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실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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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실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11.08.0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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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화학공학과 임성갑 교수

초등학교 다닐 때, 가장 흥분되는 날이 언제일까. 아마 소풍 가는 날 정도가 아닐까. 소풍 가는 날이 다가오면서 느껴지는 기대감만큼 행복했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소풍 전날 내일 비 오지 않느냐며 어머니에게 백 번도 넘게 묻기를 반복하다, 오늘은 정말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고 늦도록 투정부리다가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정작 소풍 가는 날이 기대만큼 즐거웠던 때는 그리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인솔 교사님은 끊임없이 사고 치지 말라는 훈계를 늘어놓으시고, 어디에 들어가려 할 때면 뙤약볕 아래 끝없을 것만 같은 대기시간, 본인의 흥을 주체하지 못한 일부 학생들 간의 싸움박질…. 물론 즐거운 시간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작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다만, 나중에 남은 봄 소풍 기념사진에서 모두 함께 웃는 얼굴이 이 아수라장 같은 기억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해 주는 것은 아닐까.


인생을 놓고 보면, 새롭게 시작하는 대학 생활은, 특히 1학년 때는 이런 소풍과도 같은 특별한 때가 아닐까 싶다.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사회가 강요해왔던 10여 년의 대학 입시라는 압박에서 드디어 벗어나 나 자신만의 자유를 얻게 되는 바로 그 순간! 대학생이라는 호칭과 더불어 성인이라는 훈장이 붙어 그동안 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사실 다 맞기는 하지만 실제로 꼭 그렇지도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 1학년’이라는 대상에 대한 기대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 왜냐하면, 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다 그렇게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기도 쉽지 않다. 10년 넘게 대학 준비 한우물만 파서, 사실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다. 사실 그것도 제대로 못 하는데 다른 건 어떻게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남들 다 대학 1학년 때에 놀아야 한다고 하니, 일단 놀긴 해야겠는데, 이것도 스트레스다. 나는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한가할까. 머 엉하는 시간과 함께 아까운 내 대학 1학년의 시간은 총알같이 흘러간다. 역시, 다른 친구들은 뭘 하는지 다들 바쁘게들 산다. 나는 뭘 하는 걸까. 자괴감, 그리고 허망함만 마음에 남는다.


남들 이야기하는 척하고 말했지만, 이게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 느꼈던 대학교 1학년 때의 모습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지나고 나니 답이 보인다. 대학 1학년…. 누구나 원래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고3에서 대학생이 되면 모든 것이 바뀐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겪게 되는 가장 큰 변화이다. 어렵고, 헤매고, 실망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나놓고 보면 술도 많이 마시면서, 선배들, 친구들이랑 비장한 마음으로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들로 핏대를 세워가며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것 아닐까. 거창하게 대학생활에서 겪는 문제에 대해 해답을 여기서 구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만 되어 있어도, 대학 생활은 의당 이럴 거라고 실망할 준비만 되어 있어도, 적어도 마음의 평화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컸으니 당연히 실망도 크게 된다. 아마 기대가 없었으면 무척 행복하게 대학 생활하고 있을 거다. 누구 하나도 고3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지는 않는 걸 보면.


나는 내 대학 1학년 때의 이런 혼돈을 내 나름대로 헤쳐 나왔다. 지나고 보니 정답은 아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하지만 적어도 시작점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실망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내게 새로운 변화가 올 때, 비슷하게 시작하며 살아왔는데, 지금까지는 대체로 잘 맞아온 것 같다. 여러분도 나름의 방식이 있겠지만, 혹시 아직 없는 사람들에게는 한번 추천하고 싶다. 실망할 준비하기. 앞으로 여러분에게 다시 또 다가올 큰 변화에 좋은 연습이 될 걸로 믿는다. 아마 그다음 큰 변화는…. 글쎄…. 결혼쯤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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