제보다 빠르게 셀룰로오스를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연구는 인산이 붙을 수 있는 아미노산 중 가장 대표적인 세린에 대해서 인산화 단백질을 설계하는 데 그쳤다. 이외에도 인산이 붙을 수 있는 다른 아미노산에 대해서도 연구가 계속될 것이다. 박 교수는 “이 연구가 신약 개발과 질병 발생 메커니즘 연구에 불을 지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 인산화 단백질 생화성 과정의 모식도. 단백질이 생합성 되는 과정이다. 왼쪽의 단백질 생산 기구와 비슷한 인산화 단백질 생산 기구를 만들어 맞춤형 인산화 단백질을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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