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KAISTAR와의 MOU체결을 비롯해 이슬람 권과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약 15억 명, 전체 인구 4분의 1인 그들의 문화를 생소하다고 여기는 학우가 많다. 쉽게 접하지 못했던, 그래서 오해하는 부분도 많은 이슬람의 문화를 소개한다

 

지난 10년간 인류사회는 테러의 일상화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테러를 달고 살았다. 처절한 저항의 본질이 배고픔이나 빼앗긴 생존권, 나아가 영토를 둘러싼 국가 간 분쟁이었음에도 미국은 모든 무장투쟁에 테러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신들의 국익을 지키려 했다. 대테러전쟁이란 이름으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체첸, 소말리아, 수단 등지에서는 전쟁을 경험했고, 팔레스타인의 합법적인 정치조직들도 테러조직으로 분류되면서, 무슬림들의 원초적 권리가 심각하게 훼손당했다. 그들은 국제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끝없는 고통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9.11테러로 희생당한 3000여 명의 시민이 하나하나 기억되고 그들을 위해 기도드릴 때, 복수에 불타며 미국이 시작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수십만 명의 무고한 무슬림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생명의 가치는 동등할진대, 무슬림들의 생명은 왜 기억되지 못하는가?

이슬람 = 테러리스트?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한 알 카에다의 9.11테러는 반인륜적 비극으로 용서할 수 없는 반이슬람적 범죄행위다. 이미 이슬람 법정에서도 범죄로 단죄되었다. 그런데 반이슬람적 테러가 왜 이슬람의 보편적인 얼굴로 묘사되어야 하나? 이것이 이슬람의 본질적 문제일까? 왜 ‘이슬람 = 테러리스트'라는 마녀사냥과 같은 담론이 21세기를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망령처럼 우리 지성사회 주변을 맴돌고 있는가?

1천년 이상 유럽의 스승 역할을 했던 이슬람 역사

 61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이슬람이 완성된 이후 9세기 전성기를 맞으면서 유럽의 발전과 각성은 이슬람 문명의 덕택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그다드에 도읍한 압바스 제국(751~1258)은 500년간 세계를 호령했다. 그것은 단지 무력과 정치적인 권위만이 아니었다. 과학과 기술, 문학과 인문학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다. 당시 유럽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1천 년 가까운 긴긴 중세의 암흑시대를 살고 있었다. 유럽은 모든 것을 이슬람으로부터 배웠다.

 그 첫 단추는 십자군 전쟁이었다. 유럽은 동방의 우수한 문화에 압도되었고,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약탈하고 파괴하면서 그들은 이슬람 문화를 배우고 터득했다. 1099년 7월 15일, 십자군의 예루살렘 침공은 역사상 길이 기억될 치욕의 날이었다. 40일간의 포위 끝에 함락한 예루살렘의 성 안에서 그들은 유대인과 무슬림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성 안의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고, 이슬람 사원과 유대 전통 등 소중한 문화유산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몇 년 뒤 아랍 장군 살라딘이 다시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 그곳에 있던 크리스천들에게 손 하나 다치지 않게 관용을 베풀었던 광경과 비교하면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과연 이슬람은 폭력적인가

 확산되는 이교도의 영향력에 유럽 기독교 사회는 속수무책이었다. 급기야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 기독교 지성세계는 ‘한 손에 코란, 한 손에 칼’이란 용어로 이슬람의 두려움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근현대 역사에서 ‘한 손에 칼, 한 손에 무조건 항복’이란 무기를 마구 휘두른 것은 서구였다. 19세기부터 강약이 바뀐 것이다. 천 년 간이나 지배자의 입장에 있던 이슬람 사회가 야만과 미개로 폄하했던 바로 그 유럽사회에 의해 지배당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현실로 수긍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순응보다는 사사건건 저항하고 충돌하게 되었다.

그들은 어째서 테러를 자행하게 되었나

 그래도 지각 있는 대다수 무슬림들은 내색하지 않고, 불편함을 숨기면서 서구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중세 때 그들이 당당하게 전해주었던 과학과 기술, 인문학적 깊이라는 휘황찬란한 문명의 유산들을 이제는 서구가 대부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거의 응어리가 너무 커서 서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급진 이슬람 그룹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지휘하는 알 카에다 조직도 그 중의 하나다. 그들을 급진으로 만든 것은 이슬람의 원리적인 해석이라기보다는 비열한 서구의 음모와 불공정한 국제정책이었다. 2천 년간 평화롭게 살던 아랍인들을 몰아내고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한 팔레스타인 문제가 그 불씨가 되었지만, 걸프전쟁과 보스니아, 코소보, 체첸, 카슈미르, 아제르바이잔, 필리핀 남부의 모로, 동티모르 등지에서 보여준 미국과 서구의 노골적인 이슬람 죽이기 정책에 더는 앉아서 당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그들을 테러로 내몰았다.

 반면에, 일부 이슬람 국가도 문제투성이이다. 민주적으로 낙후되고, 아랍의 전근대적 악습과 가부장적 유목 전통이 횡행하고 있다. 이슬람을 내세워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달성하려고 하는 극단주의자나 부정과 독재를 지하드(편집자 주 : 아랍어로 ‘고투’ 혹은 ‘분투’를 의미하며, 이슬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뜻함)로 포장하는 권위주의 독재체제에도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

이슬람과 서구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2011년 알 카에다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면서 인류세계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이슬람 과격세력들이 급속히 퇴조하는 중요한 순간을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슬람 급진주의는 대중적 지지기반이 미미한, 미국의 횡포에 대한 감성적 저항체계였다. 더는 이슬람을 팔아 과격한 정치테러를 일삼는 행위에 동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주적이 사라진 시점에서 더 이상 무모한 이슬람권 공격이나 전쟁명분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 2011년 5월 발표된 오바마 행정부의 신중동정책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10년간 서구와 이슬람 세계는 지난 10년보다는 훨씬 협력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슬람적 가치와 전통이 유지, 존중되면서도 서구와 마음껏 협력하고 공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모두가 기대해 볼 일이다. 그런 희망은 최근 지속되고 있는 아랍 민주화 시위 열기로 더욱 구체화 될 전망이다.

이제는 ‘친미-반미’라는 이데올로기 논쟁의 차원을 뛰어넘어 정말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 우리가 인식의 주체가 되어, 관념적이고 명분적인 국익이 아닌 냉철한 실체와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하면서 15억 57개국 이슬람 세계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는 없을까?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나 성찰 없이 21세기 우리의 글로벌 전략이라는 것은 어쩌면 한 축이 무너진 허구는 아닐까?

글 /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희수

정리 / 이서은 기자


이희수 교수는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터키 국립이스탄불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10여 년 동안 이슬람 문화를 연구한 이슬람 전문가이다. 저서로는 '이슬람', '한•이슬람 교류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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